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0시 30분 전에 집을 나선다. 부지런히 걸어, 10시 39분에 마지막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 후 수영장까지 걸어서 4, 5분. 10시 45분쯤에 라커룸에 들어간다. 작은 수영복 가방을 보관대에 올려놓고 거기서 수모, 수경, 수영복을 꺼낸다. 수경은 가방 위에 놓고 수영복과 수모만 갖고 샤워장에 들어가 샤워를 한다. 짧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수경을 왼쪽 팔로 넣어 어깨에 걸치고 수영장에 들어간다.
수요일이라면 핀을 우리 레인 앞에 놓고, 그 외의 날엔 바로 작은 풀로 걸어간다. 그 풀의 난간에서 찰랑찰랑 넘치는 수영장물에 발을 적시고 천천히 풀로 들어간다. 나만의 순서대로 스트레칭을 한다. 우선 접영 동작처럼 양팔을 벽에 대고 쭉 위로 밀어 올린다. 이때 상체와 하체는 그대로 있다. 다음엔, 한 팔씩 같은 자세를 해서 팔은 물론이고 겨드랑이와 승모, 견갑골까지 풀어준다. 이후 고관절을 풀어주고 허리를 푼다. 강사가 체조 시간을 알리는 호각을 아직 불지 않았다면 작은 풀에서 느리게 자유형을 한다. 호각이 울리면 본 레인으로 들어가 체조를 따라 한다. 본격적인 수영이 시작된다.
루틴이다. 루틴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마음 준비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질 수영을 진지하게 임하기 위한 나름의 마음다짐이다. 다른 하나는 몸의 준비다. 몸에게 알리는 것이다. 좀 전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고 걸어왔던 몸에게 이제 수영을 할 것이라고 알리는 것이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각성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어, 그 동작을 하면, 그렇게 매일 하면 몸도 마음도 재빨리 시스템을 바꾼다.
반복되는 일상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아내는 출근하고 아이까지 학교에 간 여덟 시부터 수영장을 향해 집을 나서기 전까진 카피를 쓰고 기획서를 쓰고 자료를 본다. 당장의 바쁜 일이 없으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다 읽은 뒤라면 나름의 서평을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쓴다. 수영이 끝나면 작은 풀에서 5분 정도 쿨링 시간을 가진 뒤 샤워를 하고 집에 오면 열두 시 삼십 분쯤. 간단히 점심을 먹고 한시부터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곤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구경하거나 어떤 형태의 글이든 쓰는 일뿐이다. 루틴이다.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그런데 지겹지 않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은 지겨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지겹지 않다. 일주일에 두어 번 작업실에 출근해서 회의를 하고 고객을 만나고 미팅을 하는 걸 제외하면 같은 방, 같은 컴퓨터 앞, 같은 의자에 앉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집에서도 거의 20년 넘게 살고 있다. 지겨울 만도 한 데 지겹지 않다.
물론 그 사이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좋았던 날도 있고 싫었던 날도 있다. 같이 사는 사람이 매일 좋을 수도 없다. 아이가 아파서 심난했던 적도 있다. 새로운 일을 한 적도 있고 작년과 같은 일을 하기도 했다. 어떤 일을 계기로 운이 확 트일 것 같은 기대에 부푼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계기로 인생은 내 기대 되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보내기도 했다. 잠시 만났던 사람도 있고 이십 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지역의 공무원들 사이에서 제법 인지도도 생겼다.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바람과 이대로 조용히 나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교차한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평정심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찾아오는 것인지.
우연히 만난 새로운 나
앞서 달리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삼십 대 초반, 마라톤을 했다. 카피라이터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든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매일 짧게는 5킬로미터, 길게는 10킬로미터를 뛰었다. 인터벌 훈련도 하고 언덕을 오르는 훈련도 했다. 대회에도 나갔다. 기록이 조금씩 좋아졌다. 매일 같은 길을 뛰는 건 지겹지만 지겨운 걸 해야 새로운 나를 만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오늘의 나를 잊기 위해서 달렸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지겨울 수 있다. 강사가 시키는 훈련의 패턴도 대체로 감이 잡힌다. 딱히 새로울 건 없다. 그러나 매일 오는 사람은 매일 온다. 하나도 지겹지 않다는 표정이다. 매일 해도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온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영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수영장에서 하는 영법은 이게 다다. 바다로 나가지 않는 이상 수영장의 길이는 똑같다. 25미터와 50미터. 깊이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같은 공간, 같은 거리, 심지어 희미하게 나는 소독약 냄새도 같다. 그런 곳에서 수영을 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50분.
