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an 20. 2023

갈채가 쏟아질 때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30

무대 매너도 배운다.

나이가 오십이 넘었지만 칭찬에 대한 반응이 서툴다. 뭐, 어디 서툰 것이 이것뿐이겠느냐 만은, 칭찬에 대한 반응이 유독 서툴다. 앞서 말했듯이 수영장에서 괜찮은 3번이 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모든 세트를 소화하고 있다. 뒤처지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다. 오늘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한 뒤 물기를 닦는데 옆에 서 있던 2번 아저씨가 한마디 하셨다. “야, 이제 뭐, 잘 따라오던데요?”, 내가 뭐라고 그랬을까? “하~ 예.”, 이게 다였다.     


대학 시절, 음대 다니는 친구들한테 듣기로는 무대에서의 인사법도 배운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고 갈채가 쏟아질 때, 연극이 끝나고 무대 뒤로 사라진 배우들이 커튼콜을 받고 다시 나올 때, 그들의 인사가 멋들어진 이유다.      


두 팔을 살짝 들어 손을 앞으로 내밀어 쏟아지는 갈채를 온몸으로 받은 뒤 다시 손을 가슴팍에 모아 그 갈채에 감사함을 표한다. 때로는 두 손을 모아 잡고 감사함과 겸손함을 함께 표하기도 한다. 그래도 박수가 이어지면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잠시 멈췄다가 환하게 웃으며 객석을 본다. 짧게 목례를 한 후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무대 뒤로 사라진다. 자연스럽고 멋있다.      


낯간지러운 칭찬

나와 감독을 비롯한 우리 또래들은 칭찬받는 일이 서툴다. 최소한 감독과 나는 그렇다. 최근에서야 둘 다 그렇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고객이 감독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야, 영상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하고 말을 꺼내면, 감독은 “아유. 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그 정도의 말로 답을 한다. 이건 칭찬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아니지 않나? 애매모호하다.  


뭐,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작년 일이다. 시청의 모 국장실에서 최종 시사를 하기 위해 잠시 복도에서 기다릴 때였다. 담당 계장이 느닷없이 “야~ 이렇게 좋은 카피가 딱 생각났을 때, 기분이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난 생전 처음 칭찬을 들은 소년처럼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 예, 뭐 기분이 좋죠.”하고 넘어갔다.      


강연자로 간 강연에서 페친이자 안면이 있는 공간의 대표님과 재회했을 때였다. 강연 시작 전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 딸에 대해 쓴 내 브런치 글이 화제에 올랐다. 자기도 애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데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아이와의 대화를 기억했다가 글을 써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다채롭게 쓰시냐고 칭찬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그때 난 겨우 “아유, 카피라이터로 20년 가까이 먹고사는 데 그 정도는 해야죠.”하고 답했다.      


“섬세한 감성과 따스한 시선, 꾸준한 메모와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그런 글이 나옵니다.”하고 말할 만큼 뻔뻔하지 못한 걸까? “갑자기, 번개 치듯이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물론 소나기도 구름이 모여야 쏟아지듯이 각종 자료와 메모를 쌓은 후에야 그런 순간이 오죠.”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는 없는 걸까? 최근에서야 그 원인을 알았다. 칭찬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병의 원인 말이다.     


넌 교만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서른 즈음, 어머니가미국에 이민 가실 때까지, 아니 심지어 미국에서도 카톡을 통해서도, 내가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넌 태생이 교만하니까 항상 겸손해라.”라는 말이었다. 교회 밴드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치고, 20여 년 간 교회를 다니면서 꾸준히 성가대를 하고 썩 괜찮은 소리 덕분에 음대를 가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을 정도로 노래도 제법 했지만, 그 성실함과 약간의 음악적 재능에 대해서도 칭찬을 받은 적은 없다. 물론 자랑스러워하셨다는 건 안다. 대학에 갔을 때도, 대학원에 갔을 때도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러나 꼭 그 뒤에 “넌 교만하니 항상 겸손해라.”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했던 덕목

