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우연 : 다섯 번째 서랍 - 1인 라이프
혼자 사는 사람에겐 약이 필요하다.
TV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는 마취제다. <롱 키스 굿나잇>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실컷 총격전을 하고 호텔로 돌아온 미치와 사만다. 사만다는 그 총격전 이후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어 호텔에서 염색을 하고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반면 미치는 복부에 총을 맞아 호텔에 누워있고. 잠에서 깨어난 미치가 사만다를 마주하자 사만다의 눈에 미치의 상처 위에 피로 물든 거즈가 눈에 띈다. 사만다는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고 미치가 거기에 정신이 팔렸을 때 재빠르게 거즈를 떼어낸다. 우리는 미치와 같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잊기 위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TV를 켜 놓는다.
평생 TV 켜 놓고 잠이 든 건 혼자 자취할 때가 유일하다. 그때는 혼자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부산 살이 1년 차, 이 대도시에 내 친구 한 명이 없다는 건 분명 고통스러웠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OTT 서비스가 점점 늘어가는 것은 어쩌면 고독의 진통제의 종류가 더 많이 늘어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작은 공간에 덩치 큰 TV가 있는 것보단 그 콘텐츠를 컴퓨터나 스마트 폰 등으로 보는 것일지도.
결국 불면의 밤에 TV가 하던 역할을 수많은 OTT 서비스들이 나눠서 하고 있는 것. 모든 약이 그렇듯, 우린 여기엔 중독될 수밖에 없다. 길에서도,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우린 뭔가를 보며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배에 댄 거즈에서 피가 나오는 걸, 그 고통을 잊는다.
한국처럼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야말로 커피 공화국이라는 말이 딱 맞다. 알다시피 커피 믹스를 탄생시킨 게 우리다. 그것도 무려 1976년에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독특한 다방 문화를 만들어낸 것도 우리다. 소위 티켓 다방이라고 하는 것도 말이다. 커피를 중심으로 다양한 변종 문화를 만들어 내더니 거기에 결국은 매춘까지 얹어내는 나라. 창의적인가?
평택에 살 때 소위 오봉 아가씨들을 많이 봤다. 오봉은 일본말로 쟁반을 말한다. 지금도 어디 변두리 도시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작은 쟁반에 뜨거운 물이 든 포트와 커피잔, 스푼 등을 올리고 그걸 보자기로 싸서 커피 배달을 나갔다. 이 아가씨들이 처음엔 걸어 다니거나 했지만 90년대 들어서인가, 다들 스쿠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가씨들이 대낮에 초등학교 운동장에 선을 그어놓고 원동기 면허 시험 연습을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곤 했었다. 티코와 다마스 같은 경차가 나온 후 운전사를 고용해서 아가씨들을 싣고 다녔다.
이들은 일상의 공간을 여러 맥락에서 각성시키고 다녔다. 나른한 농촌 변두리, 어항, 읍면 단위의 작은 시골의 논과 밭, 어판장, 허름한 사무실의 공기를 바꾸곤 했다. 진한 화장품 냄새로 한번, 커피와 시답잖은 농담으로 또, 한번. 그녀의 시간을 사는 “티켓”과 그 시간에 행해지는 행위로 마지막 한번. 심지어 하루 종일 그녀의 시간을 살 수도 있었다. 밤낮없이 일하는, 그게 미덕인 줄 알고 살았던, 다방을 갈 시간조차 없던 남자들은 그녀를 불렀다.
그 많던 아가씨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대신 90년대 후반부터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이 들어섰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대학원 시절, 2천 원짜리 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자는 후배의 말에 따라갔던 명동의 스타벅스에서 가격을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물론 지금보다 쌌을 테지만 말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는 데, 주 52시간이 법으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커피 전문점은 계속 늘고 있다. 이젠 가격으로 놀라지는 않지만 대신 양으로 놀라곤 한다. 1리터는 넘은 법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가는 여대생들의 가냘픈 팔은 위태로울 정도다. 아니 그걸 다 마실 심장을 걱정해야 하나? 커피를 달고 살 정도로 우린 바쁘게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타인의 공부를 훔쳐보면서 각성해야지만 자신도 공부를 할 수 있기에 커피 매장에서 1리터짜리 커피를 마시며 책을 붙들고 있는 걸까?
