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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Sep 27. 2022

술 - 필요/적당량

사물의 우연 : 첫 번째 서랍 - 섹스

술이 정말 필요한가?

이 질문은 반복된다. 술이 섹스에 필요한 요소인가? 섹스를 몸으로 하는 행위로 한정한다면 술은 당연히 불필요하다. 그러나 정신도 동반된 행위라고 할 때는 필요성이 생긴다. 술김에 뭔가를 한다는 건 이성을 바짝 세우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술 취했을 때만 어떤 행동을 한다면 우린 그걸 주사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남자든 여자든 술을 마셔야 섹스가 가능하다면, 또는 술을 마시면 섹스가 생각난다면 그건 주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4, 50대 남자 중에는 이런 지인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이다. 술자리를 갖게 되면 1차, 2차, 3차를 거쳐 성매매 업소나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를 불러 논 후에나 끝을 내는. 물론, 그건 술주정, 주사다.      


섹스를 최적의 신체 컨디션 아래 행해지는 육체적 활동 중 하나로 규정지으면 술은 당연히 저해 요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남자 중에서 아마 가볍게 술 마시고 족구, 축구, 농구 같은 시합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강 둔치나 대학 캠퍼스의 농구장에서 맥주 한두 캔 먹고 내기 농구를 하는 건 흔하니까. 그러나 다 알겠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술이 조금만 들어가도 몸이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술은 신체 반응뿐만 아니라 인지 작용도 느리게 한다. 그러니 섹스에 크게 도움이 될 리 없다.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와인 한잔 정도라면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 우리가 한잔으로 끝나는가? 맥주 한잔? 맥주는 배를 나오게 한다. 더부룩함으로 출렁이는 배를 내보일 생각인가? 그럼 소주는? 깡소주라면 몰라도 함께 먹는 안주의 양과 향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매한가지다.

    

더 중요한 건 술이 취했을 때 우리의 감각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 기관이 둔해진다. 그래서 음주운전이 무서운 것이다. 음주운전은 인지적 반응과 신체의 반응이 정상일 때보다 한 템포, 아니 반 템포라도 늦으면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야성적인, 그러나 인간적인    

그러나 다른 활동에 있어서 우린 음주 전후의 차이를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술 마시기 전에 노래방 가는 것과 마시고 노래방을 가는 것, 술 한잔 하고 볼링장이나 당구장에 가는 것과 그전에 가는 것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음주 후의 그런 행위들은 한 템포, 반 템포, 일이 센티미터, 반음 정도의 오류를 발생시킬 뿐 사람이 죽거나 세계 증시가 폭락하거나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된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린 음주 섹스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관대하다. 아니 오히려 술을 마셔야 더 좋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성적 타자를 더 다루기 쉽다고 생각해서 음주를 환영하기도 한다. 특히 남자들. 그래서일까? 골뱅이라는 단어는 여자에게 국한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신 여자를 둘러업고 자취방이나 가까운 모텔에 가서 섹스를 하는 행위는, 단언컨대 야만적이다. 섹스는 야성적이면서도 인간적인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섹스는, 그렇다, 문명 속에서 행해지는 야성적 행위여서 앞서 말했듯 야만의 향기를 생산하지만 그 자체가 야만적이어서는 안 되고 인간적이어야 한다. 인간적인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주체가 타자의 존재를 인지해야 하고, 주체가 그 타자에게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육체를 던지기를 스스로 결심하고 각오해야 한다. 그 인지와 각오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사회적 존재에서 동물적 쾌락을 향한 존재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그 문턱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인간의 인지와 각오를 발생시키는 이성이 꺼져 있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섹스가 아니다.     

이 지점이, 우리가 잘 아는 그 단어, 성적 자기 결정권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쾌락을 선택하는 인간 이성의 의지, 그 의지가 동반된, 기꺼이 육체적 존재로의 전환을 향한 선택, 그 선택을 통한 사회적 존재의 일시적 소거, 그 소거 후에 얻어지는 쾌락.  이 일련의 과정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섹스는 교환적이고, 물질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래서 만취 후의 섹스는 인간다움의 상실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술 취함, 즉 주량의 불균형으로 술이 타자의 이성을 무너뜨리는 도구,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쉽게 말해 주량의 차이는 그 차이로 인해 상대방의 이성의 너머로 들어가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그렇게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의 숭고함을 지키면서

이것 또한 섹스의 가치, 또는 인간적 섹스의 숭고함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타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니 말이다. 이것은 채무 관계, 상하 관계, 위력에 의한 강간만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이다. 섹스의 숭고함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존재에서 쾌락의 존재로 가기로 결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결정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는 모든 행위는 그 섹스를 포르노로 만들어 버린다.


매춘은 살아 있는 포르노를 소비하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한 인간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돈으로 구매하고, 또 한 인간이 돈을 받고 그 결정권을 양도하기 때문이다. 포르노의 배우들도 이 사적 행위의 공적 전시 전환을 돈을 받고 허락하고, 심지어 그 공적 전시물의 가치 상승을 위해 거짓된 오르가슴 연기나 과잉 흥분을 연출한다. 그 과정에서 배우의 교환가치만 남고 성적 주체는 사라진다.     


물론 혹자는 술이 서로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지 않냐, 섹스로 진도가 나갈 엄두가 안 날 소심한 두 남녀(또는 남남, 여여)의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거기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 또한 인간답지 않다. 아니 안타깝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고통을 부분 마취로 감소시키는 것이 문명화된 의료이고 인간적일 수 있지만 쾌락을 부분 마취로 감소시키는 건 오히려 반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노력과 쾌락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은 함께 증가해 왔다. 심지어 특정 시대의 소위 사회 지도층은 이 쾌락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아예 은폐시키고 억압하려는 시도들을 했다. 어떤 성적 쾌락은 금기시됐으며 어떤 쾌락은 특권층에게만 허락되기도 했다.      


두 주체가 쾌락의 장으로 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 용기 또한 이성이 가져오게 해야 한다. 술에게 그 중요한 결정과 그 중요한 결정 뒤에 얻어지는 쾌락이라는 보상을 양도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권력이나 체제, 장치, 도구에도 그것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우린 충분히 그런 시대를 고통스럽게 넘어왔다. 푸코의 <성의 역사>를 탐독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부모님이나 조부모 세대에 그 경험을 물어보면 된다. 아주 길고 긴 억압의 시간들이, 장치들이, 제도들이 있었다.     


또 하나,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르는데, 술은 그 망설임과 주저함 끝에 결정된 쾌락의 장에서 얻을 쾌감을 다 못 느끼게 한다. 허둥지둥 대게 하고, 감각적으로 둔하게 한다. 심지어 그 경험이 처음인 청춘남녀라면 그 적당량의 술이 어느 정도의 양인지 쌍방이 모를 수 있다. 긴장은 풀리고 용기는 얻고 쾌락은 유지되는 그 적절한 양 말이다.     


술은 섹스로 가는 문턱을 낮추는 경사로에 불과하다. 그 경사로의 적당한 각도를 스스로, 타자도, 그렇게 쌍방이 알지 못한다면 그 문턱을 아예 넘지 못하거나 아니면 너무 훌쩍 넘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섹스는 이성적 존재가 선택하는 야성적 쾌락이다. 이것이 섹스의 본질이라면 술로 인해 먼저 동물이 되지 않는 것이 인간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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