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을 바꾼 보람이 있다. 강사가 회원들의 상호 안전을 위해 숏핀으로 바꿔달라고 했을 때, 처음 바꾼 핀은 EVA 소재로 만든 가벼운 핀이었다. 펠프스가 모델로 나온 영상에 솔깃했고 모양도 일반적이지 않은 데다가 색상도 화려해서 맘에 들었다.
앞서 썼듯이 접영을 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자유형. 워낙에 가벼워서 물을 눌러주지 못했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작은 뗏목이나 패들 보드를 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노를 저어 앞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노가 너무 가볍고 부드러워서 물을 저을 때마다 노가 휜다고 상상해 봐라. 당연히 물을 크게 저을 수 없다. 내가 처한 문제가 이와 같았다.
이러다 보니 핀 수영을 하는 날, 자유형 장거리를 하게 되면 생각보다 빨리 지쳤다. 게다가 웜업으로 자유형 발차기라도 몇 바퀴 시키는 날이면 거기서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다음 세트들이 버거웠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생일 선물을 핑계 삼아 관련 사이트에서 파는 숏핀 중 가장 무겁기로 소문난 제품을 구매했다. 롱핀 잡는 숏핀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핀으로 말이다.
핀 수영을 하는 수요일, 강사는 오랜만에 키 판을 잡고 자유형 킥 몇 바퀴를 시켰다. 킥 판을 세워서 두 바퀴, 누여서 두 바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킥 판은 주로 EVA 같은 가볍고 물에 뜨는 소재로 만든, 킥을 돕는 판이다. 크기는 대략 세로 50cm, 가로 30cm, 두께는 4,5cm 정도다.
킥 판은 수면과 평행하게 누여서 사용한다. 당연하게도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종종 수면과 직각이 되게, 그러니까 물의 저항을 온전히 받도록 세워서 킥을 할 때가 있다. 이유? 이유야 간단하다. 훨씬 힘들기에 다리 힘도 좋아지고 체력도 좋아진다. 강사들이 괜히 강사가 아니다.
가벼운 핀을 신고 이 세워서 자유형 킥을 했을 때는 엄청 힘들었다.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을 헐떡였다. 그러나 바꾼 핀으로 하니 여유가 있었다. 부지런히, 자주 찰 필요도 없었다. 내 앞에 선, 해경을 준비하는 총각은 정말 부지런히 킥을 차서 앞으로 나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따라잡기 위해서 난 그저 한 번만 물을 꾹 눌러 차기만 하면 됐다. 그럼 킥 판이 물을 힘차게 밀고 나갔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발목과 허벅지에 부담이 간다.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안했던 문제다. 하체 힘과 발목 힘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집에서도 틈틈이 발목 스트레칭-수영에서 발목의 힘과 유연성은 의외로 중요하다 - 을 한다.
핀 수영할 때 체력을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추진력을 더 얻기 위해 내 발목과 내 허벅지의 근육을 희생양 삼기로 한 것이다. 좀 과하다 싶지만... 어째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지 않나? 살을 내주고 뼈를 얻는다는... 조금 더 무리하게 생각해 보면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고사성어도 생각나고. 뿔이 있는 동물은 이빨이 없다는...
뿔이 있는 동물은 이빨이 없다.
수영을 다시 하기 전까지, 내가 하던 운동은 헬스였다. 집에서도 근육 운동을 주로 했다. 그래서 허벅지의 근육량이 같은 또래 평범한 남자보단 많은 편이다. 허벅지의 근육량이 많으면 에너지 소비가 잘 된다. 몸속에 쌓여 있는 잉여 에너지를 태우는 곳으로 허벅지만 한 곳이 없다. 차승원이 어디선가 얘기했듯이 그야말로 쓰레기 소각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꾸준히 하체 운동을 해 왔다. 상체를 자랑할 나이가 지나기도 했고... 상체의 근육은 나와 다른 이의 눈을 좋게 하지만 하체의 근육은 내 몸무게를 유지시키고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 이유야... 뭐...
