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배우는 것들 - 사람, 사랑, 우정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27

by 최영훈

딸을 키우면서 딸에게 배운다.

딸은 크는 동안 놀라운 인내심을 보여줬다. 아빠는 서른이 넘어서까지도 안 해본 예습과 복습을 충실히 하는 성실한 학생의 모습도 보여줬다. 어린이집 학예회 연습이 시작되면 집에서도 성실히 연습해서 친구들에게 가르칠 정도로 완벽하게 터득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렇게 터득한 율동을 시민회관에서 공연하게 됐을 때,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력이 응축된 열정을 보여줬다. 뭐 하나, 내겐 없거나 함량이 부족한 것들이다.


요즘엔 우정과 사랑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이번 주말, 엄마랑 대형 마트에 갔다 온 딸은 고급 초콜릿을 사 왔다. 웬 거냐고 물었더니 다음 주말이면 주현이랑 사귄 지 1년 되는 날이어서 선물로 주려고 사 왔단다. 아빠 거는, 하고 물었더니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엄마와 눈을 맞추더니, “아, 이게 두 개 포장되어 있는 거니까, 하나는 아빠 줄 게.”하고 넘긴다. 아마 오기 전,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엄마랑 입을 맞췄던 모양이다.


주현이는 남자 친구다. 아직 스마트 폰이 없고 위에 형이 하나 있는 훈남이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닌데 슬쩍 봐도 귀한 집 아들내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앞선 글에도 썼듯이 은채를 기다리고 있는 내게 함께 와서 90도로 인사할 정도로 반죽도 좋다. 사계절 내내 무채색 옷을, 그것도 유명한 등산 브랜드만 입는다. 아버지가 그 브랜드 팬이지 싶다.


둘은 그야말로 친구 같은 이성 친구 관계로 일 년을 보냈다. 뭔가 요란한 이벤트도, 데이트도 없이 - 물론 이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 학교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학원차가 올 때까지,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줬다. 성격이 똑 부러지는 은채가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이 녀석은 그런 것도 딱히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생김새만큼 성격도 둥글둥글한 걸까? 여하간, 그렇게 둘의 1년이 지나갔다.


요샌 예림이와 학교를 간다.

앞서 썼듯이, 예림이는 첫 번째 어린이집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학교에서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같은 반이 된 적도 없다. 그러다 4학년 때 같은 반이 된 뒤 친하게 됐다. 예림이는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좀 예민해 보였는데 요새는 골든 레트리버 강아지 같은 느낌이다. 딸이 오는 걸 보면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몸을 앞으로 약간 쏠리듯이 하면서 뛰어온다. 당연히 그런 자세에 불안함을 느끼는 나는, 그럴 때마다 “왜 뛰어. 뛰지 마.”하고 말리지만 그때뿐이다. 다음 날 또 뛰어 온다. 두 소녀는 만나면, 일단 두 손을 마주 잡고 인사를 한다. 마치 창문을 닦듯이 양 손바닥을 마주대고 안에서 바깥쪽으로, 두 번 정도 돌린다. 분명 어제도 본 사이일 텐데, 이렇게 반가울 일인가 싶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일곱 시 사십오에서 오십 분 사이, 딸은 학교 갈 준비를 끝냈거나 끝나갈 즈음, 예림이에게 전화가 온다. 대체로 긴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은채야!”

“응?”

“너 준비 다 했지?”

“응.”

“아, 난 좀 늦잠을 잤어. 너 천천히 나와야 돼.”

“응, 알았어. 너도 천천히 준비해.”

가끔은 치약 거품이 목소리에 섞여 나올 때도 있고, 밥을 우물거리며 씹는 소리가 섞일 때도 있다. 오늘 아침엔 통화를 방해하는 중학생 오빠에게 화를 내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종종 예림이가 먼저 나와서 기다릴 때가 있다.

은채 보고 천천히 나오라고 말해 놓고서는, 행여나 먼저 나와 기다릴까 싶어 부지런히 움직인 것이 분명하다. 예림이는 집에서 3,4분 걸어 나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만나는 장소니 늦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종종 거리며 나오면 먼저 나와 기다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리라. 은채와 난, 그 만남의 장소까지 십 분 가량 걸어가야 하니 말이다.


