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감성은 짐을 싸면서 시작된다. 여행을 위한 예약은 이성적 과정이다. 항공권이든, 호텔이든 렌터카든. 반면 짐을 싸는 행위는 감성적 행위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지금으로 당겨와 미리 감각하는 행위다.
항공권과 호텔 예약은 해당 기업과 판매 대행업체의 마케팅 놀음과의 지난 한 싸움이다. 더 싼 티켓, 더 싼 방을 찾는 고객과 모든 티켓과 방을 일 년 내내 고르게, 고른 가격으로 팔고자 하는 기업과 대행업체의 순발력과 맞서는 여행자의 고독한 머리싸움은 여행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결국, 여행의 낭만은 짐을 싸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합리적 이유 VS 감성적 충동
짐을 쌀 때 선택하는 물건마다 합리적 이유와 감성적 충동이 엇갈린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캐리어에 들어갈 때는 합리적 이유와 감성적 충동이 동반된다. 작은 휴지 조각이라도 우연히 들어가는 물건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남자 여행자들은 합리성을 넘어 효율성을 추구한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몇 박 며칠의 여행을 가더라도 기내용 캐리어면 충분하다. 심지어 여름이라면 보스턴백이나 배낭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다시 등장한 핀란드 친구 중 한 명은 겨울에 오면서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왔다. 그들에게 한국의 겨울은 가을 정도도 안 될 테니 말이다.
여행자의 정체성
그래서 우린 여성의 캐리어에 주목해야 한다. 일단 캐리어는 여행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첫 번째 물건이다. 이건 남성도 동일하다. 캐리어는 용량과 이동의 편의성, 견고함이 기본이다. 웬만한 캐리어는 잘만 사용하면 몇 년, 심지어 십 년 이상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심지어 한 달에 두어 번은 홈쇼핑 채널에서 여행 가방 세트를 팔고 언제나 그랬듯 매진 싸인이 울린다.
이 현상을 볼 때마다 늘 궁금하다. 아직 캐리어를 못 산 사람이 많은 건가, 아니면 새로 사는 사람이 많은 건가. 사실 캐리어는 여자들의 핸드백이나 남자들의 지갑 하고는 차원이 다른 제품이다. 어떤 사람도 캐리어를 대학 강의실에 가방 대신 들고 가거나, 소개팅 장소에 핸드백 대신 들고 가진 않는다. 제아무리 명품 캐리어라도.
캐리어는 일상에서 빗겨 난 제품이다. 여행이 탈일상적이기에 캐리어도 탈일상적인 제품이다. 그건 마치 명절 선물 세트 같은 것이다. 평소에는 그런 조합으로 꾸려진 물건을 사지 않지만, 명절 때만큼은 그런 조합의 세트를 사는 것처럼 캐리어도 평소엔 절대 들지 않는 가방이지만 제아무리 큰 스포츠 백이나 배낭이 있어도 여행을 할 때는 어김없이 캐리어가 등장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항에서 본 여행객들은 아예 짐이 없거나 캐리어를 끌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캐리어는 일상에서의 내가 아니라 여행자로서의 나를 드러내는 첫 번째 제품이다. 캐리어마다 브랜드 로고가 선명하고 색도 선명하고 심지어 다양한 스티커들이 붙어 있는 이유다. 마치 노트북에 여러 스티커를 붙여 놓아서 자신의 직업이나 취향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캐리어는 더 나아가,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그 단어, 공항 패션의 한 요소다. 공항에서의 옷차림은 여행자의 여행에 대한 태도, 라이프 스타일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행이 사치스러운 행위이자 과시적 행위인 사람은 공항 패션에서 드러난다. 캐리어와 함께. 마지막으로, 캐리어는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이 여행자로서 보낼 며칠이 압축되어 담긴 물건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상징적 사물로 치환되어 담기어 오는 물건이고.
짐 싸기의 설렘
짐을 쌀 때의 설렘은 미지의 여행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 같은 여행지라도 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여행지는 결국 비일상적 공간이다. 시간, 기후, 음식 모두가 낯설다. 아니 낯설어야 한다. 그 낯섦 때문에 짐을 싸는 행위가 더 설렌다. 여행 전 캐리어 안에 들어가는 모든 물건은 그 낯선 조건에 대한 조사와 상상을 통해 선택된다.
