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뜨거움과 지속 사이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24

by 최영훈

꾸준함 사람의 무서움

운동이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어디 운동뿐인가. 살다 보면 늘 하던 것도 싫어질 때가 있다. 성실한 직장인도 출근하기 싫을 때가 있고 모태신앙인 사람도 교회 가기 싫을 때가 있다. 입 짧은 햇님이도 밥 먹기 싫을 때가 있고 이십 대 팔팔한 청춘도 섹스가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요즘의 나는, 섹스와 운동까지 심드렁해지면 죽을 때가 너무 가까워진 것 같아 화들짝 놀라 억지로라도 하려고 하지만 귀찮을 때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내게 종종 쉽고 간단한 운동법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안 힘든 복근 운동, 안 아픈 팔 운동, 내일 아침에 걷는 데 지장 없는 하체 운동, 가슴이 전혀 뻐근하지 않은 가슴 운동 법을 묻고 한다. 후배가 물으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고 대번에 면박을 주겠지만 묻는 사람이 아내나 처남, 처제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질문엔 나름의 준비된 답이 있다. 나 또한 운동이 하기 싫을 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 효과를 얻는 운동을 찾았었기 때문이다. 특히 몸의 근육을 만들거나 그 근육을 유지하는 운동을 해야만 할 때는 더 그렇다. 그중에서 제일 귀찮은 건 복근 운동 아닐까? 다들 어떤가?


나도 예전엔 하드 코어 한 복근 운동들을 했었다. 덕분에 제법 굵고 선명한 식스팩을 갖고 있었고. 하지만 수영을 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 근력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간편하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복근운동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럼 가장 손쉬운 운동은 뭘까? 내가 잠이 안 올 때 특히 많이 하는 운동을 하나 소개하겠다. 너무 시시하다고 열받지 마라.


자, 똑바로 누워봐라. 경험상 베개를 베는 것이 더 좋다. 다리는 살짝 구부려도 좋고 그냥 쭉 펴도 상관없다. 준비 됐나? 자 이제, 허리 사이즈가 1인치는 작은 청바지를 누워서 입는다고 상상해라. 어떻게, 다리는 다 꼈다. 이제 단추를 끼울 차례다. 숨을 후욱 들이마시면서 배를 최대한 압축해서, 그야말로 뱃가죽을 척추에 갖다 붙여라. 더, 더, 더. 아랫배부터 꾹꾹 누르고 올라와 갈비뼈가 시작되는, 횡격막이 있는 곳도 최대한 눌러 붙여라. 그 상태로 최대한 오래 있어라. 천천히 열을 세거나, 스물까지 세면 더 좋다.


몇 해 전, 허리도 안 좋은 데다가 태생적으로 복근이라곤 1도 없어서 어린 시절부터 윗몸일으키기를 하나도 못 했다는 처제에게 이 운동을 가르쳐줬었다. 처제는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잠들기 전에 이 운동을 꾸준히 해서 효과를 봤다고 아내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꾸준한 사람이 무서운 이유다.


수영장 개근 회원

수영장에서 수영이 느는 사람은 꾸준한 사람이다. 초급반 때는 특히 그렇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제 막 시작했는데 집에서 수영 동영상이나 열심히 본다고 실력이 늘겠나? 수경을 고급반이 끼는 좋은 것으로 바꾸고, 수영복을 바꾼다고 해서 실력이 늘겠나? 아니다. 결국엔 시간의 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수영장에서 두세 시간 있을 수는 없다. 다들 한 시간 정도 머물다 간다. 주어진 시간도, 주어진 공간도, 주어진 강사도 갔다. 다른 건 오직 저주받은 몸뚱이뿐이다. 당신만 당신의 몸뚱이를 저주하는 건 아니다. 당신 옆에서 여유 있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총각도, 미모를 유지하려는 아가씨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줌마도 수영장을 나갈 땐 한숨을 쉬며 독백을 한다.


