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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02. 2022

음악≦리듬

사물의 우연 : 첫 번째 서랍 - 섹스

  

장르적 환상

섹스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건 환상이다. 남자들은 다 알겠지만(아, 물론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친 일반화는 경계하자), 대부분의 포르노엔 음악이 없다. 하드코어일수록. 왜 그럴까? 음악이 육체의 소음 청취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럼 섹스와 무드음악의 컬래버레이션 환상은 누가 조장했을까? 바로 에로영화감독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치 같은 학원에서 연출을 배운 것처럼. “에로 영화, 완성 90일”, “에로 영화의 ABC.”, “<에로 영화 난 이렇게 만들었다> 저자 직강.”     


80년대 한국 에로 영화의 전성기, 거의 모든 에로 영화의 정사씬은 키스 장면 후에 갈대숲이나 이불속으로 육체가 사라졌다. 관객은 그 연인들이 뭘 하는지 구체적으로 볼 길이 없었기에 상상해야 했고 음악은 그 상상의 촉매제였다. 이것의 반복이 장르적 관습이 됐다.     


관객들은 어떤 음악이 나오면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게 됐다. 남녀가 술을 마시거나 식사하며 마주 보는데 야릇한 음악-색소폰이 메인이 된 재즈 음악 같은-이 나오면 다음 장면은 키스로 이어지거나 침대로 장면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건 오래된 영화 문법과 그 문법을 통해 영화를 학습받은 관객과의 약속 대련 같은 것이다. “자. 이제 이런 음악을 틀을 테니 다들 흥분할 준비를 하세요.” 하고 감독은 작정하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 오디오가 없는 이유

일상에선 이런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연인이나 부부가 멀쩡히 티브이를 보고 있거나 밥을 먹다가 갑자기 분위기 있는 음악을 스마트 폰이나 오디오로 틀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걸 다 갖춘 듯 한 호텔이나 모텔에도 오디오 시스템은 없는 것이다. 티브이, 냉장고, 헤어드라이어, 닌텐도 윌, 플레이스테이션, 컴퓨터까지 있지만 오디오는 없는 것이다. 또 DVD 진열장은 있어도 음악 CD 진열장은 없는 것이고, 야한 영상을 틀어주는 채널은 있어도 콘서트 실황을 틀어주는 채널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다시 말하지만, 환상이다. 분위기 있는 음악을 틀고, 진한 레드 와인을 마시고, 구릿빛 피부의 갈라진 근육을 가진 남자와 반투명 잠자리 슬립을 입은 가슴은 C컵인데 허리는 24 엉덩이는 30이 넘는 여자가 등장하는 에로스적, 에로 영화적 상상은 그야말로 동화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중 한두 가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와인을 마신 후 섹스를 한다거나 몸 좋은 남자와 섹스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환상의 요소 중에서 가장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음악이다.     


긴장을 풀기 위해?

물론 음악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면 긴장이 풀리고 몸도 풀리는 사람도 있다. 운동선수도, 일반인도. 그러나 우리가 박태환의 경기를 봐서 알듯이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푸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멀뚱히 서서 긴장을 푸는 선수도 있다. 올림픽 결승 같은 순간의 긴장을 푸는 방법에서도 음악이 선택적이듯, 섹스도 그렇다.     


이쯤 해서 우린 과연 섹스가 그렇게도 긴장할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발 양보해서 처음 하는 섹스라면 긴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긴장을 풀기 위해 음악을 틀 수 있을까? 처음 섹스를 한다는 사람이 크리스 보티나 쳇 베이커의 음악을 찾아 틀어 놓는다면 "처음이야."라는 그 말은 거짓말이다. 모텔에 처음 와봤다는 사람이 리모컨 하나로 조명과 TV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과 비슷하다.      


