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31
"아빠. 좀 갑자기인데, 만약에 살날이 하루밖에 안 남았어.
그러면 마지막 하루에 한 끼를 뭘 먹을 거야?"
"엄마랑 신혼여행 갔을 때 산토리니 이아 마을에 갔었거든.
거기, 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석양을 기다린 적이 있어.
아빠는 거기서 너랑 엄마랑 앉아서 조용히 맥주 마시고 싶어. 이건 엄마도 알아."
"그럼 나를 마지막으로 본다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장면을 보고 싶어?"
"뭐 집에서.. 아빠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는 걸 보고 싶지.
후루룩 후루룩... 소리도 좋고... 넌 먹는 게 예쁘니까."
최첨단 줌 수업을 끝내고, 뭐하고 놀다 왔는지 갑자기 서재에 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첫 번째 질문의 대답은 지난 15년간 한결같다. 신혼여행이 내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리스, 그것도 산토리니와 미코노스가 막 여행 상품으로 정착되던 시기였다. 여행의 모든 걸 아내에게 맡겼다. 난 그저 몸만 갔다. 그렇게 도착한 산토리니, 아내가 석양을 봐야 한다고 했다. 이아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해가 질 때까지 몇 시간이 남았었다. 절벽 위에 서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갔고 며칠 만에 익숙해진 그리스 맥주 <미소스>를 시켰다. 내 평생 가장 고요한 순간, 가장 깊이 스며든 맥주였다. 그 이후 누군가 저런 질문을 하면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이아 마을에서 지는 해를 보며 맥주를 마시면서 죽고 싶다고.
두 번째 질문의 대답은 그날 생각난 것이다. 딱 한 번, 마지막으로 딸을 볼 수 있다면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을 봐야 할까? 이런 생각을 미리 해본 아빠가 있을까? 언젠간 딸이 내 곁을 떠날 거라는 걸 상상조차 안 할 아빠들이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겠나.
이 날 딸에게 저 질문을 받기 전 점심으로 두부면 파스타를 해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딸을 보는 것만큼 뿌듯한 순간은 없다. 아빠표 김치볶음밥과 김치 볶음을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면서 엄지를 들어 올리는 딸의 모습을 볼 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드물다. 알리오 올리오의 기름진 파스타면을 포크로 큼직하게 돌돌 말아 입 안 가득 욱여넣는 딸을 보는 것만큼 포만감을 주는 장면은 흔치 않다. 잘 끓인 라면 한 젓가락을 조심히 들어 올려 후후 입김을 불어 식힌 뒤 후루룩 하고 들이마시듯 먹는 딸을 보는 것만큼 경쾌하고 신명 난 식사의 장면도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마지막, 딱 한 번, 딸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이 장면을 봐야 한다. 물론 딸은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몰라야 한다. 그래야 눈물 없이, 행복하게, 다음에도 또 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걸 일말의 의심 없이 믿으며 무심히, 그러나 행복하게 먹을 수 있을 테니. 물론 그걸 아는 아빠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잠시 물리친 채 말없이 그 모습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담담히 딸의 식사를 봐야만 한다. 마지막 장면이자 영원히 기억될 그 한 끼의 모든 순간, 모든 요소를 기억하기 위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딸을 바라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