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 제목부터 불편하다.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솔직히 어떻게 써도 욕먹는 내용이고 아무리 집중해서 읽어도 인생에 별 도움 안 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려는 이유는 수영과 독서, 그리고 맥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고 여전히 야한 생각 하는 시간이 자는 시간보다 많은 오십 대 카피라이터만이 말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다.
다시 말하지만 불편하다. 일단 적당한 단어를 찾는 과정부터 심난하다. 자기애? 자존감? 자신감? 나르시시즘? 이런 표현의 반대말을 생각하면 좀 선명해지려나? 자기애의 반대말에는 자기혐오가 적당하려나? 그러면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나르시시즘의 반대말엔 뭐가 좋으려나? 이타주의? 검색해 보니 에코이스트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도 내가 보기엔 나르시시즘의 반대말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타인의 반향과 반응을 통해 자기애를 완성하는 사람이라니 말이다. 어찌 됐든 자기애의 다른 버전 아니겠나?
방법으로 넘어가면 더 심난하다. 자신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랑해야 하는지 그 범위 설정도 어렵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들 말하는데 이 또한 말 같지 않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람이라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외모쯤은 차분하게 평가할 수 있지 않나? 부모가 봐도 한숨 나오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이 어디 쉽나? 그게 그렇게 쉬웠다면 한국의 성형외과가 이렇게까지 성업 중일 리가 없겠지. 자존감이나 위로를 주제로 한 간편식 같은 심리학 책이나 달달한 에세이가 잘 팔리지도 않았을테고.
이래도 날 사랑할 수 있나?
어디 얼굴만 외모인가? 팔다리는 어떤가? 가슴이나 엉덩이, 허리는? 너무 짧거나 길지 않나? 또는 너무 작거나 크지 않나? 이뿐인가? 털이 있어야 할 데는 없고 없어야 할 데는 쓸데없이 많지 않나? 가늘어야 할 데는 굵고, 굵어야 할 데는 가늘지 않나? 딱딱하고 팡팡해야 할 데는 흐물흐물 거리고 부드러워야 할 곳은 딱딱하지 않나? 눈은 작고 코는 낮으며 귀도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나?
성격은 또 어떤가? 자신의 성격이, 그 성격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다 마음에 드는가? 어렸을 때는 괜찮다는 성격이 크면서 욕먹지 않나? 학교 다닐 땐 칭찬받았던 성격이 사회에 나오니 걸림돌이 되지 않나? 이전 애인은 좋다고 했는데 이번 애인은 이상하다고 하지 않나? 전 남친은 차분해서 좋다고 했는데 현 남친은 답답하다고 하지 않나? 이전 파트너는 화끈해서 좋다고 했는데 이번 파트너는 너무 급하고 지만 안다고 뭐라고 하지 않나? 아니 이런, 뭐 어쩌라는 거야. 이제 슬슬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과 답을 찾아보자. 특히 내가 좋아하는 수영과 독서에서 말이다. 뭐, 그래도, 딱히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으니 너무 기대하지 말고.
서툰 내가 싫을 때
당신이 다음 달에 수영을 시작한다면 앞으로 석 달 정도는 인생 최악의 몸 개그를 펼칠 각오를 해야 한다. 혹시라도 여자 회원의 엉덩이도 느긋하게 구경하고 몸 좋은 남자 강사의 식스팩도 틈틈이 훔쳐볼 계획이었다면, 그 계획, 조용히 집에 두고 오는 게 좋다. 첫 달에는 아마 당신이 지난 일주일 동안 마신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먹을지 모른다. 좀 작은 규모의 수영장이라면, 남들이 열심히 수영하는 동안 레인 밖에 걸터앉아 발차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좀 독한 강사라면 당신을 벽 앞으로 불러세워 벽을 마주 보게 서게 한 뒤 양팔을 번갈아 돌려가며 스트로크와 호흡의 리듬을 익히게 할 수도 있다.
둘째 달이 됐다고, 뭐 딱히 크게 멋있어지진 않는다. 자유형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겨우 20미터 정도고 배영도 마찬가지다. 평영과 접영은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허우적대는 모양새가 아닌 것에 만족해야 한다. 셋째 달이 되면 그럭저럭 강사가 시키는 영법과 요구하는 거리를 소화해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운동신경이 없거나 유독 수영이 체질에 안 맞는 사람이라면 맨 뒷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디든 마찬가지다. 학교도, 회사도, 군대도 처음엔 어렵다. 허둥댄다. 사랑은 안 그런가? 처음 연애를 시작했는데 <킹더랜드>의 구원 같은 눈빛을 발사한다면 그놈은 당신이 처음이 아니다. 눈빛을 쏘기는커녕 눈만 제대로 마주쳐도 다행이다. 섹스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툭 쳤는데 착 돌아서고, 오 분마다 한 번씩 체위를 바꾸는 건 최소한 서너 번의 연애 이후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요즘엔 안 그런가?
