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대마도는 면세품 쇼핑객을 위한 대표적 여행지다. 심지어 체류시간이 한 시간도 안 되는 상품도 있었다. 이 여행 상품의 셀링 포인트는 여행 가는 김에 면세품도 사라는 것이 아니라 면세품을 사기 위해 여행을 가라는 것.
면세품 쇼핑의 핵심은 국내에서 사기엔 비싼 물건을 좀 더 저렴하게 사기 위함이다. 명품, 화장품, 술, 담배 등등. 그러나 원래 비싼 제품은 면세점에서도 비싸기에 당연히 면세 한도 초과는 위태롭기 마련이다. 결국 면세점엔 특정 가격 이상의 제품은 존재할 수 없다.
한 제품군의 싼 제품은 면세점 밖에서도 싸게 살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런 대안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그 제품을 사기 위해 면세점을 갈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이들이 있다. 대마도행 티켓이라도 끊게 하는. 결국 그런 여행은, 역설적으로 여행지에서 사는 기념품보다 면세점에서 산 옷, 가방, 화장품과 같은 물건들로 그 여행이 기억된다. "이건 거기 갔을 때 산거야."
기념품의 은퇴
경주나 강원도로 수학여행 가서 유명 사찰이나 유적지 앞에서 산, 조잡한 기념품으로 여행을 추억하던 시절은 끝났다. 돌하르방이 달랑거리는 열쇠고리로 제주도를 추억하던 시절도 끝났다. 면세품이 여행의 기억을 주도한다. 가방, 옷, 브랜드와 제품 모두 발음하기 어려운 화장품이 다 떨어져 갈 때 그것을 산 여행지를 떠올린다. 그 많던 기념품들은 어디 갔을까? 그 흔한 냉장고 자석은? 염주는? 엽서는?
이제 아무도 그런 기념품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제주도에 갔다 온 사람이 돌하르방 열쇠고리를 선물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런 것들 대신 먹거리 선물이 자리를 차지했다. 오메기 떡이나 한라봉 젤리가 차라리 낫다. 일본 여행을 갔다 오면 도쿄 바나나 빵을 선물해주는 게 낫다.
여행이 더 이상 기념비적 사건이 아닌 게 되면서 모든 기념품들은 그 위상을 상실했다. 일본 현지에서 마시는 맥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다 못 마셨으면 다음 여행에서 마시면 되지. 이런 정도.
주인공이 된 면세품
결국 그 빈자리는 면세품이 채운다. 지난 여행에서 산 면세품과 이번 여행에서 산 면세품은 표면적으론 다르다. 화장품, 가방, 옷 등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고, 여행이 반복되면 고르고 골라 샀지만 결국 비슷한 것들이 점점 쌓여간다. 면세점 쇼핑을 위해 사소한 필요를 만들어 이 가방과 저 가방의 차이를 확대 해석하고 저 티셔츠와 이 티셔츠의 미묘한 색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다.
그 유사한 면세품 쇼핑 리스트 속에서 여행지의 기억은 사물로만 기억된다. 아니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사물만 남는다. 기념품은 그래도 제 역할을 했다. 이젠 관광지 스폿에서 찍은 사진과 먹은 음식들이 관광 스토리의 전부다. 나그네 설움 같은 건 없다. 불쑥 선택하는 낯선 길에서 겪는 난감함도 없다. <127시간>이나 <식스 빌로우> 같은 영화적 사건도 당연히 없다. 여행의 모든 “사건”은 통제 가능한 코스에서만 이뤄지고 찍어야 할 점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내가 가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고 동행은 항상 존재한다. 금지된 길로의 진입, 지도에 안내되지 않은 명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가이드보다 더 강압적으로 당신에게 낯선 세계의 문을 닫는다.
사라진 모험
모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 어떤 SUV를 타든, 당신은 궤도 위를 도는 기차에 불과하고, 어떤 여행지를 가도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의 간판을 보며 안도하는 관광객이다. 관광객에겐 불모지와 황야, 미개척지는 허락되지 않는다. 호주 인구의 99퍼센트가 1퍼센트의 땅, 해안가에 사는 것처럼 관광객은 낯선 곳에서 허락된 1퍼센트만 보고 오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지도를 흉내 낸 관광지도가 있고, 그나마 그걸 들고 헤매던 시간도 아까워서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렌터카가 있다.
사물 - 여행의 목적
스토리의 부재는, 다시 말하지만 사물/물건으로 채워진다.
태국 여행을 가도 면세품을 사고,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가도 면세품을 산다. 여행지의 다름은 면세점에서 얻어진 전리품 속에 소멸된다. 이것은 전쟁에서 수도나 중요한 도시로 진격하는 대신 하나의 작은 성을 차지한 후, 그 성의 전리품에 마음을 뺏겨 진격을 멈춘 군대의 행동과 같다. 전쟁의 목표가 전투의 전리품 속에서 실종되는 것처럼, 여행의 목표 또한 면세품 속에서 사라진다. 아니 어쩌면 그 목적의 첫자리를 차지하게 됐는지도.
신혼여행이든 졸업여행이든 밀월여행이든 면세품이 등장하면 그 제품 안으로 의미가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 면세라는 그 환상 속에 소비자는 절약하는 착각을 일으키고 면세로 산 명품으로 인해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명품처럼 착각된다. 경험이 사치스럽고 현란한 것이 아니라 출발 전에 공항 면세품 인도장에서 이미 현란함과 사치스러움이 폭발한다. 넘쳐난다.
덕분에 면세한도는 계속 늘어난다. 덕분에 면세점은 점점 커지고 여행업의 관광 상품도 덩달아 늘어난다. 여행사들은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해외를 서울을 중심으로 컴퍼스로 원을 그려 샅샅이 찾아냈다. 이제 북한을 제외하곤 하루 만에 갔다 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이름을 붙여서라도 관광 상품으로 만든다. 아니, 솔직히, 어디든 해외면 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