섹스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고 심지어 경쟁적인 행위라면 당연히 긴장할 수 있다. 심인성 조루나 발기부전의 가장 큰 원인은 심리적인 문제니까. 또 성교통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섹스 전 긴장을 한다. 그러나 이런 긴장은 당연히 음악으로 풀 수 없다. 전자의 남자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고, 후자의 여성은 산부인과를 찾아가 봐야 한다. 그건 정신적이면서 생리적인 문제니까 말이다.     


핵심은 리듬

고급진(잘만 킹이나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에로 영화와 드물게 세련된(어차피 벗고 하는 게 다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좋은 화질과, 이렇게까지 잘 생기고 늘씬한 모델 같은 배우가, 이렇게까지 멋있는 옷을 입고 나올 필요가 있을까 싶은) 포르노의  음악이 갖고 있는 역할의 본질은 리듬이다. 그 리듬은 대체로 영상 속 움직임과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섹스의 리듬은 본질적으로 커플의 움직임과 맞아야 한다. 영화는 영화고 커플은 커플이니까. 종종 그 리듬의 좋은 예를 만들어 보라고 여성 잡지들에서 적절한 음악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심박수가 제각각이든 그 음악은 내 리듬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리듬은 혼자 만들 수 없다.      


커플의 음악은 둘이 만든다. 그 음악의 저작권은 그들에게 있다. 그 음악의 리듬은 그들에게 맞는 것이고, 그 리듬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들이 함께 만드는 싱크로나이즈드 한 움직임과 소리가 그 리듬의 변화를 만들고 그들이 만든 음악을 절정으로 몰고 간다.      


록 밴드에서 리듬은 베이스와 드럼의 몫이다. 요즘은 이 둘을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한창 록을 한다고 설치고 다닐 때는 리듬 “다이”로 불렀다. 리듬 받침대. 리듬 섹션이 멍석을 깔아 주면 그 위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가 논다. 그래서 존 보냄이 지미 페이지에게 “걱정하지 말고 놀아라. 뒤에는 내가 있다.” 하고 말했는지 모른다. 다른 멤버들 조용히 시키고 <모비딕> 솔로를 연주했고. 어찌 됐든 리듬은 화려한 변주의 받침이다.      


록 음악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모든 밴드의 음악은 드럼의 박자 설정에서 시작한다. 하이햇을 치던지, 스틱을 부딪치든지 말이다. 이 초기 설정값이 밴드가 몇 분간 연주할 음악의 총체적 밑그림이 된다. 이 리듬을 다른 말로 하면 궁합이다. 상투적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쿵짝”이 맞는 것이 결국은 리듬이 맞는다는 말일 테니 말이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시작할 때 리듬을 정하고 들어갈 수 있다. 그 후 서로의 리듬을 읽어내며 끊임없이 리듬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킨다. 첫 리듬의 설정이 그 후의 모든 섹스의 리듬과 리듬의 변환, 그리고 그 위에서 달릴 수많은 변주의 틀이 된다. 아늑한 분위기에서 느긋한 리듬으로 할지, 시간에 쫓겨 급박하게 할지, 일상적으로 익숙한 리듬으로 할지, 처음 가본 여행지의 도시나 휴양지의 리듬으로 할지는, 순전히 현장에서 결정 된다. 장소와 상황이 바뀌었는데 리듬도 변주도 일상의 것이 반복된다면 그냥 집에 있어라.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을 갖고 있다면 전업을 해야하고.


결국 섹스의 창의성은 그 음악이나 술, 분위기, 의상 같은 콘텍스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섹스라는 본연의 텍스트와 그것을 생산하는 두 사람(물론 취향에 따라 이 숫자는... 그만하자), 그 자체에 있다. 그 행위를 하는 두 사람에게 오롯이 책임이 있다. 듀크 엘링턴은 스윙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It Don't Mean a Thing, If It Ain't Got That Swing)-지금 이 제목이자 가사의 첫 줄을 흥얼거린 사람은 재즈를 좀 아는 사람이다. 난 엘라 피츠제럴드의 리듬으로 흥얼거렸다-고 했고, 하루키는 의미가 없다면 스윙이 없다고 했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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