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향한 복잡한 마음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23

by 최영훈

양가적(兩價的)인 감정을 겪고 있다.

출구가 양방향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탄 기분이다. 스키 여행을 떠난 사람이 스키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폭설이 왔다가 스키를 타는 동안엔 화창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싶지만 사람들 속에서 튀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다. 사건은 하나인데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사람은 하나인데 두 가지 마음이 든다.


11월 마지막 수요일엔 학예회가 있었다. 딸은 한 달 정도 준비했다. 방과 후 교실의 성과 보고를 위해 딸은 방송 댄스에선 아이브의 <로열>의 댄스를 카피했고, 바이올린 교실에선 비틀즈의 <오브라디 오브라다>를 연주했으며, 반 친구들과는 수화로 아이유의 <드라마>를 불렀고 영화 <위대한 쇼맨>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학예회 연습 기간 동안, 딸은 하굣길과 집에서 걱정과 불평을 쏟아냈다. 바이올린 발표 준비에 누가 성의가 없다, 누가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 연습을 너무 안 한다, 잘할까 걱정이다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방송 댄스 할 때는 누가 이번 달에 새로 들어와서 안무를 외울까 걱정이다, 누구는 적극적으로 안 한다는 말도 했다. 자기 반의 순서를 연습한 후에는, 선생님이 나한테 안무를 배우라고 애들을 보냈다, 남자 애들이 너무 까분다는 말도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를 하게 되면 열심히 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학예회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나, 너도 좀 대충 해라, 와 같은 마음들이 교차한다.


기특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뭐든 그렇다.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면 기특하지만 5분만 더 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스쳐간다. 주말, 특히 일요일이면 여덟 시까지도 자는 녀석인지라 그런 마음이 더 든다. 시험을 잘 보겠다고 책을 잡고 있는 녀석을 보면 기특하지만 뭐 그 정도야 적당히 B나 C 정도 맞으면 되지 않나 싶은 마음도 든다. B면 선방한 것이고, C면 과락을 면한 거 아닌가?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것이 귀엽지만 자신이 살쪘다고 투덜거리면 운동을 시켜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더 먹으라고 부추긴다. 마냥 귀여워서 품에 꼭 안아주고 볼을 꼬집어 줄 때도 있지만 설핏 소녀의 느낌이 나는 녀석을 마냥 귀여워만 해도 되는 건지 몰라 이런저런 스킨십을 망설일 때도 있다.


복잡한 마음이다. 그저 반에서 중간만 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학교를 졸업하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 누구나 들으면 뭘 배웠는지 알만한 전공을 해서 근로자 평균 정도의 연봉을 받을만한 직장에 들어가 무난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선생님의 격려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는다는 말을 건너들을 때마다, 또 이걸 하고 싶다, 저걸 하고 싶다,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딸의 포부를 들을 때마다, 남보다 앞서고 한 분야에 탁월하고 두각을 나타내어 한 분야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사람으로 살다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복잡한 마음이다.


최근, 딸은 부산에서 선발하는 영재에 선발돼서 최종 시험을 앞에 두고 있다. 뭐 영재라고 해봐야 지금 시대의 영재와 우리 시대의 기준이 달라서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고 호들갑 떨만한 일은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춘기도 아닌데 참 복잡한 마음이다.


처음 가졌던 마음

태어나고 그다음 날이던가,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 눈에 거즈 같은 걸 대고 광선 치료 같은 걸 받고 있었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조금 일찍 태어난 애들은 혹시 황달 기운이 있을지 몰라 이런 치료를 한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딸을 보고 저녁 내내 울었다. 나는 아내에게 떠밀려 저녁을 먹으러 장산 번화가로 나갔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걸어 올라가는 데 울컥 눈물이 났다. 그때, 아이가 무탈하게, 아무 병 없이, 아무 사고 없이, 그저 건강하게만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아마 많은 부모가 나와 같은 바람을 가질 것이다. 다른 아기 뒤집을 때 뒤집고, 걸을 때 걷고, 말할 때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 마음이 한 생명 앞에서 생긴 첫 마음일 테니, 그 마음을 초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그렇듯, 초심은 쉽게 잊힌다. 공부를 못하고 속을 썩이고 자식이 내 맘 같지 않을 때면, 자식을 향한 내 바람이 번번이 무산될 때면 우리는 초심을 잊는다.


물론 그 초심만 갖고 살 수는 없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경쟁도 있고 비교도 있고 서열도 생긴다. 싫어도 해야 하고, 싫어도 비교당하고 경쟁하는 시기가 온다. 서장훈이 한 말처럼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거짓말이 안 통하는 때가 온다. 그 시기 이후 아주 오랜 시간 그렇게 산다. 그런 삶에 접어든 딸에게 난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복잡한 마음이다.


오늘, 예술회관의 주무관과 미팅을 했다. 시립예술단 캠페인의 카피와 콘티를 보여줬다. 단숨에 쓴 A 안을 맘에 들어했다. 바로 이어서 계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 됐다. 이미 올해 많은 계약을 지역 공공 기관과 했기 때문이다. 주무관이 농담처럼 말했다. “마, 여기 가도 00, 저기 가도 00 얘기한다, 아입니까. 마, 적당이 하이소.”, 감독이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우리 작가님이, 묵직한 카피는 쥑이게 쓴다 아인교.”


두 사람은 날 투명인간 취급하며 내 면전에서 내 카피를 칭찬했다. 이 일을 이십여 년 정도 하니, 칭찬도 그럭저럭 뻔뻔하게 버텨낼 수 있게 됐다. 이 날이 오기까지, 감독이나 나나 쉽지 않은 세월을 보낸 덕분이다.


딸에 대한 칭찬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섬광처럼 불쑥 빛나는 딸의 재능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모는 결코 노련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부모는 결코 덤덤한 베테랑이 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초심만은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저 건강하게 자랐으면, 무탈하게 컸으면, 남들처럼 그렇게 무난하게 살았으면 하는, 세상에 나온 딸을 처음 봤을 때 가졌던 그 첫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때문인 걸까? 아침에 제 방문을 열고 나오는 딸을 볼 때마다 예뻐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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