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딸과 함께 한 2주였다. 그 사이 추석 연휴의 주말과 한글날 연휴가 있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엄마가 못 먹게 하는 음료수와 과자도 많이 사줬다. 끼니도 잘 챙겨 먹었다. 나 또한 아내가 없는 틈을 타 많이 마셨다. 그렇게 우린 서로에 의지해 2주를 버텼다.
더 어릴 때도 둘만 있었던 며칠이 있었다. 대여섯 살 때도, 저학년 때도 그랬던 적이 있다. 미국에 사는 처제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여행을 가거나 학회나 회사 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이 때는 잘해야 며칠이었다. 이번처럼 2주씩이나 둘이 있었던 적은 처음이다.
딸에게 끼니를 챙겨주는 건 늘 하던 일이었다. 눈 뜨자마자 아침을 먹이는 것도 내 일이었고 저녁에 뭘 먹을지 궁리하는 것도 주로 내 일이었다. 그러나 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식탁은 낯설었다. 그래도 저녁때마다 TV를 끄고 대화를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고 학원에서 배운 것에 대해 들었다. 내일 있을 체육 같은 재미있을 수업에 대한 기대도 들었다.
저녁을 먹은 뒤,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딸은 자기만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주로 자기 방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스마트 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아니면 좀 전까지는 식탁으로 사용했던 거실 테이블에 앉아 TV로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설거지가 끝난 후, “은채, 뭐 할 거 없어?”하고 물으면 “아, 있어. 일곱 시부터 하려고.” 대답하곤 한다. 스스로 정한 시간이다. 거기에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 없다. 시간을 당겨줄 필요도, 밀 필요도 없다. 정말 그 시간이 되면 뭔가를 한다. 수학 학습지를 하고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하고 학원 숙제를 한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방정식을 푼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읽던 책을 펼친다.
늘 보던 딸이다. 그 딸을 2주 동안 다시 지켜봤다. 성실하다. 근성도 있다. 사회성도 좋고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줄 아는 열정도 있다. 진지하고 무거울 때도 있고 가볍고 애교스러울 때도 있다. 한 소녀의 진면목을 그렇게 2주 동안 지켜봤다.
아빠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그동안 아빠는 맥주를 마시며 일을 했다. 팀에 새로 의뢰가 들어온 일의 자료를 들춰보고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썼다. 열 시 반이면 딸을 재우고 또 마시며 글을 썼다. 딸 하고는 다른 아빠다. 딸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넌 아빠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쩌면 지금 딸의 모습이 내가 잃어버린 본연의 나인지도 모른다. 삼십 대 중반쯤이었다. 불쑥 원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십 대 시절, 성장기의 풍파를 겪지 않고, 유년기에서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답답하고 고루했던 신앙생활을 하기 전의 내가 궁금해졌다. 훨씬 그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또는 그전, 그전, 태어나길 어떤 애로 태어났을지 궁금했다. 상처에도, 철학이나 주의, 교조 따위에 내면이 왜곡되기 전의 순수한 상태의 내가 궁금했다. 이후 교회를 끊고 책을 읽었다. 그래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딸의 지금의 모습이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야무진 생각을 하고 있다. 나도 아내 같은 엄마를 만나고 나 같이 철없는 아빠를 만나고 처남 같은 삼촌을 만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 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면 이렇게 바르고 곱게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생각 끝에 난 이미 늦었음을 깨닫는다.
그런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었다. 나에 딸로 불리어지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기 바랐다. 어디 가서도 우리 아빠가 누구 누구라고 자랑할만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애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브랜드를 구분할 줄 알고 큰 차와 작은 차를 가늠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유력 인사처럼, 아니 하다못해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자식의 병원에서의 자원봉사를 청탁하는 의사 아빠들처럼 아빠 찬스, 아빠 덕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 나름 애를 썼지만 안 됐다. 지금은 그냥 “아빠”다.
어제, 잠들기 전 그런 생각을 했다. 그저 딸의 미래에 짐이 되지나 말자, 더 큰 세상,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애의 발목이나 잡지 말자, 애가 성공하는 데 걸림돌이나 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한참 공부하고 커리어를 쌓아가야 할 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쓸데없이 아프기나 해서 애가 잔신경을 쓰게 하지나 말자 하는 생각을 했다. 건강 관리 잘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하고 있는 일 잘해서 애한테 신세나 지지 말자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 딸은 일곱 시에 일어났다. 그러면서 아쉬워했다. 여섯 시 반에 알람을 맞춰 놨어야 했는데 깜빡했다고 했다. 그때 일어나서 영어 단어 공부를 못 했다고 아쉬워했다. 밥을 먹고 등교 준비를 끝낸 시간이 일곱 시 반. 집을 나서려 했다. 왜 이렇게 일찍 가냐고 하니 학교 가서 영어 공부를 한단다. 오분만 더 있다 가라고 했다. 길에 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오분 뒤 딸의 바이올린을 내가 들고 함께 집을 나섰다. 딸의 손을 잡고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딸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직은 그저 “아빠”여도 좋은가보다. 다행이다.
두려움 없이 미래를 향해 가는 딸을 본다. 아빠는 해줄 게 없다. 밥이나 먹이고 잘 재우고 함께 가줄 뿐이다. 어린이집 때부터 지금까지, 등하원 길과 등하굣길을 함께 해줬던 것처럼 그렇게 그 여정을 함께 해줄 뿐이다. 금요일이다. 내일이면 아내가 온다. 오기 전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으로 치킨을 먹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