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수업 2-초보 아빠의 첫 경험이 두려운 후배에게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21

by 최영훈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세 시가 넘어서였다.

정리되지 않은 서재에서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조앤 디디온의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를 읽고 있었다. 그 섬세한 묘사와 깊은 생각의 여울에 잠시 마음을 맡겼다. 그러나 금세, 균열이 났다. 작은 파동들이, 울림과 떨림이 디디온의 문장을 흩뜨렸다. 결국, 아침에 지나가듯 딸에게 했던 말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기획 전시를 보러 박물관에 가자고 했다. 딸은 흔쾌히 좋다고 했다. 넷플릭스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상류 사회를 모사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아내는 들어오는 길에 <신짱>을 사다 달라고 했다.


십오 년 넘게 입고 다닌 갈색 블루종에, 올봄 아내가 사준 헐렁한 올리브 카키색 아웃도어 바지를 받쳐 입고, 안 감은 머리를 가리기 위해 검은색 캡을 쓰고 나섰다. 집 앞이 박물관인 사람은, 그러니까 앞서 썼듯이 부산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여서 시티 투어 버스의 주요 정거장인 동네 사는 사람은 이렇게 집에서 불쑥, 세수도 안 하고 박물관으로 나설 수 있다.


주차장이 가득 차서 성황인가 보다 했으나 기획 전시실은 조용했다. 상반기 불교 미술 관련 기획 전시를 했을 때보다 더 조용했다. 이번 기획 전시는 <조선시대 부산의 화가들>이었다. 조선 시대 전체 미술 역사에선 무명이었지만 지역 화단에서는 수출용이나 대일본 외교용 그림을 도맡아 그렸고 관청의 의뢰를 받아 중요한 기록화를 남겼던 화가들의 특별전이었다.


그림들 일부는 일본 곳곳의 박물관에서 왔고 심지어 독일의 박물관에서 온 그림도 있었다. 딸은 차분히 돌아봤다. 우리나라 그림의 이름은 대부분 000도이기에, 딸은 제목의 의미를 내게 물었다. 다행히 그림의 이름은 직관적이어서 나무 밑에 낮잠을 자는 그림은 오수도(午睡圖), 매화 가지에 달이 들어차 있으면 당연히 월매도(月梅圖)여서 한자에 능통하지 못한 아빠여도 그럭저럭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딸은 호랑이와 매의 그림을 유심히 봤고 나 또한 한참을 매와 호랑이를 봤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그림에 집중하다 밖을 나오니, 밖은 가을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바싹 마른 잎을 위태롭게 달고 있는, 그래서 이 나무가 봄이면 가벼운 핑크색의 벚꽃을 피우는 벚나무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을 벚나무 아래의 벤치에서 지기 직전의 햇살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유모차 몇 대가 있었고 젊은 엄마들과 아빠들이 있었다.


은목서는 커다란 애드벌룬 같은 형태로 박물관 옆 뜰을 지키고 있었고 박물관 옆 담장을 따라 난 산책로에 깊은 그늘을 만드는 빽빽한 대나무 숲 사이론 간간히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박물관 앞뜰로 나가자 잘 정돈된 화단이 보이기도 전에 찬바람이 먼저 들이쳤다. 딸에게 지퍼를 올리라고 했다. 딸은 언제나 그렇듯 왜냐고 물었다. 바람이 차다고 했다. 언제나 그랬듯, 딸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결국 내가 올려줬다. 집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들러 아내가 부탁한 과자를 사고 난 술을 샀다. 많이 샀다. 그렇게 이날은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TV도 틀지 않고 아내와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처남이 사다준 반찬을 반주삼아 술을 마셨다.


조앤 디디온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 비범하지 않을 수 있어도 그것을 기억하는 건 비범한 일일 수 있다. 반대로, 그 어떤 평범한 경험도 비범하게 기억되는 건 그 경험을 비범한 사람과 했기 때문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에 이미 경험했던 것이라도 아이와 그 경험을 하는 것은 과거에 나 혼자 한 것과 같지 않고,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뭔가를 아이와 처음 한다면 당연히 그것은 처음 했기 때문에 비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첫 경험에 담긴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여행자라도, 아이와 함께 한 첫 번째 여행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아이의 첫 경험은 부모의 첫 경험이다. 나는 그랬다. 그 자잘한 경험들, 첫 경험들을 돌아본다.


