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un 18. 2023

바보에게 웃어주며 일하는 법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45

타인의 세월을 존중해 주는 고객

나보다 똑똑한 사람과 일하는 건 쉽다. 나보다 부지런하고 인내심 있고, 여하간 어떤 점이든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일하는 건 쉽다. 내가 보지 못한 걸 보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해 내고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과 만나며 내겐 없는 열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건 쉽다. 고객이 이런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난 고객 중, 그러니까 카피라이터, 홍보와 광고 전문가로 만난 고객 중 가장 대화가 편한 고객 유형을 고르라면 “전문가”, 또는 “교수”다. 의외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짜 전문가와 교수는 자기 분야 외에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까지 상당한 시간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면 일종의 존중이 있다. 저 사람도 저 분야에서 저 세월을 버티면서 저 정도 위치에 올랐다면 나름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경청의 자세가 있다.      


전문가는 전문가를 존중한다.

최근 만나 본 고객 중에는 UNIST 사람들이 있다. 학과를 달리해서 몇 분의 교수, 박사, 연구원들과 일한 적이 있다. 이들은 사실 그 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 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그렇다. 세계의 석학들이 보는 유명한 학술지에 일 년이면 몇 편씩 논문이 실리는 학자들이다. 그런데 이들과 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존중감이 느껴진다. 그들 나름대로 우리에 대해서 조사를 했거나 학교 홍보실을 통해 알아보고 추천받아서 불러서 이기도하겠지만 대화를 하는 도중 그들이 궁금한 부분에 관해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친절하고 막힘없이 얘기해 주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경청의 자세를 취한다. 마치 고객이 아니라 학생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제작 과정과 촬영을 할 때도 가장 협조를 잘해주는 것이 바로 이곳이다.  

    

사실 전문 분야에서 나름의 경력을 쌓고 입지를 갖고 있는 고객과의 대화는, 의외로 즐겁다. 최근 우린 AR/VR/3D 영상 분야의 전문 기업과 일을 진행 중인데 우리와 대화하는 실무자는 완전하고도 완벽한 이공계 전공자다. 이런 이공계 전공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인문 사회 분야, 그리고 당연히 광고나 홍보 분야에 문외한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주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갇혀서 논의를 확장하는데 애를 먹곤 한다. 그 기술의 쓰임새, 그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 사람이 사는 사회, 그 기술의 경쟁 상황 등에 대해 간과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않고 기술과 제품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관련 기술과 제품, 그 시장 상황에 관해 두루 조사해 가서, 그 자료를 바탕으로 광고와 홍보를 하기 위한 사전 단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 아주 진지하게 듣는다.      


대화가 안 되는 이들

대화가 어려운 사람은 그 경력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일반 공무원이나 교직원 같은 사람. 특히 공무원의 경우엔, 앞서 다른 글에서도 말했듯이 부서별 순환 근무를 한다. 그래서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부서의 계장, 과장, 심지어 부장이나 국장이라고 해서 관련된 전문 지식이 깊으라는 법은 없다. 아니 그런 기대를 안 하는 게 낫다. 


홍보실은 더 하다. 아직도 상당수 공무원 조직이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에 시민과 대중을 상대로 한 적절한 PR 전략이나 광고 기획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민감도도 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수도권의 대도시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지방 도시의 홍보 업무는 대체로 기자와 언론사 관리 업무와 동일시되고 있고, 그러한 사고가 홍보실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충주시의 홍보 담당처럼 자기 마음대로 미디어를 고르고 그에 맞게 콘텐츠를 만드는 직원과 그걸 격려하는 단체장과 상관도 있지만 대개의 지자체는 오래된 관습과 일의 전형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다들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운영하지만 대부분이 정보 제공, 치적 자랑, 관광지 홍보에 치중하고 있다. 그마저도 단체장이나 담당 부서의 상관이 바뀌면 그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 아니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 즉 시민과 국민의 입장에서 지역의 일관된 개성이나 이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지자체의 슬로건이 수시로 바뀌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애초에 만들 필요도 없는 걸, 아무 생각 없이 만들다 보니 그 무게가 가볍고 시민들도 모르기 일쑤다. 세금을 들여 후딱 바꿔도 다들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지자체의 홍보 마인드다.     