다시 수영을 시작하고 느낀 것이 바로 허벅지 근육으로 인한 체력 고갈이었다. 자유형이나 배영을 할 때 킥을 자잘하게 많이 하면 금세 지쳤다. 고급 A반으로 옮긴 후에 더 절실히 느꼈다. 결국 체력을 올리든지, 여하간 수를 내야 했다. 체력은 금세 올릴 수 없으니 킥의 효율성과 스트로크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팔 힘과 손 크기도 자신 있었으니 물만 잘 잡아 뒤로 밀어내면 다른 회원들과 속도를 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서 말했듯, 핀을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난 키에 비해 손과 발이 크다. 또 수영장의 어떤 회원보다 허벅지 힘이 좋다. 젊었을 때 축구와 농구를 오래 해서 발목도 아직은 유연한 편이다. 스포츠 클라이밍 같은 근력과 유연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운동을 한 경험이 있어서 강사가 사용하라는 근육이나 관절을 바로 사용할 줄도 안다. 대신 큰 근육을 사용하면 체력이 빨리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지구력도 예전 같지 않고 회복력도 떨어졌다.
이런 장단점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수영장에서 내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조금씩 효과를 발휘해서 요즘엔 제법 1,2번과 함께 수영을 할만한 회원이 됐다. 수영이 끝나면 왼손 스트로크를 연습하고 나온다.
우린 다 나름의 장점이 있다.
다들 장단점이 다르다. 우리 반만 해도, 1번을 제외하면 다들 장단점이 다르다. 어떤 회원은 체력이 좋지만 폼이 예쁘지 않고 어떤 회원은 장거리 체력은 떨어지지만 단거리 회복력은 뛰어나다. 어떤 회원은 다 잘하는데 플립턴(선수들이 대회에서 하는 턴)을 못하기도 하고, 어떤 회원은 공포증 때문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스타트를 잘 못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팔 힘이 좋지만 누군가는 하체 힘이 좋다. 또 나를 비롯한 몇몇 회원은 노련미가 있지만 젊은 회원들은 젊음과 힘을 앞세워 우리를 따라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맘에 쏙 드는 건 없다. 핀이 가벼우면 몸은 편하지만 추진력이 떨어지고 핀이 무거우면 발목과 종아리가 좀 고생하지만 추진력은 향상된다. 또, 당연하게도 중후하면서도 경제적인 자동차는 없다. 중후하려면 차체가 커야 하고 차체가 크면 엔진과 바퀴도 커야 한다. 당연히 기름을 많이 먹게 되어 있다.
지덕체와 진선미를 다 겸비한 사람이 흔하지 않은 것처럼 나와 당신 또한 장점과 단점이 있다. 스스로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든, 살면서 실감하든, 학교 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든 당신의 장단점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걸 더 크게 볼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다. 조던 피터슨이 어느 강연에서 얘기했듯이 번화가를 지나가는 람보르기니의 운전자에게도 나름의 고난과 사연이 있다. 그는 그 차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발렛 파킹을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설령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차의 할부가 몇 년 정도 남았거나 어제 막 이혼을 해서 홧김에 차를 사버렸는지도 모른다. 말썽쟁이 아들이 다음 날 몰고 나가 전신주를 들이 박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장단점과 처지를 다 알지 못하기에 내 단점을 가리기에 급급하며 사는지 모른다. 내 장점을 무기 삼아 생을 헤쳐나가는 대신 단점을 콤플렉스로 여기고 전전긍긍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손과 발이 작으면 킥과 스트로크의 피치를 올리면 된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나보다 부력이 좋아서 살짝만 힘을 줘도 앞으로 나가는 체질인지도 모른다. 남달리 유연해서 평영과 접영을 부드럽게 할지도 모른다. 파워는 없지만 지구력이 좋아서 장거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당신이 아직 그 장점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타인의 장점을 부러워하는 동안 자신의 장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각자무치라는 사자성어를 잊지 말자. 우리는 다 각자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다. 단점을 가리는데 급급하지 말고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살아가자. 그 장점으로 나의 단점이 완전히 잊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