박물관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박물관부터 둘러보자.

아이와 함께 제주도와 경주 여행을 가기 전까지, 내가 아는 박물관의 형태는 전형적이었다. 역사 순으로 전시실을 구분해 놓고 그 역사 시기를 대표하는 나라와 유물을 전시하는 곳. 그런 곳이 내가 아는 박물관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둘러보지 않았을까?


파주에 살던 시절, 그러니까 내가 여덟 살이던 1980년 즈음, 파주에 박물관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당시 파주에 가기 위해선 불광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했고 내가 살던 광탄면 신산리엔 서점이 한 군데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도서관도, 박물관도 없었을 것이다. 후에 파주에 출판단지가 세워지고 책을 사서 맨 앞장이나 뒷장의 출판사 주소가 파주로 되어 있는 걸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내 기억 속의 파주는 군부대 아니면 농촌, 아니면 드넓은 운동장이 있던 초등학교뿐이니까.


내가 처음 가 본 박물관은 당연하게도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중학교 때, 방학 숙제 때문이었다. 의정부에서 국철을 타고 종각역인가에 내려 조금 걸으면 박물관이 나왔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을 때다. 아마 그 시절, 의정부에도 박물관이 없었을 것이다. 의정부의 공연장이라고는 시민회관 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딸이 세 살 때였나...

함께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제주도에 그렇게 많은 박물관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물론 그 몇 해전, 제대한 처남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처남과 내가 제주도가 처음이라 빡빡한 여행 일정을 짜기로 유명한 아내의 가이드 하에 유명 관광지를 촘촘히 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연히 박물관은 가이드의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았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제주민속박물관 정도 가 보지 않았을까? 그러나 딸하고 가니 달랐다. 딸을 위해 테디 베어 박물관, 키티 박물관을 가장 먼저 들렀고 정서 함양이라는 고상한 이유로 이중섭 미술관도 가봤다.


미술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술관이나 화랑 또한 아이와 가기 전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림만 보기 위해서 박물관에 가 본 적도 없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제가 가고 싶어 하기에 보낸 미술학원을 꾸준히 다닌 탓인지, 딸에겐 미술에 대한 열정이랄까, 지적인 호기심이랄까, 그런 욕구가 있다. 덕분에 관광객은 꼭 들르는 코스 중 하나이지만 정작 부산 동남부 사람은 큰마음먹고 가거나 심지어 거기에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는 을숙도의 현대미술관도 가 봤고, 앞서 말했듯 집 앞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미술 관련 기획 전시가 열릴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갔다.


올해만 해도 <치유의 시간, 부처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불교 미술 특별전을 갔다 왔는데, 나 같은 경우엔 딸과 함께 갔다 온 뒤, 딸을 데리러 가는 길에 박물관에 잠시 들러 해인사에서 모셔 온 <건칠희랑대사좌상>을 몇 번 더 보고 왔다.


사실 불교 미술에 대한 딸의 관심은 부산 인근에 있는 큰 사찰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른 사찰 부속 박물관에 들렀기 때문일 것이다. 합천의 해인사나 양산의 통도사, 부산의 범어사엔 어지간한 도시의 박물관 규모와 견줄만한 성보박물관이 있다. 밀양의 표충사와 경주 인근의 기림사에서 규모는 작아도 박물관이 있고. 이런 사찰들은 부산에서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세 시간 정도 가면 있는 데, 이런 곳에 갈 때마다 딸은 박물관에 들어 가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재미있는 건 처음 경주 여행을 가서, 경주 박물관에 갔을 때 불교 미술관을 둘러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너 살 때의 딸은 불상과 탱화의 깊은 색감, 그것을 강조하기 위한 약간은 어두운 조명 속 공간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불교 미술에 익숙해진 탓인지 초등학교 들어간 뒤 다시 경주 박물관을 찾았을 땐 불교 미술관에서 제법 오래 머물렀다. 서너 살 때는 어린이 박물관에서 성덕대왕신종의 비천 무늬나 연화문 모양에 먹지를 대고 그 무늬를 옮겨보고 조각난 도자기를 자석의 힘을 빌려 하나로 붙여보는 체험을 한 것이 다였던 녀석이 말이다.


