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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04. 2023

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 - 사사키 아타루

동해선에서 읽은 책 68

쉼표

-거의 10월 내내, 서동욱의 체계적이며 구조적이며 조직적인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나에 대해, 특히 난 왜 마흔을 넘긴 후 쉰이 넘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곧, 어떤 이에겐 처연한 연민을, 어떤 이에겐 차가운 불 같은 혐오를 느끼는지, 그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뒤, 집어든 책이다. 뭔가 캐주얼하고 가벼우며 내지르는 고함 같은 책을 읽고 싶었다. 사사키 씨는 그런 면에서 실망시키지 않는다. 특히 그의 대담집과 각종 기고문을 모은 책이나 이런 아날렉타 시리즈는...


원리주의, 텍스트와 콘셉트

-그는 글과 글쓰기에 대해 집요하게 말한다. 말과 글, 글과 말. 그것은 기록되고 보존되어서 텍스트가 된다. 그가 하는 일은 이 과거의, 고전의 텍스트를 촘촘하게 읽어내서 그 안에서 콘셉트를 찾아내어 새로운, 오늘을 위한 콘셉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들뢰즈가 말했던 것처럼..."철학은 개념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의 공부가 텍스트의 해석에 머물 때, 그 텍스트에 산재되어 있는 개념의 수집에 머물 때 우리의 삶도 거기에서 멈춘다. 그 독해 뒤에 덧붙임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무한한 글쓰기와 말하기가 있어야 한다. 그 무한 반복의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콘셉트가 잉태된다.


-그래서, 저자도 말하듯이, 원리주의는 남성적이다. 하나의 텍스트에, 하나의 신념에, 하나의 신에 사로잡힌 삶은 남성적이다. 아무것도 잉태하지 못하며, 새로운 무엇도 출산하지 못하는... 불임의 존재들...


-결국 엄밀히 말하면 햄버거를 먹는 사람의 면전에서 그를 욕하는 채식주의자와 동물활동가도, "000의 책을 읽어봤어요?"라는 말로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치기 시작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저 먼 땅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닮았다. 자신의 앎과 신념에서 새로운 앎으로, 삶으로, 시대로 , 그리고 낯선 타자로 도약하지 못하는 불임의 원리주의...


그들이 지지한 이유

-중동에서 터진 전쟁 - 난 이 단어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하고 있다. 저 사태가 전쟁이라면 국제법에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전쟁에는 지켜야 될 국제적인 룰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면 가자는 나라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선을 넘은 것은 침략이어야 하고, 그 침략은 공식적인 "선전포고"없는 기습으로 봐야 한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처럼.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현 행위는 응전이 된다. 두 나라 사이의 전쟁에 삼자가 할 일은 없다. 결국 전쟁은 폭력적인 정치고, 정치는 폭력이 없는 전쟁이므로.


반면 이 사태의 단초가 된 사건을 테러로 규정한다면, 가자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이 넘은 선은 행정적이고 국내법적인 위반이 되므로 이스라엘의 행위는 사법권의 행사가 된다. 이 또한 제삼자가 나설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서방국가들이, 그리고 기독교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람들도 절대 이해 못 하는 지점이 하나 있는데, 유대교에는 신약이 없다. 즉 사랑의 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이 구약의 율법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리라 보면, 난 이 전쟁이 결국엔 완전한 몰아냄,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내어 그들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라 다. 두바이 고급 호텔에 숨은 지도부 한 명까지.


참고로, 출애굽기의 마지막 기적은 애굽 사람의 장자를 몰살하는 것이었다. 잠시 상상해 보자. 만약 그 몰살이 신이 한 것이 아니라, 떠나기 전 유대인들의 암살 부대가 한 밤을 정하여 표시되지 않은 집마다 다니며 죽인 것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 사건을 후에 신의 기적으로 바꿔 묘사한 것이라면?.... 유대인들은 그런 민족이다. 뮌헨 올림픽 사건 때도 그랬고...  - 서울의 몇몇 대학의 애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대자보를 걸고, 성명을 냈다.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선 이렇다 저렇다 말 못 하는 애들이 어쩐 일인가 싶었겠지만... 걔네들이 할만한 일이다. 이 이슈에서 얼핏 약자로 보이는  이를 편드는 행위는 깊은 사유가 필요치 않다. 논리적인 사고도 필요치 않다. 근현대사의 흐름 정도를 검색으로 파악한 뒤,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서두에 나열하기만 하면 된다.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명명백백해 보이는 역사적 사실에 자신의 생각을 기댄다. 얄팍하다. 어지간해서는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이런 행동을 부른다.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 다른 이의 비판을 염두에 둔 대자보라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요즘의 대학이다.