어느 순간 달라진 나를 만난다. 몸이 앞으로 나간다. 접영이 힘들지 않다. 2,3백 미터를 돌아도 여유가 있다. 저번 수요일, 핀 수영 메인 세트를 하는 날, 난 4번 주자였다. 내 앞으로 고정 1번과 2번, 그리고 해경 시험을 준비하는 총각이 오래간만에 와서 3번을 세웠다. 내 뒤로는 아줌마 몇 분이 섰다. 자유형 100미터, 배영 50미터가 한 세트, 이걸 네 세트 하는 것이 메인 세트 중 하나였다. 두 번째 세트를 들어가는데 누군가 뒤에 바짝 쫓아왔다. 누가 이렇게 스피드가 좋나 싶었다. 나도 앞에 총각을 따라가느라 나름 스피드를 내는 중이었다. 세트가 이어지는데 처지지 않았다.
끝나고 보니 올봄에 우리 반에 새로 올라온 젊은 엄마였다(아이가 방학 기간 동안 특별 수영 강습을 받는 걸 보고 아기 엄마라는 걸 알았을 정도로 동안이어서 이렇게 부른다.). “아유, 난 누가 이렇게 바짝 쫓아오나 했네. 놀래라. 아니 앞에 총각 쫓아가려고 제법 속도를 내는데도 안 처지더라고”, 운동이 끝나고 농담과 진담을 섞어 칭찬을 던졌다. “아, 놀라셨죠? 아, 제가 발을 칠까 했는데 그건 참았어요.”, 젊은 엄마 역시 가볍게 화답했다. 같이 웃었다. 모르는 사이 속도와 체력이 붙었다.
새로운 곳엔 새로운 "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겨운 일상을 잊기 위해, 또는 좀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여행을 가고, 카페 순례를 하고 핫하고 힙한 거리와 장소를 기웃 거린다. 쇼핑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신다. 코로나가 끝나고 홈쇼핑에서 가장 많이 팔고 있는 제품 또한 여행 상품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계절도 안 가리고 판다. 그동안 다들 기분 전환을 못했던 모양이다. 다들 그런가?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어서 여행을 가서 색다른 장소에서 색다른 모습의 나를 사진으로 남기고, 여행이 여의치 않으면 요즘 유행인 몇 천 평짜리 카페라도 가서 몇 개만 담으면 몇 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빵을 먹으며 쓴 커피라도 마셔야 하나?
새로운 모습의 내가 새로운 나는 아니다. 그건 그저 새로운 이미지일 뿐이다. 실체는 아니다. 새로운 나는 묵묵히 버텨내는 일상과 수고 끝에 만나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걸 더 깊이 깨닫게 됐다. 아이는 음악 줄넘기와 주산을 제법 오래 했다. 하다 보니 두 분야에서 몇 개의 자격증이 생겼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 학교를 오가는 세월 속에서 학년이 올라가고 지식이 쌓였다.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단어로 글도 쓰고 말도 한다. 종종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을 정도다.
우리는 애가 아니어서 여러 개를 동시에 학습하면서 해마다 확연히 달라질 수 없다. 몸 또한 이미 다 커서 늙고 쇠잔해질 일만 남았다. 결국 달라진 나를 만나기 위해서 뭔가를 꾸준히 하는 방법 밖에 없다. 반복은 기술이 되고 기술의 반복은 그 기술을 더 세련되게 한다. 숙련이다. 그 세련된 기술을 익힌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른 업그레이드된 나다. 마라톤, 헬스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스포츠들은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결국 새로운 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찾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도래할 나를 기대하며 반복과 연습, 지루함을 견딘 끝에 만나는 것이다.
다시 달리기를 하려고 러닝화를 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짧은 숏폼 영상을 보다 보면 ‘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열두 살인 딸은 그런 영상을 보면 다 하고 싶어 한다. 그림도, 음악도, 공부도, 춤도 저렇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하고 싶다.”의 영역이 둘로 나뉜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포기해야만 하는 것으로. 결국 알고리즘은 내게 가능한 세계와 불가능한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 두 세계가 확연하고 극명하게 나눠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젊음이란 결국,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가 적은 것일 테고.
요즘 영상들을 보며 다시 하고 싶어진 것이 달리기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옷도 입던 것이 남아 있고 러닝 고글도 있는데 신발이 마땅한 것이 없어서 하나 샀다. 적당한 코스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