손재주가 없는 남자라도 재주를 발휘해야만 한다.

일단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공구를 다루고 풀을 붙이고 종이를 접고 끼우고 조이고 쌓고... 여하간 뭔가 만들 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나같이 초등학교 시절 프라 모델 조립을 한 경험이 다인, 그야말로 손재주 스킬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어도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장난감이, 성채가, 공주의 집과 텐트가, 책꽂이가 만들어지길 기다리며 땀을 뻘뻘 흘리며 조립하는 아빠 앞에서 버티고 앉아 조립 과정을 지켜보는 딸을 보고 있으면 없는 재주도 생기게 되어 있다.


사실, 아빠들이, 특히 나처럼 나이 먹은 아빠들의 난감함이 시작되는 건 유모차부터 아닐까? 부피가 어지간한 세탁기만 하지만 접으면 경차에도 실리는 유모차를 접고 피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빠들이 애를 썼을까? 게다가, 아마 다른 유모차도 비슷하겠지만, 우리가 샀던 유모차는 필요에 따라 액세서리를 추가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캐노피, 바람이나 비를 막아주는 가림 막, 컵 홀더 등. 아내가 그런 것들을 사서 집에 들여놓을 때마다 신속하게 부착했다 떼는 법을 익혀야 했다. 경차에도 실리는 유모차지만 그 차의 부속품을 함께 싣기 위해선 딸의 옆 자리는 짐칸으로 남겨 둬야 했다.


유모차는 시작에 불과하다. 딸이 어린이집에 갈 즈음, 아내가 책꽂이를 주문했다. 택배가 와서 뜯어봤더니 나무판자와 나사, 육각 렌치와 드라이버, 그리고 당연히 복잡하지만 친절하지는 않은, 그나마도 흑백으로 인쇄된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 지금도 있는 책꽂이는 녹색과 레몬 색, 연한 나무색이 어우러져 있는 제품인데 말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조립을 했다.


딸도 좋아했고 아내도 꼼꼼히 잘했다며 칭찬해 줬다. 의기양양하게 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며 생색을 낼 수 있었다. 웃긴 건, 몇 년 후, 책꽂이를 다시 보니 판 하나가 약간 이상해 보였다. 다시 보니 방향을 반대로 조립했더라. 두 여자 모르게 뜯고 다시 조립했다.


그 이후로, 아내는 내가 조립을 할 줄 아는구나 싶었는지 거실 탁자, 아이의 간이 테이블 등을 DIY 형태의 제품으로 구매했다. 그뿐인가, 딸은 어린이집에서 준 학습 도구나 장난감을 가져와서 당연하다는 듯 내게 만들어 달라고 내밀었고 미니 블록, 종이로 만드는 건축물 등을 종종 사서 날 곤란하게 만들었다.


다행인 건 삼촌의 만들기 능력이 아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눈치챈 이후, 슬슬 "야, 이건 삼촌이 잘 만들지." 말하며 삼촌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손재주의 실력 위계를 정하자면 맨 상층엔 장인어른이 계시고, 그다음엔 처남, 그다음엔 아내, 그다음이 나다. 아마 이 위계를 어느 순간 깨달은 딸이 자기가 부탁하는 것이라면 그 자리에서 들어주는 삼촌에게 만들기를 맡기기로 결정한 거 아닐까?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딸을 둔 아빠를 난감하게 하는 건 옷 아닐까?

아기에게 옷을 입히는 건 맨 손으로 장어를 쥐고 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기의 머리는 큰데 상의의 라운드 부분 사이즈는 목둘레에 맞춰져 있고, 아기의 팔은 통통한데 소매 끝의 둘레는 당연히 손목에 맞춰져 있다. 손가락을 힘껏 펼 수 없는 아기의 손을 소매 안에서 찾기 위해선 아빠의 둔한 손가락은 실험실의 핀셋보다 섬세해야 하고, 머리를 티셔츠 밖으로 꺼내기 위해선 갖은 말로 아이를 달래야 한다.


