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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Dec 12. 2022

All or Nothig, 분양 광고를 둘러싼 모험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20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부산은 물론이고 김해의 장유, 마산 등지에 건설 붐이 일었다. 2천 년 대 초반의 라디오 카피와 TV CF 콘티 폴더 안에는 중형 아파트는 물론이고, 상가, 오피스텔, 주상복합 분양 광고 관련 파일이 여러 개 있다. 또 당시엔 대형 찜질방과 스파, 멀티콤플렉스가 입주 예정인 대형 상가 분양도 많았다. 이때, 이런 분양 광고와 함께 많은 대행사들이 탄생했고 사라졌다.      


앞서도 말했지만 건설 분양은 여러 기업이 관련되어 있다. 시공사, 시행사, 투자사, 분양사는 기본이다. 여기에 인테리어, 가구, 부동산 업체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여러 기업, 수 천 명의 생계가 분양의 흥망에 좌우된다. 그리고 여기에 광고 대행사와 제작사의 흥망도 좌우된다.  분양 단위가 크면 클수록, 당연한 이야기지만, 광고 단가도 높아진다. 제작비는 물론이고 매체비도 늘어난다. 여기에서 대행사와 제작사의 리스크가 발생한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

분양 사업에 필요한 영상물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TV나 전광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초/20초/30초 분양 광고, 다른 하나는 사업설명회나 분양 사업소/모델 하우스에서 상영하는 홍보 영상이다. 그런데 다들 봐서 알겠지만 대부분의 분양광고엔 건물이 등장한다. 물론 CG다. 우리나라는 선분양 후시공이니까. 특급 모델을 기용하지 않는다면 제작비 대부분을 이 CG가 좌우한다.      


건축 설계 회사가 만든 도면이나 CAD 화면에 적당히 색만 입혀서 광고를 하면 당연히 촌스럽다. 그걸 뼈대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지면 광고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문제는 영상은 움직여야 한다는 것. 게다가 대부분의 분양 광고주는 주변의 경관은 물론이고 내부, 건물에서 바라보이는 전망까지도 보여주길 바란다. 결국 CG가 들어가는 장면은 많아지고 그에 따라 비용도 올라간다.


더 큰 문제는 CG의 질이다. 컷이 많고 고급 기술을 쓸수록 컷 당 비용과 영상의 비용이 올라간다. 3개월 바짝 광고해서 분양을 다 털어내야 하는 분양대행사 입장에선 화려한 영상을 원한다. 어차피 완전 분양이 달성되면 몇천만 원에서 1,2억 정도의 제작비는 그야말로 껌 값이니까.      


이 3개월 동안 비싼 광고 시간과 공간은 다 사들인다. 목 좋은 곳에 있는 전광판도 사들이고 지하철 광고도 사들인다. 주요 일간지의 전면 광고는 물론이고 삽지(신문 중간에 들어가는 광고 전단)도 때려 넣는다. 아침, 저녁 뉴스 시간에 광고가 나오고 라디오만 틀면 광고가 나온다. 3개월, 모든 매체를 합친 매체비가 어느 정도 될지 카피라이터가 셈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찌 됐든 광고 대행사 입장에선, 특히 신생 회사의 입장에서 제작비+대행 수수료를 벌어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업계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이니 모험을 건다. 이제 모두들, 분양에 성공하길 기도한다. 물론 그 기도가 이뤄지지 않았을 땐.... 꽁무니에 어음과 빚과 추심이 따라붙는다.


헬리콥터 대신...

처음 들어간 대행사의 사장은 여러모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2004년인가에, 분양 광고가 하나 들어왔다. 장림에 제법 규모가 큰 주상복합 단지였다. 광고주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주로 활동하던 규모 있는 기업이 드디어 부산에 상륙해 사업을 시작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회의를 했고, 다양한 탈 것 중에, 헬리콥터를 타고 오는 걸로 결정 났다. 영상에 헬리콥터가 나오면 부산 전경은 물론이고 사업 대상지의 전경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회사 로고도 넣을 수 있고, 창 밖을 내다보며 사업 구상을 하는 대표의 모습도 멋있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당시엔 드론을 이용한 항공 촬영이 없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진짜로 헬리콥터를 빌려야 했다. 그러나 민간 촬영용 헬리콥터를 한 시간 빌리는데 수백만 원이 들었다. 왕복 비용을 다 지불해야 했으니, 헬리콥터가 일단 한번 떴다 앉으면 돈 천만 원 깨지는 건 불 보듯이 뻔했다. CG로 헬리콥터를 구현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무슨 파워레인저 같은 전대물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당시 같이 일했던 박 감독과 제작팀 일당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합판으로 헬기 문짝을 만들었다. 그 문을 당시 회사 안에 있던, 다른 영상과 합성을 위한 크로마키 촬영이 가능한 블루 스크린이 있는 스튜디오 안에 놓고 그 안에 광고주가 들어가 연기를 하게 했다. 나중에 완성된 영상을 보니, 창 밖으로 부산타워도 보이고, 해운대도 보이고.... 그랬다. 제작비를 아끼려는 우리 사장의 무리수가 희대의 괴작을 탄생시켰다.


