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T인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45

by 최영훈

이별의 징후

며칠 전 하굣길, 딸이 담담히 물었다. “아빠, 나 주현이랑 헤어질까?”, “왜?”, “그냥, 뭐...”, “같은 반인데 괜찮겠어?”, “우리 반 애들도 사귀었다 금방 헤어지고도 잘 놀아.”, “그래? 그러면 뭐... 굳이 헤어질 필요 있나? 그냥 친구처럼 지내도 되지 않을까? 내년이면 반도 바뀔 테고...”, 이 날의 이야기는 이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때는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며칠 후, 결국,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보자. 3학년 때부터 던가? 듬직하고 착실하며 가정교육 잘 받은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친구를 점찍어 고백을 해서 사귀기 시작한 것이. 뭐, 초딩 커플이 서로 해주는 것이라곤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 짐 정도 들어주는 거고, 하굣길에 학원차가 올 때까지 서로 기다려주는 게 다이지만 그래도 둘은 제법 오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왜 딸은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했을까? 이유를 듣고 보니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새겨볼 만한 이유여서 옮겨 적어 본다.


너 T야?

난 개인적으로 MBTI를 그렇게 믿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람의 성향을 보여주는 지표로는 쓸모가 있는 듯하다. 아내는 완전한 T 성향이다. 아내 말로는 아주 진지한 검사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점수가 나왔다고 한다. 딸은 T와 F 사이인데, 약간 T 성향이 더 강하다.


그러나 여성이 T인 경우와 남성이 T인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아내와 딸은 공감 능력이 남다르다. 딸은 얼마 후 있을, 학교 도서관에서 마련한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위해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를 다시 읽고 있는데, 아침 수업 전 독서 시간에 그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걸 보고 짝인 “키 작은” 우지원(반에서 가장 키가 작은 소년인데 이름이 우지원이라고 해서 내가 한참 웃으면서 붙여준 별명이다.)은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고.


여하간, 앞서 말했듯, 그렇게 며칠 후, 딸은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얘기했고, 남자친구는 그걸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에 대해 얘기해 줬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딸은 극 T 성향을 갖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 자잘한 상처를 받아 왔다고 한다. 딸의 표현을 빌리면 딸이 남자친구에게 어떤 문제나 속상한 걸 얘기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답을 해줬다고. 그러나 그것보다 더 딸이 속상해했던 건 다른 친구를 대하는 자세였다.


다른 글에 쓴 것처럼, 남자친구는 수학을 아주 잘한다. 그러다 보니 시험 때마다 채점 도우미를 거의 도맡아 한다. 채점 도우미는 말 그대로 자신의 답안지를 기준으로 친구들의 답을 체크해 주면서 선생님을 도와주는 것.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게 된다. 그런데 그때마다 성의 없이, 불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딸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남자친구 입장에서 변명을 해보자면, 그래, 겨우 열두 살이다. 자기보다 어린 후배도 아니고 동갑내기, 같은 반 친구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면서 친절하게, 그러면서 친구가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까지 하면서 수학을 가르쳐주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 반면 딸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 사태를 지켜봤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남자친구를 지켜봤다는 것이다.


공감 능력

남자든 여자든, 애든 어른이든 타인에게 공감하는 건 쉽지 않다. 그건 성별이나 나이나 학력, 그리고 흔히들 경상도 남자 운운하며 말하는 것처럼 지역적 특성의 문제도 아니다. 내 주변엔 나를 제외하곤 다들 부산, 울산 토박이이고 경남 지역이 고향인 남자들뿐이지만 다들 성격이 다르다. “싸나이”를 부르짖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딸은 키우는 사람이 조금 더 섬세한 면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것도 아들을 키운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딸을 지켜보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해석 능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성향이 T나 F냐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표정과 말, 글을 읽어내고 해석하여 그 참뜻을 알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를 읽고 울려면,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닦기 위해선 결국엔 책과 영화라는 텍스트를 읽어내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극 T인 아내가 병원에서 직원과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엄청나게 공감해 줄 수 있는 것도, 결국엔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공감 능력에 타인의 말과 사연을 해석하는 능력을 직업적, 후천적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해석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이런 해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겐 어떻게 해야 할까?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대부분 그렇듯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 지금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표정으로 말하거나 뉘앙스가 복잡한 단어를 사용하여 돌려 말하지 말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해야 한다.


종종 너무 적나라하게 말하기 민망해서,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배우자나 연인에게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나 싶어서, 그게 자존심이 상해서 아예 참고 넘어간 적도 많을 것이다. 그러다 병난다. 우리 부부처럼 성향이 다른 - 난 직업적으론 T 성향이 있지만 천성은 F 성향이 더 강하다. 이쪽 방면의 일가견이 있는 아내의 말이다. - 사람들이 살면 처음엔 이런 문제로 다투게 된다.


그러나 요즘엔 이럴 일이 거의 없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안 되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다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고 살만큼 산 사람이니 각자의 처지를 솔직하게 얘기하면 이해를 한다. 이해를 넘어 측은한 마음까지 생긴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어째 글을 쓰다 보니 연애 심리에 관한 글이 되어 버렸다. 이와 이렇게 된 김에 좀 더 이런 이야기를 해보련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전달하지 못한 마음과 말하지 못한 말들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 삼켜버린 말과 보내지 못한 편지와 잡아주지 못한 손이 후회로 남는다. 돌이킬 수 없다.


해석할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또 그런 시간을 줬던 것도 후회로 남는다. 생각할 시간이라니... 한가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게 할 소리였던가.


지금, 사랑을 말하고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명절에 전화를 주는 후배나 제자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건강하라는 당부를 빼먹지 않는다. 감독에게도 몸 챙기라는 잔소리를 자주 하고 잠 좀 자면서 일하라고 당부를 한다. 딸에게도 “수고했다.”, “고생했어.”, “예뻐.”, “사랑해.” 같은 말을 자주 한다. 마음에 단어들이 솟아오르면 기교 없이 담담히 전달한다. 아내에게도 그런다. 해석되지 못하면 후회만 남길 은유는 쓰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다.


사진은 작년 여름, 송정의 어느 카페에서 딸이 시키는 대로 찍은 설정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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