'아니 팔을 돌리면서 숨은 어떻게 쉬라는 거야.', '엎드린 상태에서 팔을 돌리는데, 그 사이에 숨까지 쉬라고?', '하~ XX, 수영이 나랑 안 맞나.', '아니, 그 브런치 작가가 3개월이면 된다고 했는데, 젠장...'

매일 나 자신에게 열받으면서도, 결국 그 열받음의 강도와 횟수를 줄이기 위해선 그 열받음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머리로 열받는 대신 몸이 열받아서, 이러다 수영장 물 뜨거워지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로 힘차게 수영할 날이 온다.


그때가 언제냐고? 그건 모르지. 우리 인생엔 발화점이 없다. 전자레인지로는 몇 분, 에어 프라이어로는 몇 도에서 몇 분이 정해져 있는 비비고 만두도 아니다. 3분만 끓이면 되는 라면도 아니고 말이다. 요즘 말로 언제 포텐이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영역에서 능숙해진 나를 보는 날이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른다. 내일의 날씨는 예측할 수 있고 보름 정도의 날씨라면 얼추 가늠할 수 있지만 사람은 아니다. 어제 안 되던 것이 오늘 갑자기 될 수도 있고 이번 달엔 도저히 몸이 이해 못 하던 접영을 다음 달엔 이해할 수 있다.


완벽을 향한 여정

얼마 전, 강사가 오래간만에 평영을 시켰다. 두 바퀴 돌린 후 간단한 팁 몇 개를 가르쳐줬다. 그중 하나가 글라이딩 할 때 견갑골을 빼내며 어깨를 앞으로 쭉 밀어주는 동작이었다. 그는 서서 그 동작을 보여주며, 견갑골과 어깨가 어떤 형태로 변하는지 보여줬다. 그가 가르쳐준 동작을 기억하며 몇 바퀴 더 돌았다. 앞으로 더 밀고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돌고 나니 견갑골이 뻐근했다. 이때까지 평영을 하면서 몸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증거다.


어제 강사는 접영 킥에서 킥백의 중요성에 대해 재차 말했다. “수영을 잘하시고 오래 하신 회원님들 중에 엉덩이가 납작하시고 허벅지 뒤에 근육이 없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게 이제 킥을 앞으로, 위로만 차셔서 그렇거든요. 접영, 배영, 자유형 킥을 하실 때 약간 킥 백 동작을 하셔야 돼요. 엉덩이를 좀 쓰시면서.”, 그러면서 직접 접영 킥을 보여줬다. 이 킥 백의 교정을 위해 누워서 하는 돌핀 킥 몇 바퀴를 시켰다. 바사로 킥이라고 한다. 고급반도 이렇게 지적을 받는다. 언제쯤 선수 출신 강사도 인정할 만큼 완벽에 가까운 수영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나도 모른다. 그저 할 뿐이다. 그날이 오길 기다리며.


뜨거운 열정보다, 그 열정의 지속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그 사랑을 지속하는 건 쉽지 않다. 누구나 결혼할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건 정말 어렵다. 누구나 뜨거운 열정을 쏟아낼 수 있지만 그 열정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일주일에 서너 번, 매번 한 시간씩 수영을 하면 언제쯤 박태환처럼 될 수 있을지, 아니 그게 가능하기나 한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잘해야 대여섯 번 나오는 사람보다 수영 실력과 체력에서 앞서 간다는 것이다.


뭐, 사실 책도 마찬가지다. 안 읽어도 사는데 크게 지장 없는 이런 철학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나, 요즘 애들 말로 “현타”가 올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즘엔 읽다 보면 재미가 있다. 그러니까 어려웠던 것이 슬슬 이해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 그다음엔 쓸모인데, 그건 아직 모르겠다. 뭐, 우리가 어부가 되려고 낚시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해 바둑을 두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재미가 있어서 꾸준히 하는 건지, 꾸준히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서 재미가 있어지는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마음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꾸준히, 은근히 계속 태우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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