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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01. 2022

아베크족&대실

사물의 우연 : 첫 번째 서랍 - 섹스

아베크족의 짧은 역사

아베크족에서 아베크는 프랑스어 전치사 Avec로 ~와 함께라는 의미다. 영어의 with 정도 될까? 물론 “함께” 있는 연인을 다 아베크라고 하진 않는다. 보통 자동차를 이용해 으슥한 곳에서 밀회를 즐기는 커플을 아베크족이라고 한다. 이것은 대략 60년대 미국에서 시작해서 90년대 한국으로까지 이어진다.    

 

6, 70년대 미국은 대형 세단의 나라였다. 55년도 영화인 <이유 없는 반항>을 보면 이때 이미 젊은 연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데이트를 했다. 그 뒤에도 미국 세단의 디자인은 더 과잉됐고 화려해졌다. 후미에 날개를 달고 뒷좌석은 소파보다 편해졌다.     


이때 자동차 극장이 전성기를 누렸고 공포 영화의 전성기도 시작됐다. 가정용 비디오 플레이어와 비디오 대여점이 대중화되는 시점까지 자동차 데이트와 자동차 극장은 청춘들의 최대 오락이었다. 재미있는 건 자동차 극장과 함께 자동차 교회도 70년대에 등장했다는 사실. 주파수를 맞춰서 설교를 듣는 방식도 자동차 극장과 유사했다.


VHS+일본 자동차     

따져보면 1985년 블록버스터 대여점이 생긴 것과 80년대 말 일본 자동차의 미국 공습은 오버 랩 된다.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 브랜드인 스즈키가 미국에 진출한 건 정확히 1985년이었다. 일본 자동차의 유행과 비디오 대여점의 성장으로 미국의 자동차 문화와 대중문화 소비 패턴, 가정 문화가 바뀌면서 아베크족은 일본으로 수입됐다. 그러다 88년에, 유명한 나고야 아베크족 살인 사건이 나면서 일본의 아베크족들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90년대, 한국에선 오렌지족과 야타족이 유행하면서 아베크족이 뉴스의 초점이 됐고 2010년대 들어서는 범죄의 유형이 잔혹해지고 온라인과 모바일 소통의 증가, 무분별한 신도시 개발로 인해 한가한 도로와 교외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아베크족은 추억의 단어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동차는 에로스적 공간으로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곳은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남자의 남성성을 외현 하는 대표적 소비재다. 자동차의 디자인이 과잉되기 시작한 50년대부터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일종의 공작새의 날개 역할이라고나 할까? 자동차가 가진 남성성의 상징은 여전히 유효하고 마케팅도 이를 적극 활용하지만, 에로스적 메타포로써, 에로스를 위한 실재적 공간으로써의 기능은 줄어들고 있다. 대체 공간의 등장과 자동차를 은닉할 으슥한 곳의 사라짐의 교차 속에서.     


그 외 이 현상을 만들어낸 여러 조연들의 맞물림과 앙상블을 생각해봐야 한다. 80년대 일본 자동차의 미국 진출,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의 출현과 성장, 자동차 극장의 쇠퇴의 맞물림. 자동차라는 도구의 성격 변화, 여가와 데이트 시간을 보내는 장소의 변화, 맥 라이언을 스타로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등장까지.     


포르노에서 로맨틱 코미디로의 유행 전환, 특히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등장은 영화라는 콘텐츠가 극장을 위한 것에서 벗어나 거실과 가정을 위한 콘텐츠로 변화하고 있다는 징조였다. 알다시피 <딥 스로트(목구멍 깊숙이)>라는 전설적인 포르노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됐다. 이 과정은 <러브레이스>라는 영화에 잘 나온다. 그러니까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포르노조차도 극장용 상품이었다.      


이 변화의 주역이 VHS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VHS의 대중화와 함께, 자동차는 출퇴근을 위한 효율적인 중소형 세단과 가족을 위한 패밀리 밴으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사커맘이라는 단어가 90년대 중반부터 유행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미니밴을 향한 백인 중산층 아줌마의 애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자동차 문화의 변화와 VHS  비디오테이프의 대중화는  90년대 중반 케이블 채널의 등장 전까지 미국과 일본과 우리의 여가와 거실 풍경, 데이트 방법까지 바꿔놨고, 엄밀히 말하면 성적 활동의 공간까지 변화시켰다.      


대체 공간-대실의 등장

아베크족들은 분위기를 잡기 위해 굳이 자동차 극장이나 으슥한 곳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여성을 위한 로맨틱 영화들은 넘쳐났고, 남자들은 이런 영화들을 블록버스터에서 대여해서 여자 친구 집에 놀러 가서 함께 보며 여성의 긴장을 풀게 한 뒤 자연스럽게 애정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도 1994년 자동차 극장이 문을 열고 이내 전성기를 맞았지만 2천 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극장이 사라진 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소비적 성격이 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인들에겐 갈 곳이 많아졌고 존재를 은신할 만한 곳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소위 연애 공간 제품 가격의 불균형도 한몫했다. 한국에선 80년대 말 비디오테이프의 등장과 90년대 중반 케이블 티브이 등장 이후로도 영화 관람료, 자동차 연료비, 외식비 등은 꾸준히, 높은 폭으로 올랐지만 단 하나, 모텔 대실비만 더디게, 찔끔찔끔 올랐던 것이다.