자기혐오는 막아내면서 자기 사랑은 유지한 채 , 이 서툰 시기를 버티는 방법을 찾아보자.첫 번째, 서툰 당신과 그 서툰 공간 밖의 당신을 분리하는 것이다. 수영장을 예로 들면 기초반의 당신과 수영장 밖의 당신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학교, 회사, 군대, 연애도 마찬가지다. 초보자인 당신이 당신 그 자체는 아니다. 그 시간이 영원하지도 않다. 그저 초보자 A일 뿐이다. 누구나 다 그런 초보자 A의 시기를 겪는다. 그 초보자 A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노련한 A가 된다. 그러니 지금의 수영 초보 A가 당신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당신 안엔 노련한 A, 고급반 A, 인턴 A에서부터 사장 A까지 잠재되어 있다. 당신은 지금 그중 하나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중일뿐이다. 이점을 잊지 않는다면 당신이 나중에 고급반 A나 사장 A가 됐을 때, 초급반 B나 사원 B를 대하는 태도가 너그러울 것이다. 그 시간을 겪고 있는 B에게 되도록 그 시간을 빨리,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데 기초반 사람과 신입 직원의 실수를 보면서 비웃고 책망하고, 심지어 “라떼”를 시전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지나 온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다. 당신의 역사를.
이 방법은 두 번째 방법, 노련함이 도래하기까지의 세월을 버티는 방법으로 이어진다. 초보자 A가 언젠가 노련한 A가 되리라는 기대를 유지하며 버티기 위해선 그 노련한 A를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영장을 예로 들어보자. 수영장에서 자신과 성별이 같으면서 비슷한 나이, 체격을 가진 중급반 사람 한 명을 찾아내라. 모든 영법을 터득했으며 강사가 시키는 운동량을 모두 소화해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발견했다면 샤워장에서, 또는 그 레인에서 체조를 하다가 은근슬쩍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라. 일단 저번에 우연히 수영하시는 걸 봤는데, 접영이 너무 멋있더라, 그 정도 접영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물어봐라. 어떤 노력을 해야 되는지도 물어봐라. 아주 기분 좋게 대답해 줄 것이다.
좀 눈을 높이고 싶으면 고급반 사람을 물색해라. 대신 두 반의 사람이 말하는 시간엔 제법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의 분량은 중요하다. 당신이 꿈꾸는 당신, 그러니까 중급반 A, 고급반 A를 만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니 말이다. 물론 당신은 그 사람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덜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미래의 당신을 눈앞에 보면서 그 미래의 당신이 도래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당신을 사랑하고 격려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도래할 다른 당신을.
나를 사랑하는 방법 - 몸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어려운 건 냉혹함과 관대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현실적인 판단과 이상적인 자아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하는 당신과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당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 때문이다. 이 나이 먹은 나도 그러고 산다. 뭐, 다른 어른은 안 그런가? 난 그런다.
몸부터 얘기해 보자. 거울을 보자. 맘에 드나? 맘에 들지도, 안 들지도 않다고? 괜찮은 몸은 아예 찾아보지도 않는 거냐? 인스타그램도 안 하고? 괜찮다. 건전하다. 나도 안 하니까. 누군가를 보지 않으면 비교할 일이 없다. 열등감에 빠질 일도 없고. 그러나 보이면 비교한다. 이 비교 때문에, 그러니까 다른 몸을 보고 자신의 몸을 비판하지 마라. 출발점이 거기여서는 안 된다. 다시 거울을 보자. 스무 살이 됐을 때 이런 몸이길 원했나? 서른에 만나고 싶은 몸이 그런 몸이었나? 마흔이나 쉰에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평범한 몸매로 살고 있다. 헬스나 수영, 요가나 필라테스는 고사하고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것도 별로 안 한다. 괜찮다. 어디 아픈 데가 없다면 운동할 필요가 없다. 특별히 어떤 몸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굳이 힘든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거울에 비친 당신이 맘에 들고 옷을 입을 때마다 벗은 몸이 부끄럽지 않다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 건강검진을 받은 후에 이상 소견을 듣지 않으면 그냥 살던 데로 살면 된다.