명품 이상의 명품-하이엔드

분양 광고에 돈을 전혀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하이엔드급 주상복합을 지어 분양하는 사람들이다. 프리랜서 시절, 2015년에 해운대에 있는 초고가의 주상복합 분양 광고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미 다 지어서 우선 분양은 다 끝났고 회사 보유분 몇 채만 분양하면 됐다. 아, 지금 생각났는데, 그때 분양팀 직원 중 한 명이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참 세상 좁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자,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어떻게 연락이 왔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전포동에 있는 분양광고 전문 회사를 통해 연락이 왔던 것 같다. 여하간 그 회사 담당자랑 그 주상복합건물을 직접 찾아갔다. 십몇 층의 견본 주택으로 안내받았다. 창밖으로 동백섬이 보였다. 그렇다. 전망 자체가 프리미엄이었다. 고가로 보이는 가죽 소파에 털썩 앉았다. 주섬주섬 수첩을 꺼낸 후 분양 담당자의 말을 기다렸다. 그가 한 첫마디가 이후의 시안을 결정지었다.


“작가님, 지금 앉으신 소파가 얼마 짜린지 아세요?”

“글쎄요.”

“그거, 4천만 원입니다. 저희는 이 건물은 물론이고 여기 상가에 입정 한 업체들도 다 명품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냥 강남 청담동에 있는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대화가 끝난 후, 그의 안내를 받아 상가층으로 내려갔다. 마치 화랑이나 박물관 같았다. 사람들이 오가는데 소란스럽지 않았다. 의류며 외식 업체가 다 입점해 있는데 내가 아는 브랜드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물었다.


“제가 아는 명품은 없네요.”

“그렇죠. 하이엔드급은 일반인이 몰라요. 알아서도 안되고요.”

거긴 그런 곳이었다.    


분양 정보는 빼 달라

내게 주어진 일은 36페이지 분양 책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안을 기획하고 목차를 세우고 글을 채우는 것. 파일을 열어 봤다. 1페이지부터 32페이지까지 당연히 나와야 될 분양 정보가 없다. 학군이 어떻고, 시설이 어떻고, 설비가 어떻고.... 그런 게 없다. 표지 뒤 몇 페이지, 은과 금에 대한 이야기, 이어서 옥(건물 이름이 Jade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잠시 입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마저도 삶의 품격에 관한 이야기로 돌려 말한다.      


이어서 뜬금없이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보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내용은 상가 층에 관한 격찬으로 이어진다. 다음 장에선 돔과 기와, 서양과 동양의 지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역시 맥락 없는 듯 하지만 이어서 동 배치의 철학과 풍수지리에 관한 내용이 이어진다. 마지막 장은 이도 다완의 이야기가 나온다. 막사발과 찻잔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본차이나로까지 이야기가 뻗어 나간다. 이 내용은 실내 인테리어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여하간 이런 식이었다. 마치 무크지처럼 분양에 관한 전형적인 내용은 은근슬쩍 넣는 둥 마는 둥 넣고 대부분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채웠다. 광고주도 나도, 그 모든 것의 조화 속에 주상복합이 포지셔닝되길 바랐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다. 시안은 거의 수정 없이 통과됐다. 수정안을 보니 그나마 몇 줄 있던 구체적 정보도 뺐다. 분양사 측의 요구였다.


생계를 위한 투쟁

그 이후로 이런 형태의 분양 광고를 해 본 적은 없다. 그 이후의 분양 관련 광고주들은 완전 분양 여부에 목숨을 걸고 있었던지라 남에 다리 긁는 것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한 여유가 없었다. 입지와 상권에 열변을 토했고 수익성과 투자 가치에 열을 올렸다. 학군과 숲세권을 강조하고 대중교통과 도로망 확충을 동시에 강조했다.


완전 분양을 위해선 모두를 만족시켜야 했고,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분양광고가 세계 대전 시기의 독일이나 러시아의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닮은 건 이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야 명품도 있는 거니까..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나이가 들어 이런 생계의 절박함에 눈을 뜨게 된 이후로는 광고주가 원하는 정보는 최대한 넣어 주되, 최대한 세련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사람도 살리면서 우리도 사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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