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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14. 2023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동해선에서 읽은 책 69

일 년 내내 이어진 광고

-저번 달 말, 처남이 물었다. "이번 달엔 뭐 읽으실래요?", 처남 네 회사에선 도서구입비를 지원해 주는 데, 처남은 책을 잘 모르니 내가 읽고 싶은 걸 9월부터 말해주고 있다. 이번이 두 번째....


-일 년 내내 눈에 띄었던 책 광고가 생각나 두 권을 말해줬다. 하나는 <모든 삶은 흐른다.>, 다른 하나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요즘 알라딘 중고서점에 엄청나게 풀리는 걸 보면 소장 가치는 없는 모양이다만... 뭐 그런대로 팔렸다면 나름 읽을만할 테고 이제 막 독서의 길에 들어선 처남에게 적절하겠다 싶어 골랐다.


어차피 그 나이 되면 깨닫는 거 아닌가?

북유럽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똑똑한 남자가 있다.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몰라서 아버지 조언대로 경제학을 전공해서 잘 나가는 글로벌 회사에 입사하여 이십 대 중반까지 탄탄대로를 달린다. 그러다 불쑥,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로 살아도 되는 건가? 이렇게 잘 나가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야... 이런 느낌과 두려움에 잠을 설치다 과거 우연히 본 잡지에서 읽은 동남아시아의 한 사원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기 가서 좀 마음의 평안을 찾고 와야겠다....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중으로 산 세월이.


마흔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와 현실의 삶을 산다. 그렇다. 계속 승려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자, 이쯤에서 끝.'하고 그만두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돈 많은 서양 청년의 복에 겨운 일탈-방황-성숙-귀향-구원자/구도자/구루의 삶-축복 속의 죽음.... 이런 흔해빠진 서양의 영웅담, 영화 스토리다.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현실에서 버티며 살다가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고 늙고 손주도 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삶의 이치를 삶과 동떨어져 살면서 깨달은 거 아닌가 싶다.


연민

-그래도 연민이 가는 건 좀 살만할 때, 그러니까 맘에 드는 여자도 만나고, 태국에서 보낸 세월과 수양의 깊이를 밑천 삼아 고향 땅에서 명상이니 위안이니 알아차림이니 내려놓음이니 같은 주제로 강연도 하고 클래스도 열어서 돈 좀 벌면서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하는데 병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오십 대... 한참 살 날도 많고 이제 좀 명성도 쌓아지고 돈도 좀 벌리는데... 안타깝다.


-깨달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공평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건 죽음이다. 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면 우린 우울하거나 겸허해지거나 아니면 한 번뿐인 인생, 마, 화끈하게 살자... 이런 식이 된다.  아마 대부분은 겸허해질 것이다. 또 나와 같이 죽음을 필할 수 없는 수많은 타자에게 연민을 느낄 테고... 더 나아가 자식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삶을 이어나갈 자식을 생각하며 오늘 내 옆에서 쫑알 대는 자식에게 더 깊은 사랑과 미련을 느낄 테고...


돈이 많다면...

-그래서 결국, 돈이 남아돈다면 이 책을 사서 읽어봐도 된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내어, 결국엔 죽음의 순간까지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서점에 가서 아무 불교 에세이를 들춰도 나올법한 내용들이다. 죽음에 대해 잠시만 생각해 보면 깨달을 것들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이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배우자와 자식의 잠자는 숨소리를 들으며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읽을 필요 없는 책이다. 삶에 대해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돈으로 맥주 한 잔을 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사족...

 추천사나 찬사가 저자나 역자의 서문보다 앞에, 그것도 제법 길고 많이 실린 책들은 의심스럽다. 책이 얼마나 형편없으면, 오죽했으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추천사는 다섯 개였다. 참고로 <모든 삶은 흐른다.>의 추천사는 열다섯 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들의 추천이 열개 남짓, 나머지는 역시 유명한 언론사의 것이다. 이거.. 읽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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