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39
시랑이라는 시인이 있다. 이 시인에겐 <발칙한 섹스-슬픈 쾌락주의자의 정직한 엉덩이>라는 시집이 있다. 언제, 어디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산 뒤 단 숨에 읽은 후 몇 번을 또 읽었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면서도 솔직한 시가 또 있으려나....
이 시집에 <해피 엔딩>이라는 시가 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는데, 그 남자, 발기부전이다. 이 여자, 그 남자의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데 도저히 치료가 안 된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붙잡을 수 없어서 보내주기로 하고, 여자는 집을 나선다.
그렇게 나선 길, 동네에서 난봉꾼으로 유명한 가스통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혹시나 해서 가스통에게 발기부전의 치료법을 묻는다. 가스통은 발기부전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으니 오랄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여자는 알았다고 해준다. 그때 마침 떠난 그녀가 걱정되어 발기부전 남자가 쫓아오다 그 모습을 본다. 그런데 그때 발기부전남의 페니스가 엄청나게 발기한다.
그때서야 안 것이다. 이 남자는 관음증이 있었던 것이다. 즉 자기 애인이나 아내가 다른 남자랑 하는 걸 볼 때 흥분 되는 것. 그 뒤로 쓰리썸, 포썸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
우린 가을에 바쁘다. 다른 글에 썼듯이 추석이 끝났으니 이제 여기저기서 전화가 올 거라는 내 위로를 빙자한 예언, 예언을 흉내 낸 위로는 현실이 됐다. 경주에서도 전화가 왔고 울산의 한 공공기관에서도 전화가 왔다. 우리 팀은, 내가 10월 안에 기획과 카피와 시나리오를 몇 개 마무리해야 하고, 11월 내내 촬영과 편집에 매달려야 한다. 물론 행복한 비명이다.
10월 셋째 주 화요일 오후, 세시가 막 넘어서였다. 우리는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미팅을 끝내고 고객의 일 때문에 일산 해수욕장으로 이동 중이었다. 이동하는 길, 우리가 탄 16번 국도가 막히기 시작했다. 둘 다 이런 상황에 조바심 날 나이는 지났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감독이 젊었을 때 베트남 촬영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매일 술 마시고 베트남 여자랑 데이트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그랬다. “야, 그때는 그래도 젊었다. 체력 좋으셨네.”, “그렇죠. 그때는 힘든 것도 몰랐고.”, 그러면서 감독은 말을 이었다. 젊었을 때 놀만큼 놀았고 할 만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다 할 미련도 없다. 은퇴하면 어디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 거라는, 늘 듣는 소망이었다.
“아, 난 약간 미련이 있는데.”, “뭥교?” 감독이 궁금해했다. “그러니까, 왜 있잖아요. 잘 노는 여자랑 못 놀아본 거랑, 다른 인종이랑 자 본 적 없는 거.”, “아하.”, “거 왜 머리도 염색도 하고 껌 좀 씹는, 난 그런 여자랑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 “야~ 내가 작가님보다는 낫네. 난 그래봤지.”,
그렇게 잠시 과거 이야기를 하는 데 뒤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차였다. 우리 차를 비롯해서 모든 차들이 좌우로 벌려주면서 길을 터줬다. 잠시 후 구급차와 소방차가 등장했다. 이 정도면 대형 사고겠다 싶어 둘은 더 느긋해졌다. 평소라면 삼십 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이렇게 사이렌을 울리는 온갖 자동차들이 출동하는 사고라면 쉽게 길이 열리지는 않을 터였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있다.”, 내가 야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슨 영화에도 나온 대사인데, 두 명, 세 명하고 못해 봤네. 야, 근데 이건 지금은 힘들겠다. 한 명도 버거운데.”, 감독이 웃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건 현장이 나타났다. 도로 왼쪽의 가드레일이 움푹 들어갔다. 오른쪽 가드레일엔 길게 긁힌 자국이 있고 그 자국이 끝난 지점에 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와 있었다. 그렇다. 타이어가 아니라 바퀴 하나가 통째로 뽑혀 나와 있었다는 말이다. 조금 더 가니 하얀색 자동차의 앞뒤로 경찰차 두 대가 서 있었다.
흰색 자동차는 마세라티였다. 오른쪽 바퀴가 없어, 당연하게도 난파되기 직전의 요트처럼 기울어져 있었다. 십 미터쯤 앞에 진회색 신형 아반떼가 화살촉 같은 맵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마세라티의 주인도, 아반떼의 주인도 젊었다. 둘 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사고의 당사자들인 듯. 아반떼는 멀쩡했다. 이 사고는 대체 어떻게 난 것인가를 두고 감독과 이야기하는 중에 쓰리썸, 포썸의 이슈는 사라졌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로 그런 적이 없다. 한번 해보자고 진지하게 의논해 본 사람도 한 명뿐이었다. 그 사람은 여자가 한 명 더 늘어나도, 남자가 한 명 더 늘어나도 딱히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왜냐고? 생각보다 그 추가 투입 될 인원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에는 더 SNS를 사용하지 않았고 설령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생판 모르는 사람과 그런 모험을 하기엔 난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어찌 됐든, 그래서, 네 친구 중에 한 번 구해보라고 했었다. 그 친군 토박이어서 친구도 많았고 한 교회를 오래 다니고 있었으니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사는 사람 한두 명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숨기려고 작정한 사람이 그 친구한테만 자신의 취향을 커밍아웃할 리는 없었고... 그래서 그렇게 됐다.
이제는 이런 주제를 갖고 감독과 농담을 할 정도로 판타지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현실로 이뤄지지 않을, 이뤄져서도 안 될 판타지. 뭔가 엄청난 주문을 외워야만 이뤄지는,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앞서 쓴 시의 남자 주인공 같은 취향은 아니어서 그럭저럭 한 명만 있어도 작동이 된 다는 것. 어째, 약간 안도감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