결국 여행의 흥분은 여행지의 예측 불가능함에 비례한다. 어쩌면 그래서 그곳의 날씨, 음식, 심지어 맛집, 지도까지 완벽하게 숙지되어 있는 최근의 여행에서 여행자들은 이 낯선 흥분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패키지 여행자의 안심이 자유 여행자에게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설렘이 없는 사람들
이 캐리어를 제일 잘 싸는 또 다른 사람이 누굴까? 그건 아마도 비즈니스 여행자 일 것이다. 그 여행자에겐 여행의 낯섦과 흥분, 기대, 경험은 부재한다. 해결해야 될 과제와 이뤄야 될 성과가 전부다. 여행의 짐은 그 과제와 성과를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세면도구도, 옷도, 노트북과 스마트 폰도, 문고판 책조차 비즈니스 성과를 위한 도구이다.
또 한 명의 잘 싸는 사람이 있다. 바로 프로 스포츠 운동선수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황재균 선순가 짐을 싸는 걸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프로 스포츠 운동선수들은 훈련과 게임 간 이동이 일 년의 대부분이고 선수 시절 대부분이 여행이다. 그들의 짐도 훈련의 효율성과 원정 경기의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들의 승리의 루틴을 위한 동일한 장비와 옷들이 싸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빈 캐리어에 채워 오는 것
여행자가 짐을 싸는 게 뻔해지고 진부하면 그건 같은 여행의 반복, 반복된 여행 때문이다. 이 같은 여행의 반복을 회피하기 위해 여행자들은 이제 캐리어를 비어 간다. 대신 그 빈 곳에 여행지의 것을 가져온다. 캐리어는 이제 여행자의 여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의 것을 여행자의 일상으로 끌고 들어와 여행의 편린을 오래도록 소비하게 하는 전리품을 저장해 오는 도구다.
교포들은오랜만에 고국에 오면 국산 속옷이나 화장품을 사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행의 전리품이 아니다. 모국의 제품에 익숙해진 자신을 위한 간만의 선물이다. 물론 세계 곳곳에 우리나라 제품이 안 들어간 곳이 없지만 어떤 제품은 사소하다는 이유로 구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최근 일본으로 여행 가는 여행자들의 캐리어가 비어 가는 이유는 <동키호테>와 같은 일본의 잡화점을, 소위 말해 털어 오기 위해서다. 필자도 그런 진풍경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후쿠오카 여행의 첫날밤, 드립 커피 몇 봉지와 아이를 위한 후리가케, 간단한 음료수, 그리고 맥주 몇 캔을 사러 <동키호테>에 들어갔을 때 그곳을 동네 마트인 양 큰 카트를 밀면서 그 혼란스러운 미로를 헤매는 한국, 중국 관광객들을 봤다.
그들은 과자와 음료수, 화장품, 커피 등 상상을 초월하는 양으로 잡화들을 사들였다. 예전 우리 어머니 세대들이 일본 여행 가서 코끼리 밥솥을 사 오던 건 오히려 소박할 정도였다. 약품과 화장품, 간단한 음료수를 파는 잡화점마다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대부분은 젊은 한국이나 중국 관광객들이었다. 이들은 이 물건들을 위해 캐리어를 비어 왔을 것이다. 블로그를 검색해보면 그렇게 채워 온 물건을 자랑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여행지에서 냉장고에 붙이는 마그네틱 하나 사 오던 시대는 끝났다. 그것은 더 이상 전리품이 아니다.
여행의 경험과 쇼핑의 양
여행의 경험은 그래서 쇼핑의 양으로 측정되는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결과, 어디를 가든 쇼핑은 여행의 필수코스가 되어 버렸다. 한국에 오는 중국 단체 여행객이 고려인삼이나 김치를 사러 면세점에 들르는 것처럼 한국 자유 여행자들도 쇼핑에서 자유롭지 않다. 쇼핑을 위해 여행을 가는지도.
아니, 실제로 빈 캐리어만 들고 대마도나 후쿠오카행 쾌속선을 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면세점을 이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본의 잡화를 사기 위해서 말이다. 이를 위해서 캐리어는 집에서부터 빈 채로 출발한다. 그 캐리어는 비행기나 여객선 티켓을 산 이후부터 면세품을 저장해서 올 빈 박스에 불과하다. 여행지로 인한 설렘은 이렇게 다시, 쇼핑에 자리를 내준다.
낯선 곳, 미지의 세계, 모험이 기다리는 여행지는 이제 거의 소멸되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고 야식으로 한국의 치킨을 먹을 수 있다. 글로벌 경제가 여행의 낯섦을 거세하고 상품으로써의 여행만 남겨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