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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15. 2022

인증/인증 사진

사물의 우연 : 네 번째 서랍 - 여행

여행에서 카메라와 인터넷의 필요는 다시 말하지만 인증샷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 말이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략 몇몇 사이트에서 이 단어를 유행시켰는지는 다들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관종의 도구

인증샷은 일상의 기록과 이벤트의 기록, 평범한 나와 특별한 나, 사적인 나와 사회적인 나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노출시킨다. 이것은 단순히 SNS나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텍스트로 노출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까지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 웅변한다. 그래서 많은, 무모한 젊은이들이 이 인증샷에 목숨을 걸다가 죽기까지 했다. 위험한 장소-고층 빌딩, 암벽, 절벽-에서 사진을 찍거나 위험한 장난-야마카시, 매달리기-을 할 수 있다는 능력과 담력을 인증받기 위해 목숨을 건 것이다.     


안도감과 과시욕 사이에서

여행에서의 인증샷은 이와는 좀 다르다. 나도 했다는 안도감과 나만 했다는 과시욕이 공존한다. 그래서 여행에서의 인증샷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여행과 관광의 기록과 그 기록을 차별화시키는 사적인 감상이 "토핑"처럼 추가된다.      


그렇다. 대부분의 여행에서의 인증샷은 토핑이 필요하다. 모두가 하는 관광을 담음과 동시에 조금은 다른 뭔가를 담아야 한다. 그것은 찍히는 사물이나 사람의 변형일 수 있으며 상황 연출의 변주 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변주엔 정도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리랑” 같이 유명한 곡을 화려하게 편곡해서 연주하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아하~”하고 원곡을 알아듣지 못하면, 그것이 실패한 변주인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변주는 낯설기에, 대중에게 외면당한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여행에서의 인증샷은 상호 이해의 수준, 너도나도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모든 인증샷이 그렇지만, 특히 여행에서의 인증샷은 쇼윈도다. 박물관이 아니다. 인증샷은 박물관에 전시된 국보처럼 가질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준거집단이 약간의 무리를 하면 할 수 있고, 살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백화점에 진형 된 상품 대부분이 카드 할부로 살 수 있는 수준인 것과 같다. 물론 수십 개 월 할부를 해야 살 수 있는 명품도 있지만.     


온라인 주체성

인증샷은 공인인증서처럼 무명의 존재를 온라인상에서 이름을 갖게 하는 도구다. 주체는 인증샷이 있기 전까지 자신이 속한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사이트 등에서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만으로는 관객의 역할만 할 뿐이다. 댓글은 그 관객의 호응에 지나지 않고.


아무리 그 인터넷 공동체 속에서의 어떤 심한 댓글도 관중석의 야유에 불과한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품평을 받더라도 자신의 아이디를 넘어서는 아이덴티티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 있는 존재"로써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것이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인증샷의 사회학이자 철학일 것이다.     


SNS를 통한 인증샷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인증 확인이다. 그곳은 서로를 팔로우 하기로 약속한 알거나 알 듯 말 듯 한,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서로 칭찬해(좋아요) 주기로 약속한 알거나, 알 듯 말 듯한,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하거나, 비슷하다고 느껴지거나, 닮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인증샷은 이들 사이에서 서로 따를만함을, 서로 칭찬할만함을 상호 확인하는 인증서 구실을 한다. 그들은 동일한 곳으로 가서 동일한 사진을 찍지만 서로 다르다고 칭찬해주고 다음에 그 좋은 사진을 흉내 낸다.     


관광 상품의 변주들

결국 여행, 아니 관광 사진은 동일자에 의한 동일한 장소, 동일한 물건의 끊임없는 변주에 불과하다. 십층 이상의 빌딩이 세워진 곳이라면 어디든 비슷한 풍경이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에 사진을 찍은 사진이라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진이 있다. 차별화는 불가능하고 미세한 변주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피오르드의 절벽 위에서 위험한 사진을 찍고 목숨을 거는 것이다. 같아지는 것, 비슷해지는 것에 염증을 느낀 청춘들이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춘들, 아니 사람들은 달라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두려워하니 미세한 변주만 계속할 뿐이다.     


