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직 멀었다. 상투적인 은유지만, 다 커서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펴고 둥지 밖으로 날아갈 날은 아직 멀었다. 이제 겨우 열두 살이다. 앞으로 최소한 십여 년은 보호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저 애 같던 딸은 올 겨울, 미국의 할머니 집에 간다.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말이다.
앞서 다른 글에도 쓴 것 같은데, 올봄,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가 넌지시 딸에게 혼자만의 미국행을 물었을 때, 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겠다고 했다. 그 어떤 두려움도, 불안도 없었다. 마치 이웃에 사는 친구 집에 혼자 놀러 가는 걸 허락받는 것 같았다. 내 자식이지만 나하고는 다르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그동안 혼자서 광안리의 삼촌집이나 감전동 외할머니 집도 간 적이 없다. 광안리의 삼촌 집은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지상으로 나와서 십 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한 번도 혼자 보낸 적이 없다. 감전동은 지하철로만 30분 넘게 가야 하지만, 역을 나와 잠시만 걸어가면 외가댁이 나온다. 이곳도 혼자 보낸 적이 없다.
바뀐 일상, 여전한 하루
사실 요즘에도 등굣길에 동행한다. 그러나 요즘엔 보호자의 느낌보다는 말동무나 짐꾼의 느낌이 강하다. 방과 후 교실, 바이올린 수업이 있는 월요일과 금요일엔 바이올린을 들어준다. 작업실에 나가는 화요일엔 혼자서 간다. 수요일과 목요일엔 딱히 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줬으면 하는 눈치를 준다. 왜냐고? 그냥 심심하니까. 그러나 이것도 당분간 못 할 것 같다. 오늘 아침, 함께 가자는 예림이의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는 것이 결정된 이후, 딸은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작년부터 보낼지 말지 고민했던 영어 학원도 2학기부터 보내기 시작했다. 별 다른 교육 일정 없이 그저 한 달 정도 체류하는 것이 다이지만 딸은 그 한 달 동안 영어 실력을 늘려 오고 싶어 했다. 이런 마음을 먹고 있던 딸은 학원에 가자마자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에 적극 참여하며 즐거워했고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성실히 해 갔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30분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단어 시험에서도 먼저 학원을 다니고 있는 애들을 앞지르고 있다.
아직은 울보 소녀
그래도 아직은 애다. 월요일 저녁, 저녁을 먹고 온다는 엄마의 소식에 딸과 단 둘이 밥을 먹었다. 국물이 맛있는 불고기가 주 반찬이었다. 내가 잠시 주방에 가 있는 동안 딸은 달걀 모양 접시에 담긴 불고기의 국물을 밥에 붓기 위해 접시를 들어, 붓다가 테이블에 국물을 흘렸다. 별 다른 책망을 하지 않았지만 애써 요리한 불고기 국물을 쏟았기에 그 요리를 한 아빠한테 미안하고,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인 자기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이, 그런 자신의 실수가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눈물에 복합적인 감정이 담겼다.
작은 소란이 끝난 후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미국 가는 이야기가 나왔다. 겨울의 일이 아니라 더 훗날, 유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딸은 자신이 언젠간 미국에 유학에 가리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저 시기가 문제일 뿐. 가게 되면 어느 집에 머물면서 공부를 할지를 두고 얼마 전 아내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딸과 했다.
이모 집에 있을지, 친할머니 집에 있을지. 그러다 내가 담담히 말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아빠는 네가 그냥 부산에 있었으면 좋겠어. 아빠 옆에. 여기서 대학 나오고 취직하고, 뭐, 그렇게 커서 결혼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 너 크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애써 눌러 두었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딸은 잠시 눈물을 닦았다.
