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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총량과 그것을 제 때 소화 못 했을 때의 후유증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11

by 최영훈

밤이 무섭지 않은 사람은 술을 마신다.

마감일에 맞춰 칼럼을 보낸 후 순대 전골에 막걸리를 몇 잔 마셨다. 밤이 무섭지 않은 사람은 저녁을 좀 배부르게 먹어도, 술을 좀 과하게 마셔도 된다. 나보다 나이가 든 영감들이 허구한 날 술을 마시는 것도 사실은 그거 말고는 딱히 밤에 할 일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좀 고상한 영감들은 서재에 박혀 있거나 무슨 협회니 위원회니, 동창회니 각종 단체의 간부를 해보겠다고 정초부터 뛰어다닐지도 모르겠고. 술을 좋아하지만 취하는 건 일 년에 두어 번이고, 이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들어서 무슨 단체에 소속되는 건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을 쓴다. 생산적이다.


매거진의 목표

이 매거진의 목표는 하나다. 더 많은 청춘들을 더 젊을 때, 더 자주 뜨거운 시간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리 하도록 청춘들을 독려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바람대로 이뤄진다면 그 또한 애국 아닐까? 이 우울한 나라에서 팍팍한 현실을 버티며 살아내는 청춘들이 한 번이라도 더 사랑에 빠지고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밤을 보내는 것만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있겠나?


X의 총량

아내와 내가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것엔 총량이 있고 그 총량의 실현엔 어울리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에도 총량이 있다. 사람마다 정해진 분량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많고 어떤 사람은 적다. 적든 많든 주어진 총량은 죽기 전까지 소화해야 한다. 적더라도 젊은 시절 다하지 못하면 늙어서 이 학교 저 학원 전전하거나 환갑이 넘어서도 각종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전전해야 한다.


반항이나 일탈도 마찬가지다. 사춘기 때 얌전했던 사람이 느닷없이 사십 대에, 갱년기에, 다 늙어서 주책을 부릴 수도 있다. 갑자기 염색을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겠다고 집안을 발칵 뒤집을 수도 있다. 다 늙어서 색소폰을 배우겠다고 하거나 볼륨 댄스의 스텝을 밟기도 한다.


연애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그 횟수와 깊이, 온도 차이는 있겠다만 우야든지 간에 정해진 총량은 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오토바이나 운동처럼 젊었을 때 하는 것이 폼 나는 것이 있다. 젊었을 때 해야 그림이 볼만한 것이 있다. 연애가 그런 것이 아니겠나? 그래서인지,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다 늙은 교수나 학자, 문인이 젊은 제자나 후배들의 허벅지를 제 마음대로 만지고 손목을 만지작거리고 연구실과 작업실로 불러들이는 것은 추하다.


연애를 해야 마땅한 청춘의 시기에는 제 먹고살겠다고 그걸 등한시하다가 좀 여유가 생기니 욕정이 생기는 모양인데, 빛나던 청춘은 도서관에 받쳤고 정력은 책과 의자에 헌납한 뒤 남아 있는 정력과 매력이 있을 턱이 없다. 결국 나이가 깡패요, 계급과 권위를 무기 삼아 힘없는 제자와 후배를 안으려 하니. 역겹고 추하다.


삼심 대 때, 대학 강사 시절에도 그런 흉흉한 소문을 들으며 역겹다 생각했지만, 나이가 쉰이 되어보니 더 역겹고 도저히 그림이 안 나온다. 난 눈썹도 희고 머리도 희니 그 그림을 더 그리 느끼는 것일까? 모양새가 그리하지 않더라도 역겹긴 마찬가지 아닐까? 젊은 육체 앞에서 그 비루한 육체와 욕망은 거두는 게 낫다. 남은 정열과 정력은 책장을 넘기는 데나 쓰는 것이 그나마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나?


사랑하기 좋을 때가 있다.

사랑에도 때가 있다. 한남이며 김치녀니 하며 서로를 혐오하며 대치하며 세월을 보내기엔 청춘도, 인생도 너무 짧다. 썸을 타고 어장을 관리하며 봄을 보내기엔 벚꽃은 너무 빨리 진다. “라면 먹고 갈래?”,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할래요?” 같은 말로 서로 간을 보며 시간을 죽이는 건 시간 낭비다. 어떤 고상한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지만, 청춘이 두려워해야 할 건 아픔도 아니고 거절당하는 것도 아니다. 청춘이 지나간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렇게 청춘 다 보내고 나이 들어서 산악회를 기웃거리고 초등학교 동창회를 드나들면서 못다 한 열정을 불륜으로 승화(?)시키는 실수를 하지 말자. 배 나온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서 하는 연애가 뭐 보기 좋겠나? 그런 아줌마 아저씨의 음흉한 일탈을 담은 글을 밑에 실었다.