홈쇼핑에서 파는 관광 패키지 상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기획은 모두가 갈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 위에 자잘한 변주들을 얹을 뿐이다. 그래서 "여긴 꼭 가보셔야 합니다."와 "특급 호텔과 국적 항공기와 특별한 저녁"이라는 멘트가 공존하는 것이다. 전자는 모두가 아는 멜로디, 후자는 자잘한 변주들. 그러나 그 변주 또한 수천수만 명이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변주는 또 다른 상투적 선율이 된다.     


변주가 멜로디로 정착되면 관광 회사와 홈쇼핑은 다시 새로운 변주를 얹거나 새로운 멜로디를 찾아 나선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음식, 다른 호텔, 다른 액티비티. 관광객에 지쳐버린 동남아의 섬과 해변들이 잠시 쉼을 위해 퇴장하면 금세 교체 선수를 불러낸다. 그 섬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와 다른 멜로디의 음표가 된다. 그러나 그 음표 또한 익숙해지고 변주 또한 익숙해진다. 자본주의의 상품화라는 것은 결국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변주에 묻혀버리는 개인

관광지에서의 인증샷은 수많은 다른 변주들이지만 그 인증샷들이 함께 모여 연주하는 걸 멀리서 들으면 그건 하나의 멜로디로 귀결된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결정적 찬스를 놓치거나 주심의 오심이 발생할 때 개별 관객은 탄식을 저지르거나 야유를 하지만, 그 소리는 관중 덩어리가 지르는 “오!” 소리와 “우~”소리로 합쳐지는 것과 같다.


이 함성 속에서 내가 아는 단 한 명의 목소리를 가려내는 것이 불가능하듯 특정 관광지에서의 인증샷을 모두 모아 보는 누군가에게 당신의 인증샷을 골라내는 과제를 내면 그는 훈련소 단체 사진에서 친구를 찾아내야 하는 청년의 심정이 될 것이다. 검게 그을리고 똑같은 옷을 입은 비슷한 체중, 비슷한 키의 수백 명의 젊은 청년들의 얼굴과 관광객이 찍은 인증샷은 그렇게 닮아있다. 당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나 겨우 구분될까 누구에게도 특별함을 인정받을 수 없다.     


몰개성 시대의 개성

인터넷은 이 인정받으려 하는 욕구와 익명으로 남고 싶은 욕구가 교차하는 곳이다. 그러나 여행만큼은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을 쓰면 쓴 티를 내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그러나 도드라지는 것도 두려워한다. 모두가 개성을 강조하지만 개성이 없는 몰개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여행에서의 인증샷도 남과 다르지만 남도 부러워하며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이 갈 수 없는 곳을 가거나 여행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우린 모험가라고 부를 수 있다. 아니면 유별나 사람이거나. 예를 들어 홍콩 여행자가 딤섬을 먹거나 쇼핑을 하는 건 일반적이지만 그곳에서 트래킹을 하는 건 특이하다. 얼마 전 심혜진이 한 방송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차마 담길 수 없는 것들

이런 특이한 일 말고도 인증샷에 안 담기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일탈 행위다. 여행지에서의 모든 일탈은 기록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남아로 골프여행을 간 사내들은 골프 하는 동안의 사진은 찍어도 어떤 사람처럼 그 필드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찍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런 여행지에서 성매매를 하거나 현지 여인을 유혹하거나 과 술을 마시는 것도 찍지 않는다. 그런 것은 글로 남겨져 정보로 건네질 뿐이다. 모두가 하지만 내놓고 하지 않는 것들은, 그래서 인증샷을 찍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호텔에서의 섹스, 호텔에서의 컵라면 야식 같은 것 말이다. 삶이 가까이서 보면 다르지만 멀리서 보면 같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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