흥분제가 만연한 세상이다. 스포츠, 포르노, 수많은 SNS와 이미지 사이트들.
특히 포르노가 이렇게 일상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80년대 초중반, 내 십 대 시절엔 누가 찢긴 플레이보이지 한 장만 들고 와도 사건이었다. 미군부대 앞에서 이십 년을 산 나도 동영상을 본 건 훨씬 큰 뒤였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빨간 마후라” 영상조차 VHS 테이프에 담겨 있었다. 누가, 얼마나 봤는지는 몰라도, 또 어떻게 보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도 어찌 됐든 VHS에 담겨 있었다. 그게 90년대 후반. 그 영상을 찍었던 이들은 십 대 중후반의 학생들이었다. 놀라운 건 이들이 이미 일본 성인 동영상을 보고 그걸 흉내 냈다는 점.
6mm 캠코더로 찍은 영상은 VHS 옮겨져 청계천 등에서 유통됐고, 몇 번의 유통 경로를 거치면서 화질은 엉망이 됐고, 그동안 피해자 소녀의 인생도 엉망이 됐다. 후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라는 영화가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지만 현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흥분제가 만연하고 그 강도가 노골적일수록 그건 더 이상 흥분제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뇨기과 의사들이 심인성 발기 부전 환자한테 포르노를 자주 보는지 묻곤 하는 것이다. 자극의 원천이 비인격적인-그렇다. 포르노는 여성을 사물화 시킨다. 일종의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영상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정작 연애와 결혼 후에 보는 진짜 살아 있는 여성의 신체를 통해서는 흥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극의 강도는 당연히 옆에 누워 있는 사람보다 포르노 쪽이 훨씬 세다. 그건 그렇게 설계된 영상이니까. 대화도 없고, 갈등도 없다. 유혹의 절차 따위도 없다. 그저 할 뿐이다. 우리가 이런 흥분제에 취하면 취할수록 진짜 흥분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얻어지는 교감, 그리고 그 이후 얻어지는 충만감들은 과정의 인내, 이해의 시간, 공감의 시간들이 있어야 겨우 얻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시간들을 견뎌낼 수 없어서, 아니 어쩌면 그 시간조차 비용이자 투자로 생각해서 아깝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그렇게 포르노를 들여다보는 걸까?
진정제는 흥분을 가라앉힌다. 혼란을 바로 잡아준다. 사춘기 때, 남자들의 성욕에 관해서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늘 의사들이 하는 말이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하라면서 운동을 권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앞뒤가 안 맞는 게 운동을 하면 신체가 건강해지고 건강한 신체는 당연히 흥분에 반응이 빠르고 잘 되니 오히려 운동은 성적 에너지를 키우는 게 아닐까?
이런 진정제를 잘 사용한 건 오히려 정치인들이었다. 프로 스포츠가 시작된 것도 군사 정권 2기 시절이었고, 에로 영화가 전성기를 맞은 것도, 성 산업이 알게 모르게 활성화된 것도 다 이 시기였다. 대중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끔 흥분제와 진정제를 두루 줬던 영악한 정권이었다.
지금의 운동은 모두의 열망을 흡수한다. 몸짱이 되고픈 욕망, 날씬해지고픈 욕망, 남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얻고자 하는 욕망. 이 욕망들이 수렴되어 길들여지는 곳이 수많은 피트니스 센터와 다양한 운동 학원이다. 필라테스, 요가, 크로스핏, 수영, 실내 암벽, 요즘 유행하는 실내 야구/테니스/골프 연습장 등등.
이곳에선 타자와 같고자 하는 욕망, 타자와 다르고자 하는 욕망을 갈무리시켜 모든 이들을 진정시킨 뒤 돌려보낸다. 드라이버 스윙 몇 번, 자유형 몇 바퀴면 우린 삶에 보람을 안고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불면의 밤을 얻을지 모른다. 오늘도 일만 하다 잠든다는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조던 피터슨은 한 강연에서 자기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겠다는 결심을 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성경에서도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 와서 쉬라고 했지 그 짐을 나에게 달라고 한 적은 없다. 심지어 본인의 멍에를 지라고 했었다. 인생의 짐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단지 마음에 쉼을 얻는 것. 그것이 앞에 나열한 약들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할 때 저런 약이 필요한 것이다. 쾌락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인생과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지도 없애지도 않는다. 단지 쉼만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