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와 만나는 순간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31

by 최영훈

앞선 글에서 루틴과 반복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썼다. 그런데 그 순간이 왔음을, 그래서 새로운 나를 경험하고 있음을 알아채는 순간은 언제, 어떻게 찾아오고 알아채게 될까?


이게 된다고?

목요일엔 체력을 끌어올리는 날이다. 첫 번째 메인 세트는 하이폭식 훈련을 곁들인 자유형 100미터 네 개였다. 빠른 속도로 다 하고 나니 강사가 새로운 세트를 주문했다. 접영 25미터, 6개. 수영을 모르는 사람에겐 대단해 보이지 않는 거리이자 횟수일테고 수영 선수에겐 가벼운 몸 풀기 정도겠지만 동호인에겐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접영이 어떤 영법인가. 하면 할수록 온몸의 진을 다 빼는 영법 아니던가.


핀을 끼고 한다면 접영 서른 개도 문제없다. 그러나 핀 없이 하는 접영을 몇 개 연이어한다는 건 만만치 않다. 한두 달 전만 해도 이런 세트를 하게 되면 두 개까지는 제대로 된 접영을 하고 세 번째나 네 번째 접영부터는 한 팔 접영을 했다. 우리 반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안 그러면 팔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 물을 다 쓸고 가는 민망한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마 세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양팔 접영을 하는 사람은 1번과 2번, 그리고 날렵한 3번 아줌마 정도 아닐까?


일단 해보기로 했다. 난 이 날 3번을 섰다. 첫 번째 25미터를 끝냈다. 두 번째도 할만했다. 세 번째까지도 무난했다. 네 번째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팔이 올라왔다. 응? 이게 웬일이야. 스스로 놀라며 다섯 번째로 접어들었다. 팔이 올라왔다. 오호. 마지막 여섯 번째, 역시 팔이 올라왔다. 여섯 번째도 지친 기색 없이 완벽하게 해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족집게 강의와 올라온 체력

일단 이번 주, 강사는 접영을 할 때 등을 사용하는 법을 아주 디테일하게 가르쳐 줬다. 앞서 다른 글에서 썼듯이 견갑골을 사용해서 등을 뒤쪽으로 오므려주는 힘으로 팔을 뒤로 빼주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몸통으로 팔을 통제하기 때문에 팔이 덜 피곤하다. 팔을 앞으로 던질 때도 등의 펴주는 힘으로 던지기 때문에 어깨와 팔의 피로가 덜 하다. 여기에 그동안 강사가 고쳐준 접영의 디테일한 변화가 큰 몫을 차지했다. 엉덩이의 사용, 발을 약간 안짱걸음 형태인 ㅅ자 형태로 만들어서 킥을 차는 법, 물을 잡는 법 등등.

그러나 더 큰 원인은 그동안 체력이 는 것이다. 핀 수영을 할 때마다 강사는 적게는 25미터 열 개, 많을 때 스물다섯 개까지 접영을 시켰는데 그걸 끝까지 소화하다 보니 나름 접영 체력이 생긴 것이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어쩌면 지레 겁먹고 ‘세 번째부터는 한 팔 접영을 해야지.’하고 마음먹고 그렇게 했으면 난 내가 달라졌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네 번째는 어떻게 됐어도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으면 달라진 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나 세 번째 접영부터는 한 팔 접영을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래야지 생각했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가능성을 열어놓고 되는 데까지 해보자 마음먹고 하다 보니 하게 됐고 만나게 된 것이다.


도전 앞에서의 마음가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장르의 일이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분량과 규모의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이때는 거절하거나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받아들이는 경우는 두 가지 때문이다. 그 일을 안 하면 안 될 만큼 내 삶의 상황이 절박하거나, 아니면 내가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이라면 충분히 해내리라 판단이 됐을 때다.


전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고 후자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다. 거절하는 경우는, 당연히 두려움 때문이다. 아니면 그 일 아니어도 잘 먹고 잘 살만큼 일이 많아 바쁘거나. 어떤 마음으로 일을 받든새로운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해 보기 전까진 충분히 준비가 됐는지 알 수 없다.


십여 년 전, 프리랜서로 활동할 때, 처음 백서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전자의 마음이었다.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할 수 있고 없고는 그다음 문제였다. 후자의 경우엔 몇 년 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의 마음이다.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과 공부한 시간, 읽어 온 책들을 감안하면 한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시나리오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보니까 됐고 그제서야 그동안 허투루 일해 온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일을 대하는 두 가지 자세

일을 하면서 만나는 젊은 학생들이나 후배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부류고, 하나는 막연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류다. 막연한 두려움은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와 경험 부족에 기인한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은 경험 많은 선배들과 규모 있는 일을 몇 번 경험하면 극복이 된다. 후자의 막연함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이제 막 접영을 배운 사람의 자신감과 비슷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레벨에서의 경험만 믿고 다른 레벨로 도전하려 한다. 이론도 부족하고 실무 경험도 적다. 업계의 기준에 못 미치는 몇 개의 작업, 그러니까 학과 과제나 동아리 발표회 수준의 영상으로 받은 칭찬과 격려를 기반으로 쌓은 자신감이다. 이들은 결국 실제 현장에서 정말 큰 곤혹을 경험하면서 성장하거나 그 곤혹이 당혹감으로 이어져 현장에서 도망치기도 한다.


새로운 나의 기원

새로운 단계의 나는 그 나를 봤을 때, 그 새로운 나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는 기원이 있을 때 탄생한다. 새로운 내가 밑도 끝도 없이, 하늘에 뚝 떨어지는 것처럼 탄생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시 과거의 두려움을 접어놓고 자신을 믿고 첫 번째 랩, 두 번째 랩, 혹시나 하면서 세 번째 랩, 그 랩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네 번째 랩, 그렇게 나도 모르게 마지막 랩까지 소화하고 나면, 그때서야 내가 새로워졌음을 알게 된다.


우리 반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젊은 엄마는 거의 모든 영법에서 내 뒤를 바짝 쫓고 있으며 체력 좋은 아줌마와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 또한 놓치지 않고 따라오고 있다. 1, 2, 3번 주자와 나로 구성된 선두 그룹과 아줌마들이 주축인 후미 그룹과의 간격은 촘촘해졌다. 이제 컨디션이 안 좋으면 맨 뒤로 밀려날 판이다. 당신도 언젠가 자기 자신에게 이런 변화를 목격할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해라. 그러다 기회가 오면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라. 나도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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