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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09. 2023

고수는 흔들리지 않는다.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37

힘들게 발견한 폼

강사에게 자유형 스트로크가 좋아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번 잡은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강습 시간 전 후 몇 분, 연습 풀에서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자유형 스트로크는 궁극적으로 물을 뒤로 보내기에 최적화된 동작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영의 원리의 근본은 앞에 물을 뒤로 보내는 힘의 반작용으로 내 몸을 앞으로 보내는 것이다. 카누나 조정이 노를 저어 앞으로 가는 것처럼 말이다. 수영에선 팔이 노의 역할을 한다. 이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물레방아나 포클레인 삽날처럼 밑에 있는 물을 위로 퍼 올리게 된다. 물론 그래도 앞으로 갈 수는 있지만 운동 에너지는 손실된다. 팔의 하박이 정확하게 물을 뒤로 보내야 한다.     


오늘 드릴 시간에도 한 팔 자유형이 들어 있었다. 뻗은 팔을 정확하게 구부려 물을 잡은 후 그대로 뒤로 밀어내는 동작을 해야 했다. 강사가 주문한 내용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잘 안 되어서 강사에게 붙잡혀 물속에서 자세 교정을 받았다. 자유형의 효율성은 이 팔 동작이 좌우하기에 강사 입장에선 대충 넘어가기 힘든 모양이다.      


완벽한 폼의 유지

강습이 끝나고 나와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 젊은 엄마가 잠시 대화를 나눴다. 목요일은 다음 시간에 아무런 강습이 없어서 십분 이상 더 연습을 하고 가곤 하기 때문이다. 난 내가 감을 잡은 캐치의 느낌과 방법을 함께 나눴다. 그리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우리가 앞에 사람들을 잡으려면 디테일에 신경 써야 돼.”, “맞아, 맞아. 작은 거라도 바꿔야지.”,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가 맞장구를 쳤다. 젊은 엄마는 웃기만 했다. 이후 잠시 자유형 캐치와 풀 동작, 그때 느껴지는 가슴 바깥쪽이 쪼이는 느낌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며칠 전 2번 아저씨와 샤워장에서 폼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고, 마, 힘들면 다 까먹어뿌러. 도로 돌아가는 기라.”, “그러게요. 정신 줄 놓으면 그냥 옛날 폼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삐뚤빼뚤 가고 제 맘대로 가고 있다는 걸 나도 알겠더라니까요.”, “그러니까. 내 말이. 힘들 때도, 숨찰 때도 강사가 갈 켜 준 대로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돼.”, 2번 아저씨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말했다.      


폼의 유지가 클래스를 만든다.

그렇다. 완벽한 폼을 익히는 건 배움과 연습으로 가능하다. 관건은 그 폼을 유지하는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말이다. 결심이 일상이 되는 건 만큼 완벽이 일상적으로 구현되는 건 어렵다. 이를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반복이다. 또,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원히트 원더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가수 인생에서 딱 한 곡의 대박 히트곡을 남기고 사라진 가수를 말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인생이든 수영이든 한 번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준 걸로 남은 세월을 버틸 수는 없다. 오늘 자유형을 멋지게 했다면 내일도, 그다음 날도 멋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오늘의 승진이 내일의 대표의 후회가 되지 않으려면 그 승진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야 한다.     


오늘의 퍼포먼스를 내일도 재현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그 완벽한 퍼포먼스의 메커니즘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공부든, 일이든, 글쓰기든 마찬가지다. 한두 번의 우수한 성적과 잘 써진 글에 만족하여 안주하면 우리의 실력은 거기서 멈춘다. 그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이 뭐였는지 돌아보고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아니 최소한 그 결과의 반복된 획득을 위해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좋은 수영 영상을 찾아서 보고,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오늘을 유지하고 내일 나아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힘들 때 웃는 것이 일류가 아니라 힘들 때도 같은 폼을 유지하고 심지어 더 우아한 폼을 보여주는 것이 일류다.


힘들면 고개가 들린다.

접영 세트가 끝나고 잠시 쉬는 데 두 레인 건너에 있는 중급반이 자유형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니 누군가 숨을 쉴 때마다 과도하게 머리를 들었다. 누군가 봤더니 귀여운 누님이다. 강습 시간이 끝나고 그 레인을 보니 누님은 평영 연습을 하고 있었다. 두 레인을 건너갔다. 누님은 이쪽 끝을 찍고 저쪽으로 한참 가고 있었다. 이쪽 끝에는 누님과 친한 젊은 아가씨가 서 있었다. “아니, 우리 누님, 지금 평영이 문제가 아닌데. 그걸 얘기해 주려고 왔더니만 도망가시네.”,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아니, 숨 쉴 때 고개를 너무 드셔서 왜 그러시는지 궁금해서 그러지.”, 나도 오지랖이다.      


이후 내 레인에서 마무리 운동을 한 후 샤워장으로 가는 길에 그 레인에 들렀다. 누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누가 나보고 평영이 문제가 아니다, 자유형이 더 큰 문제다, 그랬다는 거야. 그래서 누구냐고 물으니까 자기를 얘기하더라고.”, “아니, 우리 반이 잠깐 쉬는 데 하필이면 누님 자유형 하는 게 딱 눈에 들어왔거든요. 아니 그런데 누님이 고개를 너무 드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죠.”, “그래? 그럼 최 선생 한 번 봐죠.” 누님은 자유형을 시작했다.


롤링도 잘 안 되고, 팔도 쭉 뻗어주지 못했지만 고개는 아까처럼 많이 들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은 괜찮으시구먼. 아까는 힘드셔서 그러셨네.”, “그랬나 봐.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그렇죠. 우리 반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만, 힘들면 자기도 모르게 더 숨을 많이 쉬어 보겠다고 고개를 들죠. 그런데 들면 들수록 저항이 많이 생기니 힘이 더 들어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아유~그게 되면 좋게?”, 누님은 나를 흘겨보며 웃으셨다.


그래, 힘들어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인생이든 수영이든 그렇다. 속된 말로 인생에 파도가 몰려올 때 살아왔던 데로, 경험하고 배운 데로 담담하게 그 파도를 맞이하는 건 쉽지 않다. 멀어지는 앞 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조바심을 내지 않고 지금의 완벽한 폼을 유지하면서 비트를 당겨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래야 고수다. 그 유명한 축구계의 격언처럼 폼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인생에서도, 수영에서도. 영원한 클래스를 맞이할 그날이 올까? 알 수 없다. 그저 반복해서 연습할 뿐. 지금의 나를 단련할 뿐. 단단해지고 견고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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