완성됐다는 착각

-원리주의의 텍스트는 혀 있다. 첨언도, 첨삭도 없다. 당연히 텍스트의 미래 또한 없다. 원리주의가 과거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에 붙잡혀 있는 이유고.


-재미있는 건 요즘 만나는 젊은 친구들 중에 이런 원리주의와 닮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젊은데 자신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어제 아내에게 들은 얘기도 그런 얘기였다. 다른 병원 정신보건 상담실에 실습 나온 "학생"이 자신의 실수와 오류를 지적당하면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의 당위성과 합리성을 길게 설명한다고 한다. 아내의 실습생도 비슷했다고... 아내는 그걸 "지들만 안다고 생각하고, 지들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들이 아는 것이 곧 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표현했다. 이 또한 원리주의다.


-그런데 사실, 이런 현상은 모두 겪는다. 아이를 키워보니 보통 열 살 이전까지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아직 미숙하고 어리고 연약한데 자신이 다 잘할 수 있고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최소한 자기가 공부했고 익숙한 분야에 대해선 실수를 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유아(幼兒)적이며 유아(唯我)적이다.


-그런 아이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공부를 하면 유연해진다. 최소한 내 딸은 그렇다. 자기가 아는 걸 말하고, 아빠가 아는 걸 듣는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사사키 아타루는 르장드르를 안다고 착각하며 이런저런 글과 말을 흘리고 다니는 어느 학자에게 쏘아붙인다. 일본에 번역된 것이나 다 읽었는지 모르지만, 설령 다 읽었더라도 그것이 르장드르의 전부가 아니니 제발 입 닥치라고... 무서운 말이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사사키 아타루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스스로 공부의 과제를 주고 집요하게 공부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필요 - 대중 강연이나 언론 인터뷰, 칼럼 쓰기 - 하지 않으면 TV도 보지 않고 인터넷도 하지 않는다. 오직 읽고 쓰고 생각한다. 무서운 사람이다.


새로운 형태의 보수화

-결국, 역설적이게도, 젊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보수성/보수적인 뭔가를 느끼게 된다. 그들은 분명 감각적이고 참신한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 사고에 새것이 들어갈 여백이 없다. 여백 없는, 아니 그렇다고 착각한 채 남은 삶을 살아갈 젊은 사람을 만나면 걱정과 공포가 동시에 생긴다.


-반려견과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싶다며 어느 단체에서 우리를 불렀다. 갔더니 간단한 제안서를 보여준다. 감독이 그들과 농담을 하며 긴장을 풀어주는 동안 재빨리 두 장 짜리 문서를 최대한 꼼꼼히 읽었다. 영상의 개수는 열 개 남짓이었지만 유형은 크게 세 개였다. 그러나 문서의 앞 뒤를 봐도 이 영상을 왜 만들고, 누구를 위해 만드는지에 대한 서술이 없다. 영상의 종류별로 그 나름의 용처도 없다. 그래서인지 러닝타임의 설정도 애매하다. 케이블에도, 스팟에도, 공중파에도 내보내기 애매한...


-종종 겪는 일이다. 현상에서 의미로 나아가지 못하고, 의미를 현상으로 바꾸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담당자를 만나곤 한다. 현상과 이미지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을 어려워하고 의미와 생각을 사물과 말로 번역해 내는 것에 곤란을 겪는 담당자들을 만나곤 한다.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이 환영받는 것이겠지....


-정책이나 서류는 말과 글이다. 그 말과 글에 집중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과 공동체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못 볼 때가 있다. 사사키 아타루가 반복하여 말하듯이 말과 글, 텍스트에서 머무르면 우리의 인생 또한 멈춰버린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동어반복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봐야 할지도... 사사키 아타루는 결국, 묵묵히, 집요하게 읽고 쓰라고 한다. 새로운 개념을 생산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그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말하고...


사족...

"세계는 상스러우며 범속하다.", 레비나스, 서동욱의 <차이와 타자>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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