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와 소수가 섞인 연산이다. 학창 시절 그렇게 어렵던 수학 문제도 나이 들어 들여다보면 그 논리가 보인다. 그 논리의 결을 따라 푸는 법을 가르쳐줬다.
금요일 오후, 수학 학습지 선생님이 한 달 만에 오셨다. 인테리어 공사 기간 중 삼촌 집에 머무는 한 달 동안 학습지를 쉬었었다. 오랜만에 오신 선생님은 구수한 사투리로 인테리어 칭찬부터 하셨다. 두 사람이 테이블에 앉는 걸 보고 서재로 들어갔다. 선생님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풀면 안 된다는 타박도 들린다. “수업 끝났습니다.”, 보통 15분이면 끝나는 수업이 20분을 넘겨 끝났다.
거실에 나가니 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선생님이 한 말씀하신다. “아이고 아버님, 영재가 평범해졌습니다. 이거 아버님, 어머님 책임입니다.”, “아~ 간만에 하니까 좀 감이 떨어졌나 보죠?”, “분수 연산, 다시 좀 다잡아야겠습니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선생님이 가셨다.
딸을 돌아봤다. 눈물이 찼다. 안아줬다. 눈물이 터진다.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노크를 하고 살살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 “왜? 많이 틀린 거야?”, “그건 아닌데...”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 뭐 잘 못 푼 거야? 시간이 오래 걸린 거야?” 딸이 침대에 얼굴을 묻는다. 문을 닫고 나왔다.
초등학교 수학 학습지는 논리나 깊이를 추구하지 않는다. 많은 문제를 반복해서 풀게 해서 연산 자체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몇몇 분수를 소수로 표현하면 어떻게 되는지 외우게 한다. 문제 풀이도 가장 빠른 길을 가르쳐주지 돌아가거나 둘러가는 법을 가르치진 않는다. 이 나이 때는 그렇게 악기의 기초를 배우듯 수학이라는 도구를 체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가 보다.
앞선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딸이 크면서 겨우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들이 있다.
꽃이나 나무 이름, 새와 동물의 이름, 계절의 변화, 물고기의 이름까지 그 종류는 많다. 그 종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그뿐인가 앞서 말했듯이 생전 안 하던 DIY 가구도 만들어 봤고 아이가 더 어릴 때는 택배 박스를 자르고 오려 만화 <파자마 삼총사>의 주인공들이 쓰고 다니는 가면과 무기도 만들어줬다. 인형 놀이에 침대가 필요하다면 침대도, 자동차가 필요하다면 그것도 만들어줬다. 어린이집 시절까지, 아빠는 주문만 하면 나오는 장난감 자판기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그 덕분에 이공계를 나온 삼촌이 어깨에 힘을 주며 게임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고, 젊은 날 고향에서 영농 후계자였으며 미식가이신 할아버지는 산과 들에 널린 아주 작은 풀의 이름도 놓치지 않고 가르쳐 주실 수 있고 썰어 놓은 회가 무슨 물고기의 살인지도 가르쳐주실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클수록 아빠의 모르겠다는 답은 틀린 답이 아니다.
딸이 “아빠, 그거 알아?”하는 질문은 두 가지 종류다. 새롭게 안 것인데 십중팔구는 아빠는 모를 것 같아서 얘기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경우가 그중 하나다. 이 경우 아빠는 알아도 눈치껏 모른다고 해줘야 한다. 말하는 중간에 뭔지 알 것 같아도 꾹 참아야 한다. 그래야 말하는 사람도 신나니까.
“아빠, 이거 뭐야?”나 “이거 맞는 거야?”, 또는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으면 정말 모르는 거다. 이때 답은 두 가지다. 알면 가르쳐 주면 된다. 모르면 함께 알아보자고 하면 된다. “아빠랑 한번 검색해 볼까?”는 그렇게 나쁜 대답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알쏭달쏭한 대답을 정답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나이가 들수록 늘어난다. 아, 물론 젊은 아빠들은 안 그렇겠지만 나 같이 쉰이 넘은 아빠는 알던 것도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엊그제 시립예술단 관계자들과 캠페인 콘티 회의를 할 때 영화 <러브레터>가 생각이 안 나서 “아, 거 왜 오겡끼데스까, 하는 영화 뭐죠?”하고 물었을 정도니까. 뭐 나만 그런 건 아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팀장이 “아, 그거, 무슨 편지 아니에요?”하더라. 덕분에 다들 한바탕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슈퍼맨 같았다.
다들 그랬을 것이다. 딸이 어린 시절 읽었던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 최고야.>를 보면 그건 세계 공통인 모양이다. 아빠는 달리기도 잘하고 달도 뛰어넘을 수 있으며 험상궂은 레슬러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딸로 그랬을 것이다. 아빠의 어깨에 앉아 벚꽃을 따던 시절, 목마를 타고 놀이동산의 퍼레이드를 보던 시절, 어린이집에서 물고기 잡을 도구를 가져오라고 할 때 아빠가 세탁소 옷걸이로 만들어 준 잠자리채를 닮은 도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어린이집에 가서 채반이나 플라스틱 물병을 가져온 친구들에게 뽐내고 선생님들에겐 산건 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던 시절, 그런 시절에는 딸도 아빠를 그렇게 봤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성큼성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한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정말 모르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담임선생님도 만난다. 그러면서 아빠를 다시 보게 된다. 아빠도 모르는 것이 있고 부족한 것이 있으며, 흠이 있고 실수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다른 아빠들은 다하는 운전도 못하고 돈도 많이 못 벌며, 신용카드는 엄마 명의로 된 것이라는 것도 안다. 좀 비싼 거 살 때는 “엄마한테 물어볼까?”하며 딸과 함께 고민을 하고 자기한테 탄산음료를 사주면 엄마한테 아빠가 혼나는 것도 안다.
그래도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한 전력을 다하는 아빠라는 것을, 모르는 걸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빠라는 것을, 나도 모르고 아빠도 모르는 것은 곁에 꼭 붙어 앉아 함께 알아보자는 아빠라는 것을, 아빠 어깨만큼 컸지만 안아달라면 지금도 꼭 안아주는 아빠라는 것을, 그렇게 세상에 자신을 아빠만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것을 알기에.
척척박사, 팔방미인의 역할은 저 광활한 인터넷 세상과 줄넘기까지 가르쳐주는 사교육에 맡겨라. 우리 아빠들은 그저,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만 쉴 새 없이 퍼주면 그럭저럭 “우리 아빠 최고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