학교에 다닐 땐 문제가 없었다. 다들 거기서 거기고, 내가 만난 교수들은 대체로 칭찬을 안 하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사회에 나가니 이런 세뇌교육이 의외로 문제가 됐다. 카피라이터 일을 하면서 선후배 동료들에게, 고객에게 이런저런 칭찬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었다. 잘못 말해서 교만해보이거나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카피나 아이디어, 시나리오나 콘티에 대한 칭찬을 하면 “감사합니다.”하는 말도 겨우 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자랑할 때도, 자랑할 사람도 없었다.      


허기야, 매력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서른이 넘어서였다. 물론 그 친구가 워낙에 취향이 특이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중에 “당신, 섹시해.”라던가, “등이 너무 예뻐.”같은 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듣게 된 이후에서야 외모에 대한 칭찬에 대해 적절히 반응할 수 있었다.      


여전히 서툴다.

아직도 카피나 글에 대한 칭찬에 대한 반응은 서툴다. 몇 년 전부터 겨우 “감사합니다.”나, “애를 썼습니다.”, 또는 “아, 주무관님도 A 안이 좋으시군요. 저도 써 놓고 나니까. 그게 제일 마음에 들더라고요.”와 같은 반응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만취 시무식을 하면서 감독이 그런 말을 했다. “작가님은 이제 밖에 나가서 내보다 카피 잘 쓰는 놈 없다. 나보다 글 잘 쓰는 놈 없다 이래 좀 자랑하고 다녀야 돼. 누가 선생님, 작가님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고.”     


날 오랫동안 보아온 감독의 지적은 대체로 정확하다. 솔직히 밖에서 작가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약간 움찔한다. 뭐랄까.. 작가라는 단어에는 뭔가 고상한 기운이 있지 않나? 그래서 실무적이고 실용적인 직종인 카피라이터로 불리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그 약간의 불편한 마음을 감독은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칭찬에 대한 반응도 배워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칭찬을 받을 줄 아는 아이들은 반응도 자연스럽다는 걸 알았다. 거만하지도 않고 불필요한 겸손도 없다. “하이고, 제가 뭘.”하는 말도 당연히 안 한다. 배워서 하는 무대 인사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고 몸에서 우러난다. 부모와 친척의 칭찬에 적당히 감사를 표하고 칭찬받을만한 일을 한 자신에게 적절한 영광을 돌린다.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이 없다면, 우린 음대나 연극영화과 학생이 무대 매너를 배우는 것처럼 칭찬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연습해야 한다. 허세를 부릴 필요도, 홀로 영광을 독차지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결과물이 뻔히 보이는 우리 일에 대해 누군가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 칭찬을 하면 담담히 반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해서 괜찮은 결과를 냈으면, 그래서 그 결과에 대해 동료와 고객이 칭찬을 하면 그 칭찬을 누리자. 누리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자. 적절한 표현을 꾸준히 하자. 뭐든 나이 먹고 배우면 쉽지 않다. 뭐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배우는 게 좋다.      


다시 말하지만, 영광을 누리는 법, 칭찬과 갈채에 감사를 표하는 법, 쏟아지는 커튼콜에 마지못해 나와 멋지게 인사하는 법, 그런 세련된 표현법을 익히자. 애인이 당신 섹시하다고 말을 하면, “응 내가 좀 그렇지.”하고 뻔뻔하게 받아들이자. 나도 아직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연습 문제 나간다.

“야~ 이번 카피 너무 좋던데요.”

“이번 영상, 촬영을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주 그냥 때깔이 죽이던데요?”

“그 오프닝 타이틀, 그거 무슨 프로그램으로 한 거야? 야~ 감각이 달라, 감각이.”

적절한 답을 찾았나? 나중에 혹시라도 나와 만날 일 있으면 함께 연습해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20년차! 올해도, 늘 그랬듯 묵묵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