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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선 안 되는 리액션, 혹은 포텐이 터지는 순간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10

by 최영훈

살아 있는 리액션

얼마 전에 무주에서 눈을 보고 왔다. 스키장은 처음이었다. 평일이었는데 사람들로 넘쳐났다. 숙소 창밖으로 보고 있자니 해가 져서 자기의 스키가 안 보일 때까지 다들 열심히들 타고 있었다.


한 번도 설산이나 눈 쌓인 벌판을 보지 못한 부산 사람인 딸은 설산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창에서부터 감탄사를 연발했다. 처남이 그랬다. “이 집에 왜 이렇게 여행을 자주 가는지 알겠네. 리액션 맛 집이네.”


엊그제 아내와 와인을 마시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감동과 감탄, 그리고 그 표현이 줄기 시작하면 늙는 거라고. 아내의 사무실 막내 직원은 맛있는 거 먹을 때마다 “실장님. 너무 행복해요.”, “어머. 너무 맛있어요.”라는 말을 툭툭 뱉는단다. 삼십 대 부하 직원 둘, 사십 대 중반인 아내는 그런 막내를 그저 귀여워하고.


무감각, 무반응, 무표현

반응이 없는 사람이 있다. 애초에 무딘 사람이다. 그러나 느껴도 표현을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섹스하는 내내 잔잔한 신음만 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좋다, 싫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거기다 여기다. 콕 집어 말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물론 뭐 욕을 하거나 욕을 들어야 흥분하는 사람처럼 할 때마다 소란스럽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상대의 섹시함을 칭찬해 주고 지금 몸을 전율케 하는 그 감각의 순간과 지점을 상대에 말해주라는 것이다. 터져 나오는 만큼 소리의 볼륨을 굳이 이를 악물고 줄이지 말고 나오는 만큼 내라는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어도 알아주길 바라며 에둘러 말하거나 말을 삼키지 말고 최대한 정확히 말하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보면 “여자가 남자랑 하고 싶을 때 보내는 싸인 다섯 개.”, “남자가 보내는 그날 밤의 신호.”, “목석같은 여자를 변신시키는 법”, “무뚝뚝한 남친 느끼게 하는 법.” 같은 기사나 영상이 있다. 이런 걸 보면 “다들 한가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청춘이 영원한 줄 알고, 내 몸을 안아 줄 사람이 항시 대기하는 줄 아는 구나하는 생각도 절로 든다.


지금이 절정이다.

얼마 전 <유퀴즈>에 김혜자 선생님이 나오셨다. 나오셔서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의 한 대사를 말하셨다. 마지막 대사가 이랬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아마 앞의 대사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금을 망치지 말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포옹을 내일도 할 수 있을까? 온몸을 열어 나를 받아주는 그녀를 내일도 볼 수 있을까? 온몸의 근육을 팽팽히 잡아당겨 단단히 만든 후 나를 꼭 안아주는 그 남자의 젊은 육체를 내일도 볼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오늘, 지금,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끽할 뿐이다.

2023. 01. 14


터져야 제 맛이다.

화병은 실제로 브리태니커 사전에 한국에만 있는 병이라고 되어 있다. 어찌 보면 화병이란 참아서 생기는 병이다. 스님이나 수녀님, 신부님은 이 병이 안 생기는 건 속을 털어놓을 동역자와 신이 있기 때문일 거다.


섹스를 할 때 이런저런 터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정한 신체 부위나 사물에만 흥분하는 페티시즘에 빠진 사람들보단 나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기에 대한 합의와 공감이 없으면, 터부가 많은 사람은 상대에겐 화병의 원인이 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여자에게 아무 소리도 못 내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경박해 보이고 천박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사람에게 그러지 말고 단백질 인형이랑 하라고 말해줬다. 정상위, 소위 선교사 체위만 고집하는 지인도 있었다. 이게 정상이 아닌 게 폴리네시아 인들은 후배위만 하는데 선교사들은 정상위만 해서 선교사 체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 지인에겐 창의적인 바르셀로나의 축구를 보라고 추천해 줬다.


포텐이 터지는 순간

포텐이 터진다는 말을 종종 한다. 섹스에서도 포텐이 터지려면 상대를 잘 만나서 금기가 해제되어야만 터진다. 소리의 데시벨 제약도 없고 체위와 주도권의 위계도 없어진 상태에서 말이다. 반면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금기를 만나면 그야말로 화병 난다. 속 터진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하면 할수록 몸살이 날 것이다.드리블 없이 축구하라는 것하고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금기를 강요당한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마트에서 핑크색 남자 린넨 재킷을 보고 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서른 중반부터 메탈을 좋아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일지도. 사회적으로 체계적으로 조여 오는 규제는 중년 남자의 패션을 등산복으로 가게 하거나 날라리로 가게 하는 것 같다. 규제를 당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거나 미약하게나마 저항하고 있음을 희미하게 알리거나.


어느 쪽이든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요즘 화병에 걸린 것 같다. 항상 답답하고 열이 올라 있다. 그러다 뜬금없이 한기가 든다. 갱년기라고 하기엔 좀 이르지 않나 싶으니 이건 화병인지도...기가 막혀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말 기가 막혀 있는 날들이다.

201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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