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리액션 버튼과 마음의 굳은살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29

by 최영훈

눈을 보고 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설산과 눈 덮인 벌판을 본 적이 없는 딸 덕분에 난생처음 무주의 덕유산에 다녀왔다. 딸이 그렇듯 나 또한 스키장이 처음이었다. 설산을 본 것도 꽤 오랜만이었고. 십 몇 년 전에 본 북해도의 설산이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처남과 동행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처남은 마침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난 지난 연말부터 집에서 피곤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중이었다. 누나가 어디 가자고 하면 생전 따라나설 생각을 안 하더니 이번엔 무슨 마음인지 따라나섰다. 아내한테 건너 듣기로는 조카인 은채가 학년이 올라가면 바빠져서 같이 여행 갈 시간도 없을 것 같아 따라나섰다고 한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는 부산에서 출발해 경북으로 조금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경남의 북단인 고령과 거창을 스치며 경남과 맞닿은 무주로 나아갔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를 좋아하는 딸 덕분에 서너 번은 들르리라 예상했으나 중간에 딸이 잠드는 바람에 두 번 정도 들렀다.


차가 거창으로 넘어가자 드문드문 잔설이 남은 벌판이 보였다. 멀리 눈 쌓인 산도 보였다. 마침 딸도 깼다. “와~ 눈이다.”, “야~ 많이 왔다.” 딸은 연신 감탄사를 내질렀다. 깬 김에 거창 휴게소에 들렀다. 덜 녹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딸은 거기서도 감탄했다.


딸의 감동과 감탄은 무주 리조트에 다가 갈수록 더 많아졌고 더 커졌다. 덕유산으로 넘어가는 거창에서부터 저 멀리 덕유산이 보였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빼재의 굴곡을 따라, 산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고, 그에 따라 딸의 감탄도 이어졌다.


무주 리조트의 웰컴하우스로 아내가 체크인을 하러 가는 길, 나도 따라 내렸다. 딸은 삼촌이랑 차에 남겠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소문대로였다. 스위스 휴양지의 목조 휴양시설을 그대로 가져온 듯했다. 이 특이한 건축물을 혼자 보기 아까워 딸에게 전화를 했다. 들어오라고 했다. 딸은 들어오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높이 달린 목조 샹들리에, 굵은 사각 나무 기둥과 그 한쪽에 붙어 있는 오렌지 색 조명, 석고색의 아담한 분수.

그곳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멋진 나무 기둥 앞에서도 찍고 입구에 있던 작고 낡은 빈티지 자동차 앞에서도 찍었다. 눈이 두텁게 쌓인 작은 정원 위엔 낡고 빨간 트램이 서 있었다. 그 앞에서도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딸은 제 각각 다른 포즈를 취했다. 사실 언제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그렇다. 딸의 사진 중에서 똑같은 사진은 없다.

스키장이 잘 보이는 5층 방을 줬다고 아내가 자랑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는데 야산의 절개면을 마주하고 있는 건물의 처마 밑으로 굵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내 한쪽 다리만큼 굵고 긴 고드름이었다. 이렇게 큰 고드름은 물론이고 고드름 자체를 거의 본 적 없던 딸은 당연히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진짜 크다.”, “와, 어떻게 이렇게 클 수 있는 거야.”

짐을 풀고 내다보니 그 말이 맞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징 긴 슬로프와 가장 가파른 슬로프가 있다는 곳. 그리고 한 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슬로프가 있던 곳. 그 유명한 하얀 덕유산이, 눈부신 스키장이 거기 있었다. 난 그저 말없이 보고 있었다. 스키는 물론이고 스노보드도 타 본 적 없는 나로서는 딱히 설렐 이유가 없는데도 설레었다. 하얀 산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떴다. 그러나 그저 말없이 보고 있었다.


딸은 소란스러웠다. 비명을 지르고 “아, 너무 좋아.”, “낭만적이야.”, “너무 좋잖아.”와 같은 말을 연발했다. 침대에 누워보기도 하고 코가 찌그러질 정도로 창문에 밀착해서 밖을 구경하기도 했다. 주방 식탁에 막 풀어놓은 간식 더미에서 먹고 싶은 과자를 찾아내 먹으면서도 시선은 하얀 슬로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후 세시, 부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추웠지만 걱정만큼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덤덤한 성격인 처남은 눈앞의 스키장을 외면하고 사우나를 하러 가기로 했다. 딸과 아내는 눈썰매를 타러 가기로 하고. 물론 나도 타러 가려했지만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안고 탈만큼 딸이 어렸다면 또 몰라도 이제는 제 혼자 썰매를 끌고 올라갔다가 타고 내려 올만큼 컸다. 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내고 몇 번 타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돈도 아까웠다. 난 사진이나 찍어주고 주변 산이나 구경할 테니 두 여자나 열심히 타라고 했다.


