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24

by 최영훈

딸이 영재 시험을 봤다.

별 거 없다. 관련 예상문제집을 봤는데, 90년대 후반에서 2천 년 대 초반, 소위 잘 나간다는 광고 대행사의 입사시험이나 면접 때 던질만한 질문들의 모음집 수준이었다. 물론 그 답의 개수는 훨씬 많았지만.


시험은 12월 첫 주 토요일에 있었다. 딸의 시험 시간은 아내의 발레 시간과 겹쳤다. 집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바빴던 아내가 꾸준히 다니던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의 발레 교실에 다시 등록한 후 맞은 첫 시간이었다. 백화점과 시험을 치르는 초등학교가 가까워 아내는 우리를 데려다주고 발레를 하러 가기로 하고, 우리는 시험이 끝나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어림잡아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열 시에 시험 시작, 아홉 시 반까지 입실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아홉 시 20분 무렵, 이미 초등학교 진입로는 승용차로 붐볐다. 초조해하는 딸의 얼굴을 보고 내려달라고 했다. 딸과 난, 잠시 걸어 시험장 입구에 도착했다. 미리 쉬를 하고 시험을 보라는 한 마디를 했다. 다른 당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누굴 닮았는지 몰라도 배짱 하난 끝내주니까.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딸을 기다리는 것이 내 일이었다.

딸이 태어난 후,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난 딸을 기다렸다. 예정일보다 일찍 양수가 터져 병원에 입원했지만 녀석은 하룻밤을 버틴 후에 나왔다. 그 후 퇴원을 기다렸고, 조리원에서 집에 오길 기다렸다. 어린이집에 가서부터는 하원할 때마다 딸이 준비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학교에 가서는 하교 시간을 기다렸다. 내 평생 유일하게 기다린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오래, 자주 기다린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줄 서서 밥 먹는 것도 싫어한다.

웨이팅이 기본인 맛 집에서 기다려 본 적도 없다. 인간이 시간을 허비하는 일 중 하나가 식당 앞에서 줄 서는 거라고 생각할 정도다. 여자를 기다려 본 적도 거의 없다. 그래서 기다린 경험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딱 한 번, 여자 친구를 두 시간 기다린 적이 있다. 평택의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온다고 했던 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버스와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 번도 약속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초조했다. 천안에서 오던 버스가 중간에 고장 나는 바람에 늦었다고 했다. 그 이후, 누구도 기다려 본 적이 없다. 아내도 시간 하나는 칼 같이 지키는 사람이니까.


우선 카페를 찾았다. 학교 앞은 6차선 차도였다.

이 차도는 서면 중심가와 서부 경남을 시외버스로 이어주는 부산의 사상 서부터미널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게다가 주변엔 동의대와 경남정보대, 동서대가 있다. 당연히 카페는 넘쳐나는 곳, 길 건너를 보니 스타벅스가 보였다. 그러나 얼핏 봐도 만석이었다. 그 옆에 작은 카페가 보인다. 이층에 자리가 있다. 서툴게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이층에 자리 잡았다. 책상 주변에 있는 책 중 가장 작은 책을 코트에 쑤셔 넣었는데 하필이면 레비나스에 관한 책이다. 그 사람이 쓴 책도, 그 사람에 관한 책도 어렵기는 매 한 가지. 시끄러운 카페에서 읽힐 리가 없다.


카페엔 엄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건너편 초등학교에서 낯선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은 그 자식들의 심각함과는 달리, 의외로 발랄해 보였다. 분명 오랜만에 본 사이는 아닐 것이다. 아이의 친구 엄마이거나 학부모회에서 오매가매 알고 지낸 사이여서 작은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있을 터인데 십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결국 삼십 분 만에 카페에서 철수했다.


사실 열 시까지가 마지노선이었다.

그 이후로는 미리 검색해 알아놓은 북카페에 은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곳 주인이 최근 시청의 요직으로 뉴스에 나온 걸 본 적이 있다. 카페는 계속하려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오픈 시간은 오전 열 시였다. 가보니 문이 닫혔다. 늦게 열 수 있지 않나 싶어 주변을 서성이다 다시 갔다. 역시 닫혔다. 계획이 꼬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낯선 동네에 가면 하는 일, 걷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아도 시간이 남아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 책을 들었다. 벤치는 차가웠지만 카페보다 열 배는 조용했다.


열한 시 이십 분, 시험이 끝나기 십 분 전, 지하철 역사에서 올라와 시험장으로 향했다. 학교 정문 앞엔 이미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경차도 겨우 비껴 지나갈 차도도 가득 찼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차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 무슨, 수능 날 뉴스의 풍경을 벌써 보는가 싶었다.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좀 전에 봤던 자식인데 뭐 그렇게까지 호들갑인가 싶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나와 얼추 스무 살은 차이 나는 엄마들, 그럴법하다 싶었다.