수영장에서 이십 대 아가씨들을 볼 때가 있다. 몸이 좋은 총각들을 볼 때가 있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눈부시다. 나와 다른 종족이다. 참 좋을 때다, 같은 말이 절로 입에서 나온다. 그래 열심히 운동해라. 열심히 운동해서 만든 몸과 체력을 사랑에 쏟아라. 이 아저씨는 책상에 앉아 읽고 쓸 힘을 유지하기 위해 물속에서 허우적댄다만 너희들은 더 생산적인 일을 위해 그 힘을 써라. 뭐 그런 생각들을 한다.

2023. 01.15


선배의 여자는 왜 나이를 속였을까?

울산 강동에 오피스텔 분양 광고 건으로 광고기획사를 하는 선배, 감독, 나, 분양대행사 대표가 회동했다. 강동엔 처음 가봤는데 반달 모양의 괜찮은 부지였다. 문제는 이곳에 소형 오피스텔이 분양이 되는 거냐는 문제... 대표는 이러저러한 세일링, 분양 포인트를 알려줬고... 우린 그 포인트와 지리적 특장점의 상호 배타적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며 두어 시간을 보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가 카톡을 슬쩍 보더니 뭉기적거리며 말을 꺼냈다.

"하~ 이 사람...."

"왜요 선배?"

"최작가. 내가 한 일 년 반 전에 여자가 한 명 있었거든요."

참고로 선배는 서른 전에 결혼해서 아들이 벌써 중3이다. 그야말로 거의 첫사랑과 결혼해서 사는 셈.

"에~? 어떤 여자?"

"희한한 여잔데... 이 여자랑 3개월 사귀었는데... 알고 봤더니 띠 한 바퀴를 속였어. 나이를"

처음엔 뭔 소린가 했다. 그러니까 선배가 좋아서 아주 어린 여자가 나이를 속였다는 건가?

"응? 뭔 소리야?"

"알고 봤더니 66년생이더라고."

"에? 뭐야 연상이야. 아줌마 재주 좋네. 관리 잘하셨나 보네."


선배, 나, 감독은 비슷한 또래로 70년대 초반 생에 90년대 초반 학번이다. 그런데 여자가 78년생이라고 속였다고 한다. 위로 거의 열 살 많은 여자가 밑으로 대여섯 살 어리다고 속였으니... 결국 형수한테 들켜서 이혼 직전까지 갔지만 아들이 이미 중1, 험난한 광고 바닥에서 망하지 않고 버텨온 선배와 그 와중에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형수의 의리와 신뢰 덕에 그건 겨우 면했단다.

"예뻤나배?"

"....."

"아유... 몸매도 좋았겠는데?"

"...."


선배는 말이 없었다. 대신 이런 이야기를 덧 붙여다.

"내가 막 결혼하고 나서 어디 가서 점을 봤거든요. 그런데 점쟁이가 내 얼굴 딱 보더니....'야, 니한테 웬 나이 먹은 년이 붙어 있다.'이러는 거라. 그래서 내가 “아닌데예, 저 여자 안 좋아하는 데예”그랬지. 그랬더니 “뭘 안 좋아하긴, 안 좋아해. 한 명 붙어 있어. 조심해.”이랬던 거라. 그런데 그걸 까맣게 잊고 살다가 이 일 있고 나서 그게 퍼뜩 생각났는데... 와.. 소름이 기냥 쫙~~."

선배의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오늘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을 갖고 독서 모임을 하다가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이게 에로스 같아?" 다들 고민했다.

"선배는 몰라도... 그 여자는 진짜 그야말로 물불 안 가렸던 거 같아. 그야말로 주체를 타자한테 휙 던져버린 거지. 앞뒤 안 재고. 그러니까 나이고 나발이고.... 유부남이고 중학생 아들이고 안 보고 덤볐겠지."


그 여자는 지금도 가끔 선배한테 톡을 한다고 한다. 무엇이 진짜 사랑인지 알 길이 없다. 그 여자의 사정이 뭐였기에 열두 살이나 속이고 선배한테 다가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이 뭐였고, 선배는 뭐에 씌어서 그 나이가 안 보였는지, 눈치를 못 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 재고 썸 타고 그제야 겨우 사랑을 시작하는 요즘 친구들 사랑 이야기보다... 그리고 선남선녀들이 맞선부터 연애까지 사랑의 A, B, C를 가르쳐주는 <선다방>, <로맨스패키지>, <하트시그널> 같은 프로그램 속의 환상적인 청춘남녀들의 밀당보다.... 왠지 더 적나라한 사랑의 민낯을... 전략을 넘어서는 무모한 사랑의 돌진을, 이 두 중년 남녀의 해프닝에서 본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했던 오후였다.

2018.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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