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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30. 2023

사랑의 유배지에서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3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사랑은 유배다. 자가 격리다. 둘만의 사건이다. 서로의 연인을 비교하며 자랑하는 것도, 그로 인해 자존심이 상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부질없다. 연인은 당신의 트로피가 아니다. 물론 연인은 오직 당신만의 사람이다. 그러나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 사랑의 갈급함과 갈증과 채워지지 않음은 여기서 출발한다. 내 사람인데 내 것은 아니다. 사랑이 성숙해지면 이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내 것이 아닌 내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뭘 하든 난 내 사람으로 인해, 또 내가 그 사람만의 사람이라는 사실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우린 불안하다. 결국 잠시만이라도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시간을 독점하고 싶다. 둘만의 격리를 꿈꾼다.      


다른 글에도 썼듯이 데이트는 의례적 행위다. <대부>에서 나온 시칠리아의 데이트처럼 전시적 행위다. 다들 비슷한 시간에 만나 비슷한 영화를 보고 비슷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다. 둘만 남는 시간을 맞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거야 상대적인 것이니 절대적으로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순 없다. 과거에 오래 걸렸고 요즘엔 만나자마자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같지만 이 또한 착각이다. 라면 먹고 갈래 했던 시절에도, 고양이 보고 갈래나 넷플릭스 보고 갈래 하는 요즘에도 이 둘만의 격리를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는 오직 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내 아버지 세대는 버스가 끊기거나 배가 끊기는 사고가 격리를 유발했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몰라서 누가 누구의 음모에 당한 것인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찌 됐든 이 끊김은 외지와의 격리, 그 자체였다. 지금, 우리가 알만한 대부분의 섬들은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이 격리를 이해 못 할 수도 있지만 예전엔 섬은 섬이었고 산은 산이었고 고개는 고개였다. 섬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고 산은 두 발로 올라가야 했으며 한계령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천천히 올라 넘어야 했다. 우리는 외롭게 있어야 할 것을, 힘겹게 애써 알아야 할 것들을 없애버렸는지도 모른다. 얘기가 살짝 벗어났다. 다시 돌아가자.     


날씨는 어찌할 수 없는 잠금장치다. 강원도의 폭설도, 북부 지방의 폭설도, 그로 인해 길이 끊기는 것도 그런 원인 중 하나였다. 터널이 뚫리기 전 산 너머로 가는 법은 산을 끼고도는 길을 따라 천천히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의 주인은 당연히 자연이었다. 사람이 그 길을 만들었지만 그 길을 허락하는 건 자연이었다. 때로는 안개가, 때로는 빗물이, 때로는 폭설이 속도를 지정해 줬다. 심지어 오지 말라고도 했다. 넘을 수 없다고도 했다. 고개를 돌아 더 긴 시간을 가거나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오르는 도중 폭설을 만났다면, 오래전 뉴스에 나왔던 것처럼, 차를 버리고 걷는 거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넘은 뒤에 그 고개에 눈이 내리면 고개에, 그 고개 너머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배가 뜰 수 없는 풍랑도 마찬가지다. 눈이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듯 풍랑 또한 언제 잦아들지 알 수 없다. 일 때문에 만난 선장과 어부들은 날씨가 상관이었다. 날씨가 나가라면 나가고 쉬라면 쉬었다. 그건 섭리였다. 그러니 초조해할 필요도,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 내가 못 나가면 다 못 나간다. 대형 선박도 예외는 없다. 조선소에서 아파트보다 더 큰 컨테이너선을 만들어 놓고 그 진수식의 날짜를 고르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는지.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선주들은 배가 진수되는 날, 모든 조건이 좋길 바라기에 중소 조선소일수록 날씨를 동업자로 여긴다. 아무리 성대하게 준비한 - 심지어 동남아시아의 선주들은 모국에서 승려를 모셔오기도 한다. - 진수식이라도 날씨가 나쁘면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조선소가 남해안의 섬들 안, 만 깊숙이, 파도와 바람이 닿지 못하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날씨의 변덕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넘어갈 수 없는 폭설과 끊겨버린 뱃길 앞에서 연인은 아쉬운 척(?) 돌아선다. 기꺼운 고립이다. 산중의 산장이든, 섬 안의 민박이든. 그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그 밤의 전과 후는 다르다. 사람도, 역사도, 바깥세상도.     


사랑이다. 격리다. 유배다. 단절이다. 폭설이 와서 길이 끊기면 살 길을 찾아야 하는데 너와 더 오래 있어서 좋단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주인공 소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을 아빠와 그린란드의 얼어버린 바다에 갇혀 있을 때라고 했다. 온전히 아빠와 둘만 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과 공간이 그때, 그 배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사랑하는 아빠와 함께였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기에.   


굶어 죽어도 너랑 죽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벌어 와도, 삼시세끼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먹어도 너랑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네가 얼마를 벌어오든 난 상관없다. 널 만나기 전까지 내가 무슨 꿈을 꾸었든 상관없다. 지금부터 내 꿈은 너다. 너랑 사는 거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너랑 사는 것이 세상에 욕먹을 일이고, 부모 형제와 의절할 일이라도 내 기꺼이 그걸 감수하겠다. 네가 나랑 살 수만 있다면, 내가 너랑 살 수만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문정희 시인의 시는 노골적이다. 두려움이 없다. 앞뒤 재지도 않는다. 사랑에 몸을 던지고 운명에 머리를 들이박는다. 어지간한 남성들이 술기운을 빌려 겨우 하는 말을 맨 정신에 똑 부러지게 말하는 느낌이다.


“난 네가 좋다. 사랑한다.”


앉자마자 시킨 순대 전골은 나오려면 멀었다. 이제 겨우 밑반찬이 막 깔렸을 뿐이다. 그 밑반찬을 안주 삼아, 난 이제 막 한잔을 마셨고 그녀의 잔은 비워지지도 않았다. 소주병은 모가지 위를 겨우 비워냈을 뿐이어서 당연히 아직 취기는커녕 식당 밖에서 끌고 온 추위도 다 가시지 않았는데, 내 앞에 앉은 여자는 미처 소주 한 잔 비울 새도 없이, 냅다 고백을 던진 것이다.      


고백? 받아줘야지. 아니, 받아야지. 아니, 아니 고맙지. 일단 밥을 먹이자. 소주는 한 병이면 된다.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와 같은 사족은 필요 없다. 그녀는 자기 앞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애꿎은 소주잔만 만지작거리는 이 서툴고 거친 사내가 좋다. 그뿐이다. 문정희 시인의 시는 내게 그런 느낌이다.     


판본을 봤다. 이 시는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이다.>라는 시집에 실렸다. 그 위의 부제는 이렇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77편의 시>. 많이도 실었다. 시인은 후기를 통해 이리 말한다. “이 시집은 나의 사랑 시집 <내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 주세요.>에다 최근에 사랑 시편들을 합하여 새로 엮은 시집이다.”라고. 사랑에 관한 시를 쓰고 모아 시집을 냈는데 그 뒤에도 불가항력적으로 사랑에 관한 시가 쓰여 그 시를 보내야 할 곳으로 보냈다는 말이다. 사랑이 어디 “여기까지”하고 만족하는 놈이던가. 사랑에 관한 시 또한 그랬을 것이다. 1998년 12월 15일 초판 1쇄를 찍은 것을 12월 20일에 내놓았다. 뒤에 붙은 바코드 밑에 날짜를 보니 난 이 시집을 2000년 3월 24일에 샀다. 어디서 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행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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