엄마가 온 후 방과 후 바이올린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또 울었다. 선생님이 이런 것도 못하냐는 느낌으로 자기 앞에서 한숨을 쉬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어차피 그걸로 먹고살 것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녀석이다. 뭐든 잘하고 싶고 책잡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잠시 쉬다가 영어 학원 숙제를 할 때도 그랬다. 숙제는 영어 광고 문구를 원어민처럼 읽고 녹음한 뒤 업로드하는 것이었다. 딸은 몇 번 녹음했을까? 라디오 광고를 녹음하는 성우처럼 여러 번 테이크를 가져갔을 것이다. 내가 흘깃 본 것만 해도 파일이 열 개 정도 됐다. 그런데도 자기 발음이 맘에 안 드는 모양인지 결국 또 눈물을 흘렸다. 원어민 선생님과 음의 높낮이가 다른 것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루 저녁에만 각기 다른 이유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아직은 애다. 애인데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
집 밖을 나갔던 애들
아마 사춘기가 되면 집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더 주장할 것이다.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뛰쳐나가서 인생 망친 사람들이 아는 이들 중에 몇 명 있어서 몇 번 이야기해 줬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지역에선 흔한 일이었다. 몇몇은 사춘기 때 집을 나갔다. 잠깐의 가출은 수습이 됐다.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선택 가능한 미래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애들은 너무 멀리, 오래 나가 있었다. 여자 애들은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했고 유흥업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남자 애들은 그런 그녀들의 오토바이를 운전하거나 유흥업소의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다. 낮에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데 밤의 화려함은 선명한 지역에선 흔한 일이었다.
나가지 않은 애들은 집과 교회에서 버텼다. 버티면서 자기들끼리 연애를 하고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 뒤 지역에 있는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하거나 미군 부대 안에 그럴듯한 일자리를 구한 뒤 연애를 하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더 넓은 세상을 꿈꿨던 애들은 밤의 세상에서 벗어날 방법을 몰라 같은 방식으로 살다가 나이를 먹은 뒤에도 여전히 그런 삶을 살며 밤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고, 집과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던 아이들은 평범한 어른이 되어 일상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다 여행이라는 일탈을 통해 잠시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일찍 떠난 애들은 돌아올 집이 사라졌고, 가끔 떠나는 사람은 돌아올 집이 있다.
사랑이 거기 있어서
난 딸이 살아남기 위해 가족과 집과 종교라는 울타리를 선택하고 머물기를 바라지 않는다. 거길 벗어나면 죽을 것 같아서, 거길 벗어나면 살길이 없을 것 같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엄마 품이 좋아서, 아빠와 걷는 것이 좋아서, 함께 저녁 먹는 시간이 좋아서, 엄마, 아빠와 잘 자라는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잠드는 자신의 방과 침대가 좋아서 아빠와 엄마 곁에 머물기를 바란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다. 집을 떠난 애들은 가족을 정말 사랑하지만 세상 밖이 정말 궁금해서 나간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애들은 문 밖으로 나서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돌아와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고.
딸은 미국을 꿈꾼다. 돌아올 집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사람은 그 집과 가족이 거기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인해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두려움 없이 꿈꾸는 것 같다. 딸을 보니 그렇다.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여보, 여보.”하고 아내가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잠이 확 깼다.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났다. 벌떡 일어나 앉아 아내의 발을 정강이 쪽으로 올려 종아리를 펴주며 쥐를 잡았다. 아내는 금방 괜찮아졌다. 아내는 다시 누웠다. 여섯 시면 일어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잠시 누웠다. 나도 옆에 다시 누웠다. 아내의 부드럽고 매끈한 도자기 같은 팔에 잠시 얼굴을 대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여섯 시 사십일 분. 평소보다 십 분 정도 더 잤다. 잤다기보단 뒤척였다. 아내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고 늘 그랬듯 두툼한 요가 매트에 누워 허리를 푸는 소리를 들었다. 이후 물을 한잔 하는 소리도 들었다. 잠시 후 희미하게 딸과 몇 마디 나누는 소리도 들렸다. “밤에 안 더웠어?”, “살짝 더웠쪄.”, 딸의 혀 짧은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공부방에 불이 켜져 있다. 딸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아내는 다 씻고 막 욕실을 나오고 있었다. "종아리는?", "어, 괜찮아.", "우리할 텐데.", "아, 당신이 심해지기 전에 잡았나 봐.", 냉수를 한 잔하고, 커피를 내린 뒤, 두 여자에게 아침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 하루가 시작됐다.
"우리하다."는 "아프고, 쑤시고, 욱씬거린다,"와 같은, 통증을 두루 표현하는 경상도 사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