딸은 한참을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생각했다. 딸은 이날 알록달록한 플리스 점퍼를 입고 갔다. 뒤집으면 흰색 패딩 점퍼로 변하는 것이라 두툼하다. 입으면 영락없이 흰색의 새끼 북극곰처럼 보인다. 그런 딸이 생애 처음 낯선 시험장에서 한 시간 반의 시험을 마치고 나오면 꼭 안아주고 싶었다. 힘들지 않았는지, 쉬가 마렵지는 않았는지, 목이 마르진 않았는지, 배가 고프진 않았는지, 시험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지하철로 두세 개 역 떨어져 있는 서면에서 딸이 좋아하는 음료수나 빵을 사줄까도 생각했다. 대연역에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있는 단골 편의점에 들러 지가 좋아하는 음료수와 키링을 사줄까 생각도 했다.


기다리던 딸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어디야?”, “어, 네가 들어갔던 데로 나오면 돼.”, “응, 알았어.” 딸이 나왔다. 그 옆에 딸과 함께 시험을 본 같은 학교 친구이자 어린이집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 지유와 지유 엄마가 함께였다. 딸이 부지런히 손짓으로 뭔가 말한다. 내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딸이 길을 건너왔다. 지유 엄마는 아빠와 통화 중이었다. 아무래도 지유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기다리던 아빠에게 다가 온 딸이 물었다.

“아빠, 나 지유랑 차 타고 가도 돼?”, “아빠는?”, “아빠도 같이.”, “아니, 그러면 아빠는 됐어. 아빠는 그냥 지하철 타고 갈 게.”,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학부모들이랑 무슨 대화를 하겠나. 그리고 그 차 안에서 딸에게 무슨 질문을 할 수 있겠나 싶었다. 돌아서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당연히 딸은 따라오지 않았다. 지하철을 기다렸다. 승강장엔 시험을 끝내고 나온 자녀에게 꼭 붙어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와 그것을 귀찮아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딸과 함께 타고 가려고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혼자, 지하철을 탔다.


두 번째 역쯤 지났을 때,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빠 미안해.... 지유 어머니가 같이 타고 가자고 하셔서...

사실 내가 아무리 지유를 욕해도 지유라는 사람은 좋았고, 앞으로 아빠가 지유를 아무리 싫어해도 난 좋아하고 싶어. 사랑해...”


지유는 최근 딸에게 가스 라이팅 시도를 하는 듯했다. 난 그 점에 대해 냉정하게 지적했고, 아무리 오래 알았어도 그런 의도를 가진 사람하고는 절연을 해도 된다고 했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이런 내용을 보낸 것이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뭔 소리야. 난 널 한 시간 반 기다렸어.”, 자식이어도 사안의 핵심을 모르는 인간에겐 그 사안의 본질을 알려줘야 한다. 기다린 시간은 사실 두 시간이다.


화가 나진 않았다. 난 차분했다.

집에 와서, 아내가 백화점에서 사 온 연어 덮밥을 먹을 때도 딸에게 화를 내진 않았다. 다만 한 마디 했다. 애가 싸가지 없어졌다고.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없는 인간으로 클까 걱정이라고 했다. 무더운 여름날, 지는 중요한 시험을 치르러 들어가 있는 동안 남자 친구는 땡볕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마침 같이 시험을 치른 친구의 남자 친구가 자동차를 몰고 와서 그걸 타고 가도 되겠냐고 남자 친구에게 묻는, 그런 도리 없는 인간으로 클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딸은 밥을 먹는 동안 울었다.


다시 말하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집에 와서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딸을 예전 같이 대하지는 않는다. 안아주지 않는다. 잠들기 전, 딸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재워주지도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눈도 못 뜨고 나온 딸을 안아주지도 않는다. 볼을 꼬집지도 않고 농담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 막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딸과 실랑이를 벌이던 감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딸로서는 용납이 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용납이 안 된다고. 그저 내 자식이니까 품고 사는 거라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아내는 애니까 그런 거라고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난 상식이 어긋난 느낌이다. 삶이 제 각각이듯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식 또한 각각이다. 그래서 사안마다 상식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거나 연인, 부부가 되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건 학력이나 학식의 차이 하고는 다른 문제다. 내가 여러 조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15년 넘게 단 한 번의 마찰도 없이 지내고 있는 건 둘 다 상식의 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맘에 안 드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15년 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둘 다 상식의 궤적이 같기 때문이다.


영재 시험에 합격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당연히, 꼭 영재가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부모가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좋은 인간이 되길 바란다. 험난한 삶을 살아내는 타자에 대한 연민과 예의가 있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내가 그 어렵다는 레비나스를 꾸역꾸역 읽는 것도, 그리고 말년에 레비나스와 연결된 사르트르를 읽는 것도 같은 이유다. 타자에 대한 사유, 삶을 짊어진 한 주체에 대한 고민이 두 사람 모두에게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난 딸이 그런 사유와 고민을 갖고 있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폐지를 잔뜩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보면 긍휼 한 마음이 솟아 자신도 모르게 그 뒤를 밀어 앞길에 힘을 보태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다리가 불편한 친구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손이 불편한 친구에게 다른 한쪽의 손이 되어주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나여서, 나이기에, 나만, 오직 나만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의 사랑을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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