이 시기가 지난다고 옷과의 사투가 끝나는 건 아니다. 내 자식이어도 나랑 체질이 다르다 보니 내가 더울 때 이 녀석도 더운지, 내가 추울 때 이 녀석도 추운지 당체 종잡을 수가 없다. 퇴근한 아내가 어린이집에 갔다 온 아이를 보고, “더운데 왜 이렇게 덥게 입혔어. 애 열도 많은데.”, “오늘 바람 많이 부는데 이렇게만 입고 간 거야?" 하는 식의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게다가 미국에 사는 처제와 친할머니가 보내주는 옷들의 색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 위아래의 디자인과 색상을 조화롭게 입히는 건 결혼식을 앞두고 양가 어머님 한복의 저고리와 치마를 고를 때만큼 어렵다. 한복집엔 전문가라도 있지.


아이에게 취향이 생기면 일이 좀 수월해지지만 취향이 특이하거나 아빠와 다르다면 그야말로 난감해진다. 종종 백화점이나 문화센터, 마트에서 <겨울왕국>이나 <라푼젤>의 주인공 의상인 듯한 공주 옷-그렇다. 공주 같은 옷이 아니라 공주 옷이다-을 입고 다니는 아이를 볼 때가 있다. 그뿐인가. 리조트나 호텔의 로비에서 아이언맨이나 엘사 공주를 만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계절이 봄이나 가을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원하게, 또는 따듯하게 입히기 위해 아빠 엄마가 아이와 얼마나 씨름했을지 눈에 선하다.


계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름과 겨울엔 그나마 낫다. 봄, 가을에 딸의 옷을 코디해 주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어른이야 뭐 여름에 입고 다니던 반팔에 적당히 바람막이나 트렌치코트, 야상 같은 점퍼 따위를 입는 걸로 해결되지만 아이들은 그게 또 쉽지 않다. 자기들 생각엔 9월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시원해졌다는 걸 못 느끼겠고, 심지어 10월이 돼도 부산의 낮 기온은 20도를 훌쩍 넘기니 점퍼를 하나 덧입는 걸 불필요하게 생각하고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그나마 아빠 엄마 말이라면 법으로 아는 몇몇 애들은 등굣길에라도 뭘 걸치고 오는데 10월 말이 돼도 반팔 티 하나만 입고 오는 녀석들도 흔하다.


좀 전에 호텔과 리조트 얘기가 나온 김에 여행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여행을 좋아하는가? 캠핑은? 등산이나 해수욕은? 출장도 잦고 여행도 자주 가서 짐 싸는 데 도사가 됐다고 생각하는가? 아이와 함께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런 자신감은 곱게 넣어두는 것이 좋다. 영아 시절, 그러니까 한두 돌 무렵까지는 짐이 없을 것 같지만 그게 또 아니다. 일단 가까운 마트만 가도 자동차에는 카시트가 있어야 되고 여기에 유모차, 아이를 안을 때 쓰는 띠, 기저귀 가방 등등이 필요하다. 그러니 여행은 어떻겠는가?


아이가 크면 클수록 짐이 늘면 늘었지 줄진 않는다. 트렁크에서 유모차가 퇴출되고 심지어 차도 좀 큰 차로 바꿨는데도 불구하고 물놀이 시설이 있는 리조트나 콘도라도 갈라치면 차가 꽉 찬다. 그럼 어느 계절에 짐이 좀 적을까? 그런 계절 없다. 여름에 하는 물놀이, 겨울에도 한다. 온천이 나오는 리조트도 흔하고 풀빌라의 경우엔 미리 말만 하면 온수로 채워주는 곳도 많다. 그렇다 보니 물놀이 풀세트는 기본이고 애가 좀 어릴 때는 보온을 위한 타월 가운, 안전을 위한 구명조끼까지 챙겨야 한다. 여름에는 옷이 좀 적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산으로 가면 일교차를 걱정해야 하고 바다에 가면 바닷바람을 걱정해야 한다.


