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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27. 2023

자유형 스트로크를 깨달은 순간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34

아직 멀었다.    

요즘 우리 반의 운동량이 줄었다. 강사가 의도적으로 이리 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이 몇 명 들어와서 고급반에 어울리는 스킬을 가르쳐줘야 할 책임을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 반이 너무 운동량이 많고 속도도 빠르다는 불만과 민원이 들어와서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르고. 실제로 우리 반에 있던 한 남자가 열 시 반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는 우리 반의 스타일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1번과 2번, 그리고 새로 합류한 날씬한 총각과 4번 아줌마는 신경 안 쓰지만. 게다가 최근엔 덩치 좋고 체력 좋은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합류해서 우리의 스타일은 유지되고 있다.      


2번과 날씬한 총각(실제로 젊은 아빠다.)이 운동량이 줄었다는 불만 아닌 불만을 샤워장에서 토로한 다음 날, 그러니까 목요일, 강사는 몸풀기 개인 혼영 두 세트가 끝난 후 한 바퀴 걷고 오라고 했다. 아니 도대체 뭘 시키려고 생전 안 하던 걷기를... 나를 포함해 모든 회원들의 얼굴에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강사는 자유형 100미터, 열 개를 시켰다. 100미터를 끝내고 다 들어온 뒤 다시 출발하는 거지만 전체적인 템포를 감안하면 사실상 1킬로의 수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번엔 2번 아저씨, 2번엔 날씬한 총각, 3번엔 날렵하고 체력 좋은 아줌마, 4번엔 나, 그 뒤로 젊은 엄마와 명랑한 글래머 아줌마와 체력 좋은 아줌마가 이어 섰다. 다들 열심히 돌았지만 1,2,3번을 제외하곤 모든 바퀴를 소화한 사람은 없다. 나도 한두 바퀴 정도는 쉬었다. 체력이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앞에서 속도를 내면, 그 속도에 맞춰 서너 바퀴 돌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학교 운동장을 설렁설렁 열 바퀴, 스무 바퀴를 도는 사람이 전력 질주의 7,80퍼센트 정도의 속도로 몇 바퀴 뛰는 사람에 비해 운동량과 에너지 소비량이 현저히 낮은 것과 같다.     


뭔가 아쉬운 스트로크

체력도 체력이지만 자유형 영법이 뭔가 석연치 않았다. 체력이 떨어지면 폼이 무너진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체력이 남아 있을 때도 뭔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 느낌이다. 체력이 있을 때라면 팔의 힘으로 나갈 수 있다. 체력이 떨어졌을 때 앞으로 나가야 제대로 된 폼이다.      


여전히 강사가 주문하는 내용을 정확히 소화해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을 잡은 뒤, 손과 팔을 몸에 최대한 밀착시켜 물을 밀어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난 작은 풀에서 한 팔 자유형, 특히 왼팔로 하는 자유형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어제와 비슷한 폼으로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살짝 다른 느낌이 왔다. 강사가 말하고 보여준 폼이 물속에서 재현됐다. 가슴의 바깥쪽이 쥐어짜지는 느낌으로 팔을 몸에 밀착해서 물을 뒤로 밀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 바로 이거구나. 순간, 얼마 전 봤던 영상이 떠올랐다. 미국의 한 여성 수영 선수의 자유형을 물속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그 선수의 팔이 스트로크를 하는 순간, 물개의 팔처럼 밀착한 손이 물을 뒤로 밀어내는 모습이 떠올랐다.  

    

양팔을 교대로 한 팔 자유형을 연습했다. 이거였다. 강사가 말한 자유형 스트로크의 자세가. 물을 잡는 것까지는 전과 동일하다. 그 후가 다르다. 물을 잡는 순간 롤링이 시작되면서 물을 끌어당겨 몸 앞으로 보낸다. 이때, 밀어내는 물과 몸통의 간격이 벌어져 있으면 에너지는 낭비된다. 최대한 팔을 몸에 밀착시켜 물을 밀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팔의 상박, 그러니까 소위 알통이라 불리는 부분을 가슴에 거의 붙여줘야 한다. 그 상태에서 팔꿈치 아랫부분, 하박 부분과 손을 이용해 물을 뒤로 밀어준다. 이것이 바로 강사가 말한 완벽한 자유형 스트로크의 자세다. 이 자세를 응용하면 완벽한 접영 스트로크도 완성된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놓쳤던 것은 팔의 밀착과 그 밀착의 타이밍이었다. 몇 개월 동안 강사의 코치와 그 뒤에 이어 한 팔 자유형을 하는 동안에도 알지 못했던 팔의 위치와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틀린 줄 몰랐다. 틀리게 하면서도 강사가 시키는 대로, 말하는 대로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옆가슴을 쥐어짜듯이 밀착해 나오라는 말을 건성으로 들었던 걸까? 아니다. 분명 주의해서 들었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 강습 시간이 끝난 뒤에도 작은 풀에서 반복해서 연습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음의 순간이 번개처럼 찾아왔다.     


그름에서 바름으로

우리는 살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고치라는 지적도 많이 받고 교정도 받는다. 자는 자세, 먹는 자세, 걷는 자세, 뛰는 자세와 같은 신체적이고 물리적이며 가시적인 자세는 물론이고 일을 대하는 자세, 사람을 대하는 자세, 연인을 대하는 자세, 가족을 대하는 자세와 같은 심리적이며 삶의 태도 전반을 형성하고 구축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이 대부분의 자세의 전형, 즉 올바른 자세가 뭔지 우리는 안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안다. 그런데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못 하거나 안 할 뿐이다. 첫 번째 이유는 틀린 자세가 편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배운 것은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는 법이었다. 그 자세는 어른의 입장에서 봐도 어렵다. 책상과 배꼽 사이에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의 간격을 유지한 채 앉고 허리는 반듯하게 펴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이 수업 시간 내내 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선생님들이 이 자세를 가르치는 건, 그 자세의 바름을 알고 있어야 자신의 그름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며, 그 그름에서 바름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돌아옴, 그 회귀는 어렵다. 그름에서 바름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건, 특히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쉽지 않은 건 그름이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강사가 몇 개월 동안 열변을 통하며 가르치고 몸을 던져 시범을 보여도 대부분의 고급반 사람들의 스트로크 자세가 크게 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기대의 부재(不在)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말이다. 기대가 없으면 그름에서 바름으로 나가는 여정은 시작되지 않는다. 그 여정의 끝에서 만난 나를 상상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강사의 가르침 또한 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에서든 누군가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그 가르침을 떠올리며 그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실현하고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아직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사람이다. 나이와 상관없다. 경력도 상관없다. 과거의 나를 싫어했든 좋아했든 상관없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을 바꾸려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이후 맞이한 금요일, 터득한 스트로크를 실현했다. 물의 저항은 줄이면서 더 날렵하고 우아하게 자유형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1월엔 쉬는 날이 없다. 꽉 채워 수영장을 갈 수 있는 달이다. 이 달에 열심인 사람이 다가오는 새해에 달라진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에도 묵묵히 찬바람을 가르며 수영장에 나오는 사람이 실력이 만개한 봄날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기대를 접지만 않으면 언젠간 그 가르침을 깨달아 실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갈고 닦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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