난 갑이고 넌 을이야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선출직인 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지역의 공직 사회가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또는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권위주의적인 관청이나 공무원은 아주 쉽게,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전문 분야와 전문가의 업무를 가볍게 취급한다. 개방적인 분위기의 단체장이 선출됐다고 해서, 그래서 분위기가 좀 감각적인 걸 선호하게 됐다고 해도 좋을 건 없다. 대체로 지역 단체장의 측근이 시장의 대변인이나 홍보 담당을 맡아 홍보 관련 업무를 주관하는데 그런 사람들 중 관련 업계에서 일했거나 관련 전공을 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 선거를 치러본 경험, 과거 기초/광역 의원 임기동안 겪은 사례를 바탕으로 훈수를 두고 방향을 제시한다.      


이럴 때, 예전 같았으면 상당히 긴 실랑이를 했다. 과거의 자료와 레퍼런스를 보여주고 콘티와 카피의 장점을 설명 했다. 요즘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그에 맞는 표현 전략을 거듭, 반복하여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그러니까 이미 쉰이 넘고 예순이 가까워진 소위 단체장의 측근들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이 대중의 취향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이 모두의 생각이라 여긴다. 위에서 이야기하면 아래에 있는 시민들은 알아서 들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하고 말한 것이 혹시 이런 뜻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귀가 뚫렸다고 남에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요즘엔 그냥 맞장구를 쳐준다. 우리 회사 이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는 선까지 물러난다. 어차피 몇 년 후면 이 자리에 없을 사람이다. 어디 시/도당 위원장, 당협이나 지역위원장이나 하면서 훗날을 도모할 사람이다. 단체장의 비서실장이나 대변인을 한다는 건 정치인으로서 이렇다 할 큰 승리를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일종의 위로 인사이자 보은 인사인 것이다. 그래서 단체장의 임기가 끝나면 정치를 은퇴하거나 지역의 공공기관 사장으로 낙하산을 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고, 그도 안 되면 이렇게 다시 다음 선거를 기약하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선거철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아주 겸손하게 90도로 인사하면서, 낮은 자세로 봉사하겠다, 시민 여러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 언제나 민생의 현장에 있겠다며 목이 쉬도록 떠들고 다닐 사람이다.      


게다가 지역에선 몇 다리 건너면 다른 관계로 마주할 수도 있다. 지역의 토박이인 감독은 특히 그렇다. 아마 젊은 사람들이나 수도권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지역의 경우엔 종친회의 서열 확인으로 상하관계가 바뀌기도 한다. 학교 선배가 그 사람보다 다른 분야에서 선배면, 이 역시 관계가 바뀌기도 한다. 그 외에도 친목회, 동창회, 종교 단체 등등 언제 어디서 다른 모습으로 만나 이 관계가 바뀔지 모른다. 이걸 깨닫게 된 이후, 감독과 난, 지금 잘 나가는 공무원, 특히 선출직 공무원과 그를 따라 들어온 “낙하산” 인사이자 “보은”인사인 별정직 공무원의 위세에 긴장하지도 않고, 유세 부리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한 업을 오래 하면서 별 희한한 꼴, 이상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런 도가 아니 도가 트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스트레스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어떤 자리에 오르면 그 자리가 평생 갈 줄 알고 유독 그렇게 유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고 넘어간다. 흔한 말로 권불십년화무십일홍(權不十年花無十日紅)의 허망함을 모르고 저러는구나, 언젠간 더 나이가 들면 저 사람도 그걸 알게 되겠지 생각하고 넘어간다. 한 꼰대의 입김으로 저 산으로 가버린 홍보 영상을 봐야 될 시민들이 좀 불쌍하긴 하지만...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이 있다. <장미의 이름>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책이 생각났다. 이경규씨가 그랬나?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요즘 그걸 절감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인인지 썩은 동아줄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