바이올린 방과 후 교실이 있는 날, 만남의 장소에서 바이올린을 딸에게 건넨다. 보조가방과 바이올린 가방을 양손에 들고 예림이와 학교를 향해 돌아서 가면,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예림이는 은채 팔을 붙잡고 찰싹 달라붙는다. 잠시 후, 예림이가 은채의 보조 가방을 뺏듯이 가져간다. 자기는 양손이 자유롭다. 친구의 손을 잡으려면 친구의 한 손이 자유로워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친구의 양손에 든 짐 하나를 양손이 자유로운 내가 들어줘야 한다.


친구란 그런 것이었다.

친구의 짐을 받아 든 예림이도, 자기의 짐 중 그나마 가벼운 걸 건넨 딸도 친구를 먼저 생각한다. 만남의 장소에서 학교까진 걸어서 불과 3,4분 거리. 손을 잡고 걸어도 그만 안 잡고 걸어도 그만인 시간이지 않을까? 예림이와 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두 소녀는 학교를 향해 돌아서자마자 그렇게 손을 잡고 걸어간다. 공원 양편의 동백나무와 소나무, 버들나무와 단풍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걷는다. 가을이 갔고 겨울이 왔다. 두 소녀의 옷은 두꺼워졌다. 예림이는 다람쥐 같은 모양새가 됐고, 딸은 새끼 양 같은 모양새가 됐다.


매정한 사람이다. 건조한 사람인지도.

내 쪽 친척이나 가족과는 거의 연락을 안 한다. 주기적으로 통화하는 사람은 아내와 딸, 감독, 그리고 후배 몇 명뿐이다. 가끔 미국의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술을 좋아하지만 아내의 잔소리를 안주 삼아 집에서만 마신다. 밖에서 마시는 경우는, 함께 일하는 감독하고만, 일 년에 서너 번가량 마실 뿐이다. 대화를 하는 사람은 더 몇 명 안 된다. 아내와 딸, 수영장에서 강사와, 수영이 끝난 후에는 2번 주자 아저씨와 몇 마디 나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감독이 어쩌면 가족 외에 가장 길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리라.


집에서 혼자 기획서를 만들고 카피를 쓰고 홍보영상 시나리오를 쓰고, 이렇게 쓰고 싶은 글과 칼럼을 쓸 때, 그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다. 침묵한다. 키보드 소리와 컴퓨터의 “웅~”소리만 들린다. 컴퓨터를 끄면 적막함이 들리는 것 같다. 물론 일 때문에 미팅을 가거나 회의를 하게 되면 대화를 주도한다. 감독은 영상과 제작 과정 및 일정에 대해서만 말을 하고 나머지 기획과 표현 전략 부분은 내가 대부분 얘기한다. 길게는 회의가 두 시간을 넘길 때도 있는데, 그런 회의가 끝나고 나면 어지럽다.


딸은 정반대다. 아마 엄마를 닮아서겠지.

1학년 때부터 친구가 있었다. 학급의 아이들과 두루 친하더니 2학년 때부터는 같은 학년은 물론이고 함께 방과 후 교실을 하는 선배들과도 친해졌다. 3학년 때는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에게도 눈도장을 찍더니 4학년 때는 선후배들과 인연이 더 많아졌다. 집에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모둠에서도 말을 많이 하는 것 같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춤도 추고 수다도 떠는 모양이다. 나하 곤 다르다. 다행이다.


딸에게 배운다. 남자 친구와 즐겁게 대화하는 법, 일 년 동안 별 탈 없이 사귀는 법, 친구와 사귀고 그 친구를 배려하는 법, 반가움을 표현하는 법, 같은 반 학우들과 함께 하루를 만끽하는 법. 그리고 어쩌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법까지.


얼마 전 칼럼에 그런 말을 썼다. 술은 좀 줄이고 사람과의 만남은 늘릴 때가 온 것 같다고. 늦은 듯하지만, 딸에게 배운 대로 실천을 해보려 한다. 어제는 모처럼, 아프다는 후배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후배는 신호가 한 번 떨어지기도 전에 받았다. “그래, 몸은 좀 어떻노?”, 평소에 쓰지 않는 부산 사투리가 불쑥 나와 버렸다. 그렇게 한 십 분 정도 통화를 했다. 후배는 전화를 끊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선배님도 이제 나이가 드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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