세 번 연속으로 타는 것까지 보고 산책을 시작했다.

슬로프에 가득 찬 스키어와 보더들을 구경했다. 수요일 늦은 오후. 이 사람들이 다들 어디서 온 건지.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오늘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절박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부산 송정 해수욕장의 서퍼들이다. 스키어나 보더들은 겨울에만 이러지만 서퍼들은 사계절 내내 발을 동동거린다. 한 번은 호캉스를 한답시고 아내와 딸과 함께 근처 호텔에서 숙박을 한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근처 유명 빵집에 빵을 사러 가는 데 이미 서퍼들이 주 고객인 대여점과 숙소들의 문이 열려 있었다. 혹시나 해서 해변에 갔더니 서퍼들이 둥둥 떠 있었다. 아침 일곱 시나 됐을까? 여름만 그런 줄 알았더니 겨울에도 그랬다.


어제 아내랑 와인을 마시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감동과 감탄을 안 하기 시작하면서 늙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당신이나 나나 어린 시절에 그런 걸 배우지 않아서 그렇게 못하는지도 모른다고. 내적 환호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뭔가 기분 좋은 일, 쾌감이 오는 사건이 있는데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표정이나 묵음으로 표현하는 걸 말한다. 딸에겐 내적 환호가 없다. 모든 환호가 온몸으로, 온갖 소리로 표현된다. 맛있는 걸 먹으면 “진실의 미간”이 나오고, 이탈리아 사람처럼 격하게 표현한다. 웃긴 일이 있으면 깔깔 대며 웃고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금세 눈물을 흘린다.


지기 싫으면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하고, 잘하고 싶으면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한다. 이를 통해 이뤄낸 성과와 받은 상장의 기쁨과 영광 또한 오롯이 만끽한다. “운이 좋았다.”라든가, “컨디션이 좋았다.”, “친구들의 도움 덕분이다.”와 같은 겸손이나 빈말도 하지 않는다. 자기가 마땅히 누려야 될 영광과 기쁨은 오롯이 자기가 누린다. 그렇게 딸은 삶의 모든 순간을 만끽하며 산다. 감동과 감탄이 이어지고 기쁨과 슬픔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간다. ~척 같은 건 없다. 그저 누리며 살 뿐이다.


다음 날, 거제도로 이동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진해에서 제철인 가리비를 잔뜩 사 오셔서, 합류하여 함께 구워 먹기로 했다. 모처럼 3대가 모이는 곳은 딸이 몇 번 갔던 풀 빌라였다. 경치도 좋고 시설도 좋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객실로 예약했다.


도착 후, 체크인을 한 뒤, 딸은 직원의 설명을 듣는 엄마를 따라갔다. 복층으로 된 숙소 곳곳을 엄마와 둘러봤다. 주차장에서 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딸의 모습이 보였다. 딸의 얼굴엔 들뜬 기운이 역력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은 뒤 강아지처럼 좋아하며 동동거리는 딸에게 진정하라고 했다. “와, 아빠 너~무 좋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처남이 그랬다. “아니, 이 집이 여행을 자주 다니는 이유가 있네. 리액션 맛 집이네. 반응이 좋아.” 딸도 웃고, 아내도 웃고 나도 웃었다. 삶의 모든 순간을 온몸과 마음으로 누리며 만끽하는 사는 딸과 여행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눈이 가는 모든 곳에 멈춰서 사진을 찍어야 하고 맛이 궁금한 건 먹어봐야 한다. 마음엔 굳은살이 박여 있고 몸엔 피곤함이 스며있는 오십 대의 아빠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이다. 아내와 내가 반반씩 감당하면서 딸과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딸이 좋아하는 얼굴을 보면 나도 좋다. 딸의 감탄사를 들으면 나도 함께 감탄사를 연발한다. 딸이 맛있는 표정을 지으면 나도 그런 표정을 짓는다. 딸과 함께 여행하면서 고장 났던 리액션 장치가 수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박혔던 굳은살을 뚫고 감정의 새살이 돋아나는지도 모르겠다. “아빠, 좀 웃어. 사진 찍을 땐 웃어야지.”하는 딸의 면박 끝에 찍힌 내 얼굴이 웃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슬로프와 사람과 덕유산의 경치를 구경하고 다시 돌아온 눈썰매장. 두 여자는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그 한 번을 마지막으로 나왔다. 몇 번을 탔냐고 물었더니 “글쎄, 한 열 번? 힘들어서 더 못 타겠더라.”, 당연하다. 더 타는 것이 이상하지. 둘 다 어지간하다.


딸은 눈발이 날리는, 향제루에서 향로봉까지의 등산에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안 했다. 오히려 겨울 설산과 상고대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딸이 아니었으면 평생 못 봤을 절경이었다. 딸이 아니었으면 오지 않았을 무주였다. 딸이 아니었으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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