사실 대실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유럽이나 북미의 공항 인근의 호텔에는 Day use라는 상품이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2015년 한 특급호텔에서도 낮시간에 숙박 없이 야외 수영장과 풀사이드 바비큐를 이용하는 여름 패키지를 판매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호텔들은 평소에는 이 판매행위를 하지 않는다. 관례적으로 모텔과 호텔을 경계 짓는 상품 중 하나가 바로 대실이기 때문이다. 대실의 이미지는 왜 이렇게 됐을까?     


관련 전문가들은 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 탓으로 돌린다. 구체적으로는 이 시기, 돈이 넘쳐나자 성매매 사업도 번창했고 소위 매춘 프리랜서들, 그리고 미성년자의 원조교제와 같은 다양한 매춘 방법이 유행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성매매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성매매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신원을 묻지 않는 러브호텔, 모텔들이 그 공간을 제공해줬다. 불법적 성매매의 구매자 입장에서도, 제3의 공간이면서 저렴한 공간이 필요했기에 모텔들은 더 적극적으로 판매를 했다.     


이런 형태가 그대로 한국에 들어와 상품화된 것이 대실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진 계기가 됐다. 9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유흥업과 원조교제가 한국에서도 행해졌고 또 일부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모텔이 일종의 성 판매의 중개 장소로 사용되면서 이 이미지는 더욱 굳어진 것이다.


대실로 버텨 온 모텔들

일본의 불황기에도 러브호텔만큼은 호황이었다. 하루 네 번의 회전율을 기록하는 건 기본이었다. 현재도 일본의 러브호텔은 고령 사회 진입에도 불구하고 관광호텔로의 변화까지 추구하면서 버티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러브호텔은 68년 오사카에서 한 호텔이 “호텔 러브”라고 이름을 지은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일본에서 러브호텔이 많이 생기게 된 이유가 자동차의 등장과 젊은 청춘들의 의식이 바뀌게 된 이유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일본의 가옥이 나무로 지어져서 방음이 잘 안 됐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영화에서 익히 봤다시피 그들은 주로 다다미방에서 생활하고 자지만 섹스를 하기엔 불편했을 것이다. 침대가 있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모텔이 섹스를 하기엔 기능적으로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모텔은 80년대 후반부터 우후죽순 생겨났다. 경제 성장과 소위 마이카 문화에 힘입었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특수를 노렸던 이유도 있다. 그 성장세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 모텔이 3만 개에서 4만 개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오래전 형성된 대실 가격은 다른 연인/연애 관련 서비스/제품의 가격만큼 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대체제가 있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어떤 가격 이상이면 그 정도 가격으로 다른 대체제를 살 수 있다면 당연히 소비자는 그 제품을 산다. 예를 들어 이동 수단을 사고 싶은 소비자가 모터싸이클을 사고 싶은데 예상했던 가격보다 비싸면 차라리 그 가격에 좀 더 보태서 자동차를 사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텔은 다른 방 문화와 함께 위기를 맞은 적도 있다. 비디오방이 대표적이다. 알다시피 비디오방은 DVD방으로 진화하면서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지만 그것이 오직 영화를 보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생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비디오방은 실제로 모텔 대실료의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연인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줬다. 심지어 어떤 곳에선 취침도 가능하다. 그래도 모텔 대실료의 절반에 불과하다. 결국 이 다양한 공간의 등장과 가격의 저렴함이 아베크족과 대실족의 멸종 위기를 불러왔을 수 있다.      


혹자들은 멀티방, 룸까페 같이 아베크의 공간들이 늘어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공간들은 엄밀히 말하면 에로스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유희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에로스적 행동은 사건이다. 에로스적 흥분을 갖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그 흥분이 생기게 되어서 에로스적 공간으로 잠시 전환됐을 뿐이다.  

   

그렇다고 아베크족의 본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멀티플렉스 시대, VOD 시대에도 여전히 연인들은 둘만의 공간을 미친 듯이 찾고 있다. <88만 원 세대>의 서문에서 저자가 안타깝게 말하듯이 한국의 미친 주거비용은 청춘들의 독립을 늦출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이런 공간 제공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린 이런 비용조차 사치인 시대에 살고 있다. 2004년에 공개된 단편영화 <생산적 활동>은 마치 지금을 내다보고 만들어진 영화 같다. 모텔비도, 자취방도, 자동차도 없는 커플이 섹스할 곳을 찾아 화장실, 골목, 빈집을 전전하는 것은 일종의 십몇 년 후를 먼저 본 예언 같다.


러브의 에너지는 살아남아야 한다.

아베크족은 에로스적 의지를 갖고 있는 존재다. 이런 존재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단지 대체 공간들이 등장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그 에너지가 있는 청춘들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륜이 불법의 그늘에서 벗어나 만연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음습한 에너지는 청춘 아베크족의 에너지와는 다르다.


후자는 전적으로 생산적 활동을 원하는 청춘들의 절박함이 원천이다. 어디서라도 하고 싶다는 절박함, 어디서든 할 수밖에 없는 통제 할 수 없는 욕정. 그것이 청춘들에게 사라졌거나, 또는 그것을 모니터와 스마트 폰의 화면으로 해결하는 청춘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 공간으로 남아 있는 몇 개의 아베크족을 위한 공간들도 사라질지 모른다. 더불어 한 사회와 나라의 역동성 또한 사라질지 모른다.     


아베크족이 없는 세상은 성적 에너지가 소멸된 세상이다. 모텔 업계는 당연히 연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호황을 맞는다. 한 십 년 전에 잠시 불황을 맞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버텨내고 있다. 심지어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더 세련되었다. 일본처럼 테마를 도입하기도 한다. 아베크족을 위한 공간은 여전히 존재하고 버티고 있다. 모든 걸 포기하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사라져서는 안 되는 욕망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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