짐 싸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다른 집은 모르겠는데 우리 집은 정말 간단하다. 아내가 두 개의 캐리어를 거실에 놓는다. 하나는 중형, 하나는 딸을 위한 소형. 거기에 아내와 딸이 가져갈 것을 툭툭 던져 놓는다. 그렇게 얼추 짐이 쌓이면 아내가 하루 저녁, 일괄적으로 짐을 정리해 싼다. 아, 아빠 짐은 언제, 어떻게 싸냐고? 맨 나중에, 그러니까 아내가 “당신은?”하고 물으면 그때 티 몇 개, 양말 몇 개, 바지 한두 개를 던져 놓는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큰 차이 없다. 여름에는 티를 몇 개 더 던져 놓고, 겨울에는 패커블 경량 패딩 하나를 더 넣을 뿐이다.


이런 첫 경험을 위한 교과서는 없다.

대형 서점이라면 이런 조언이 담긴 책 두 세권 정도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그런 책을 발견 못했다. 그러니까, <아이와의 첫 여행, 이렇게 짐 싸라>, <우리 아이, 웃으며 옷 입히는 법>, <초보 아빠 손재주 향상법> 같은 책을 못 봤다는 것이다.


당신이 신입생, 신입사원, 수영 기초반과 같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겪어봤을 초보의 순간을 겪었더라도 초보 아빠의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회사나 학교, 수영장에 한 명쯤 있는 오지랖 넓고 친절한 선배도 없다. 부모 세대의 육아와 내 세대, 그리고 내 후배 세대의 육아 환경과 방식은 너무 달라서 솔직히 다들 허둥대긴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줌으로 수업할 줄 알았겠나? 십 년 전, 누가 식당에서 스마트폰으로 애에게 만화를 보여주며 식사를 할 줄 예상이나 했을까?


그럼 주변에 다자녀 부모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나? 재미있는 건 둘째, 셋째를 키운다고 해서 초보 딱지를 떼는 건 아닌 모양이다. 자녀가 많은 아내의 지인이나 내 지인들의 사연을 건너 들어보면 첫째와 둘째가 너무 달라서 당황하는 부모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물 흐르듯 사춘기를 지나갔는데 둘째는 부모를 이혼 위기까지 몰아갈 정도로 심각하게 사춘기를 겪는가 하면, 첫째는 놀다가 지쳐서 잠드는 스타일인데 둘째는 책 보다 잠드는 스타일인 경우도 있다. 외모는 물론이고 식성, 잠버릇, 성격, 성향 등이 너무 달라서 부모는 첫째는 키운 경험을 밑천으로 둘째를 키웠다가는 큰코다친다고 한다.


우린 어차피 다 초보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도 할머니 할아버지 역할이 처음이고, 우리 처남도 삼촌 역할이 처음이다. 은채를 처음 안을 때 처남의 얼굴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 보지 못했던 긴장이 흘렀었다. 삼촌이 조카를 처음 안을 때 어떻게 안아야 되는지 미리 알 방법은 없었을 테니.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있고 배운 적 없어도 잘만 하는 게 있다. 애를 키워보니 그렇다. 또,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니 그렇다. 생각해 봐라. 우리가 어디 사랑을 배워서 잘했던가? 연인을 안는 건? 키스는? 위로는? 부모를 존경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아가씨 시절의 몸매와 미모가 사라진 아내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보는 걸 도대체 어디서 배울 수 있겠는가? 때로는 본능이, 때로는 세월이, 때로는 몸이나 뇌의 어느 곳에 저장된 인류 공통의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하게 한다.


그러니 다만 애쓸 뿐이다.

사랑하는 새 식구-딸, 손녀와 조카-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정보는 참고 자료일 뿐이다. 그저 초보자의 긴장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세상에 없었던, 불쑥 세상에 나타난 이 경이로운 존재를 온전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거면 됐다.


한 번뿐인 인생, 두 번 살 수 없어서 매해, 매 순간이 초보인 인생, 초보 아빠와 자녀 모두 함께 성숙해 가는 것이다. 아빠도, 딸도 그렇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서로의 성장을 바라보며 격려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다. 혼자였으면 다다르지 못했을 그 성숙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말고, 오늘, 다만 사랑하자. 그뿐이다. 그거면 됐다.

(이 글은 2022년, 할로윈 데이, 다음 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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