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했던가? 그건 아니었다. 딸은 열 시 반쯤 자러 갔다. 아빠한테 안아달라는 말도 못 하고 제 방 문 앞에 서서, 멀찍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빠를 향해 구십 도로 몸을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응. 잘 자.”, 속상했던가? 그건 아니었다. 11월 초, 가리비 요리에 쓰고 남은 소주를 꺼냈다. 적당히 따르고 오렌지 주스를 부었다. 일 년에 한두 번쯤 마시는, 칵테일이라면 칵테일이다. 올 해는 처음이다. 아내는 처갓집 제사 때문에 열두 시가 다 돼서 들어왔다.
기억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칼럼에도 SNS에도 글쓰기 사이트에도. 최근엔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의 문법적 오류를 생각하다가 기억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간단히 말하면 “잊혀진”이라는 표현은 피동사를 만들기 위해 “잊다.”라는 기본형에 “~히다.”에 이어 “~지다.”까지 엎어 쓴 것이다. 이미 동작을 받고 있는 말에 그 동작을 덧씌운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어차피 잊고 싶다고 잊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기억하고 싶다고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잊다”라는 동사에 하나의 기억을 잊히게 하라고 심부름을 시켜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에 담긴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잊고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잊힐 수는 없다. 잊힘이 기억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첫 번째 공식적인 시험은 딸에게 안 좋은 기억을 남겼다.
물론 나에게도 그렇다. 이번 수능 관련 뉴스를 보니, 어느 아빠가 시험이 끝나고 나온 딸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애초에 난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런 스타일이어도 그런 시도는 접어야 할 것 같다. 아마 이런 형태의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이 날의 기억이 되살아날 것이다. 첫 시험이 끝나고, 두 시간이나,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아빠를 두고, 눈치 없이 친구와 친구 가족의 차를 타고 가버린 뒤, 아빠에게 더 눈치 없는 내용의 카톡을 보내 아빠에게 험한 내용의 카톡 답장을 받아야 했던 일이 생각날 것이다. 몇 개월 만에 발레를 하러 간 엄마가 역시 몇 개월 만에 포장해 온 그 백화점에서 유명한 연어 덮밥을 먹으면서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흘려가며 아빠한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일이 생각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다.
12월 6일, 부산의 아침 기온은 0도였다. 쌀쌀했다.
딸은 엄마가 외갓집에서 가져온 떡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엄마가 일곱 시 반에 출근을 한 뒤, 딸도 등교 준비를 했다. 아빠한테 옷을 골라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물을 싸 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굳이 아빠에게 부탁했던 그 소소한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 씻고 옷을 골라 입고 갖고 다니는 노란 물통에 물을 담았다. 가방은 어제 미리 싸 놨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일곱 시 오십 분, 아빠를 본다. “혼자 갈까?”, 물어본다. 아빠는 딸을 본다. “아니, 같이 가자.” 현관에서 책가방을 멘다. 보조가방을 든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아빠한테 들어 달랐고 했을 책가방이다. 화요일, 방과 후 교실은 영어라 다른 날보다 책이 더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말없이 혼자 멘다.
나가기 직전 예림이한테 전화가 왔다. 늦게 일어나서 준비가 늦었다고, 서둘러 나가겠다고 했단다. 예림이와 만나는 장소까지 걸어갔다.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고, 두 번째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딸의 얼굴을 봤다. 얼굴에 뭐가 났다. 딸은 앞을 보다가 내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아빠의 시선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알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도저히 모르겠다는, 난감함이 눈동자에 스쳤다.
예림이와 만나는 곳,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함께 기다렸다. 다시 딸의 옆얼굴을 봤다. 딸도 날 봤다. 할 말이 없었다. 딸도 말이 없었다. 딸이 쭈뼛쭈뼛 다가오려 했다. 그때 건너편에 예림이가 나타났다. “아빠 간다.”, 돌아서 왔다.
아이가 좋은 기억만 갖길 바랐다.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고 싶은 마음보다 더 강한 바람이었다. 몸도 마음도 상처 없이, 흉터 없이 흠 없이 크길 바랐다. 그건 욕심이었다. 부모가 싸우고 엄마 아빠에게 혼났다. 아빠가 짜증을 낸 적도 있고 엄마가 화를 낸 적도 있다. 차라리 좋은 것만 먹이겠다는 욕심, 유기농만 먹이겠다는 고집, 탄산음료는 일절 먹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실천이 더 쉽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면서 티 없이 곱고, 흠집 하나 없는 매끄러운 마음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이와 부모 사이도 마찬가지다.
아마 사춘기를 겪으면서 우린 더 큰 전쟁을 치를지도 모른다. 난 사춘기를 당연히 치러야 할 무엇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과 알고 지낸 지 15년이 넘었지만 감독이 내 인생, 특히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알게 된 건 불과 5년 전이다. 사춘기를 겪고 있던 자기 딸의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난 그때, 그 이야기를 듣다가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끼니를 걱정하고 추운 겨울 내내 냉방에서 잘 만큼 가난하면 사춘기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집을 나가야 갈 데가 없고 욕심을 부려봐야 나올 구석이 없는 집에서 살면 사춘기가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했다. 먹고살만하고 받아줄 만할 것 같으니까 사춘기의 감정과 욕망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나만큼 가난하고 험난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낸 감독은 전적으로 공감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우리 부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 또는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사이좋은 부녀를 보는 날도 얼마 안 남았을지 모른다. 이 겨울도, 그런 날의 일부일지도 모르고.
이전처럼 안고 볼을 꼬집고 삐죽 튀어나온 배를 만지고 잠들기 전 그 옆에 한참 누워 딸의 향기를 맡다가 나올 수 있을까? 딸은 아빠에게 다시 옷을 골라달라고 하고, 물을 싸 달라고 하고, 가방을 들어달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린 돌이킬 수 있을까?
하굣길, 딸은 친구와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를 못보다, 아빠가 부른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 아니, 멀리서 친구와 앉아 있는 걸 보고 일부러 살짝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 걸었다. 딸은 아빠가 늘 오는 공원 갓길로 오리라 생각하고 그쪽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귀로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책가방을 메고, 보조 가방을 들고 나란히 선다. 흰 새끼 곰을 만들어주는 점퍼의 지퍼가 열려 있었다. “지퍼 올려.”, 딸은 멈춰 서서 혼자 올렸다. 평소 같았으면 아빠가 올려 줬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무적 초딩은 지퍼를 안 올리거든요.”하고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엔, 올리라면 말없이 올렸다. 중간쯤 왔을 때, 책가방을 벗어 손에 들려고 했다. 무거운 모양이었다. “이리 줘, 아빠가 들어줄게.”, 그렇게 집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