그러나 당신이 삶을 밀고 나가고 싶은 몸의 형태가 있는데,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그 형태가 아니라면 당신은 그 몸의 외형을 사랑하는 걸 멈춰야 한다. 아니 사랑할 수가 없으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에 일단 귀를 닫아야 한다. 이제 당신은 스스로에게 코치가 되어야 한다. 몰아세워야 한다.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동시에 훈련시켜야 한다. 당신이 바라던 형태가 될 때까지 묵묵히 다듬어야 한다. 반면, 특별히 원하는 형태가 없다면, 어떤 형태로 생겨도 상관 없다면, 사는 데 그런 형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 이런 몸, 저런 몸이 좋다는 세간의 말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 독서
독서도 마찬가지다. 학교 공부하고는 다르다. 면허증이나 취직 공부하고도 다르다. 두 공부는 결과가 드러난다. 당락으로 판가름 난다. 그 결과와 판가름이 공부 결과의 다다. 그러니 그 뒤에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 아, 물론 판검사나 변호사, 의사 같은 특수한 직업은 그 자격을 얻은 뒤에도 빡세게 공부해야 할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전문 직종이 그러지 않을까? 직장인 대부분이 관련 공부를 할 것이다. 이런 이들 대부분이 책 읽을 시간이 있겠나?
취미는 불필요한 행위다. 세상이 좋아져서 그 취미로도 돈과 명성을 얻을 수 있다지만 근본적으론 세상의 모든 취미는 돈과 에너지를 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소위 심리적 효용을 얻는 행위다. 독서 또한 마찬가지다. 다들 열심히 읽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꼭 해야만 하는 취미라는 것이 있을 수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 자기 사랑의 맥락에서 이 독서라는 취미를 권하는 이유를 찾자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냐고? 진짜다. 책을 5분 정도만 읽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한다. 이유? 간단하다. 자신을 통제해서 하기 싫은 걸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간과 하찮은 욕망을 통제하고 있다는 효능감이 생각보다 큰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을 가꾸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언제 그 효과가 드러날지는 모르지만 그 쓴 맛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보약을 넘겨 먹을 때 우리가 갖는 바람과 비슷하다. 그래서 몸을 가꾸는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기다림, 약간은 막연한 기다림을 동반한다. 마치 레인메이커의 제사 같다고나 할까? 비가 올 때까지 춤을 추는 건지, 춤을 추다 보니 비가 오는 건지, 비가 올 때쯤 춤을 추는 건지 모르는 것처럼, 독서도 그런 행위다.
그런데, 독서는 몸을 가꾸는 것과 맥락이 공유되는 지점도 있다. 눈썰미와 감이 있는 사람은 알아보고 눈치 챈다는 것이다. 헬스를 해서 엄청나게 근육을 키우지 않는 이상, 운동으로 좋아진 당신의 건강한 몸과 잔근육이 잡힌 몸매를 타인에게 알릴 방법은 없다.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그저 혈색이 좋아졌다거나 태가 좋아졌다는 인사치레의 말을 할 뿐이다. 그러나 종종 당신의 달라진 몸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전완근과 등 근육, 장요근과 허리에 쫀쫀하게 붙은 근육을 투시하듯 보는 사람이 있다.
책으로 쌓인 지적인 감각과 능력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당신이 읽은 책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히 회식 자리나 고객과의 미팅 자리에서 공적/사적 대화를 할 때, 또는 비즈니스 대화를 할 때 자연스럽게 그 읽은 것이 배어 나올 때가 있다.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작가나 작품, 이론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야기 주제의 맥락에 맞는 뭔가를 슬쩍 풀어냈을 뿐이다. 그때, 안다. 알아채고 당신을 달리 보는 사람이 꼭 있다.
일단,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시 말하지만 쉬운 말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뻔한 말은 하기에도 듣기에도 실천하기에도 쉬운 말이 아니다. 어떤 맥락에서든 이기적 자기애나 자기 연민에 빠질 위험이 있고 반발로 인해 자기혐오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 자기 자신이 맘에 들면 당연히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설령 맘에 들지 않더라도 사랑해야 한다. 맘에 들지 않는 당신 A에서, 맘에 드는 당신 A로 나아가기 위해선, 역설적이게도 응원과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천이라는 엔진은 자기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먹고 움직이는지 모른다. 그러니, 꼴 사납게 허우적거릴 당신이 보기 싫어서 수영장을 가기 싫은 오늘, 당신의 멱살을 붙잡고 수영장으로 끌고 가라. 멋지고 우아하게 물살을 가를 그날을 기다리며. 그 물살에서 우아하게 솟아오를, 도래할 당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