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50
우리 집에서 투머치 토커와 이슈 제공, 셀럽의 역할을 하고 있는 딸이 없는 관계로 이번 겨울 저녁 시간, 집에서의 사람 소리는 아내와 나의 티키타카로 채워지고 있다. 다른 집보다 일찍 저녁을 먹고 야식은 안 먹기에 평상시 우리 부부의 대화는 여덟 시 뉴스 시간 내내 이어진 후 각자의 시간을 갖은 뒤 아내가 피곤할 때 함께 잠이 든다. 물론 아내가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고자 하면 그 시간의 미스매칭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여하간 며칠 전에도 저녁을 먹은 후 함께 뉴스를 본 뒤, 아내는 잠시 드라마를 보고 난 서재에서 책을 읽었다. 슬쩍 시계를 보니 아내가 씻고 하루를 정리하고 잠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슬며시 나와 거실에 있는 아내를 보니 전혀 씻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또 씻기 귀찮지. 어여, 씻으셔, 난 그동안 책을 더 읽을 게.”, 내 말을 들은 아내가 약간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당신 그러다 비문증 온다.”, “응? 비문증? 그게 뭔데?”
아내가 설명을 이어갔다. “나랑 발레 같이하는 사람 중에, 거 왜 열심히 책 읽는 사람 있잖아.”, “아, 그 독서 모임에 열심이라는 분?”, “응. 그 선생님, 요즘 비문증에 걸렸다더라고. 눈에 뭐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나?”, “그래, 난 또 처음 들어보네. 난 그런 거 안 걸리니 걱정 마셔.”, “응? 왜?”, “맨 날 책만 보는 사람이나 그런 병에 걸리는 거지. 나처럼 가끔 야한 생각도 하고, 야한 것도 보고, 먼 산도 보고, 나무도 보고, 움직이는 마누라도 보고 그래야지. 그런 걸 안 하고 책만 보니까 눈이 지치는 거야.”,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씻으러 갔다.
딸의 등하교 길을 함께 할 때도, 수영장에 갈 때도, 저녁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갈 때도 걷는다. 걸으면서 멀리 있는 황령산이나 박물관 옆에 성벽처럼 줄지어 있는 메타세쿼이아 행렬을 보곤 한다. 조각 공원의 가로수와 그 가로수를 들고나는 새들을 보며 계절의 변화도 느낀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는 내겐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다양한 걸 보면 당연히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시야의 원근을 통해 눈 근육도 튼튼해지고 당연히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이건 비단 육체적인 시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애나 어른이나 스마트 폰에 취해 있는 요즘 책에 미쳐 있는 건 신선하다. 그런가? 그런데 그것도 도에 지나치면 문제가 아닐까? 책을 덮어야 보이는 세상이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세상을 이항대립으로 구분한다. 스마트폰 보는 건 나쁘고, 책을 보는 건 좋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이렇게 세상만사를 이항대립으로 보고 판단하면 삶이 정형화되고 전형적인 사람이 된다. 그야말로 Stereo type화 되는 것이다. 내면도 외면도.
이런 이항대립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융합의 차원, 그런 주체를 받아들이는 건, 지바 마사야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임시적인 나, 가고정 상태라고 여기는 것이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려오면 준안정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고 말이다. 반대로 고정된 관념과 형상을 받아들이는 건 그야말로 전형적인 자세로 정형화된 삶을 사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이건 말처럼 쉽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이 <인생학교-섹스>에서 농담처럼 말했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섹스리스 커플이 늘어나는 건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새로 살 냉장고 색깔을 놓고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이 침대에선 돌변하여 짐승처럼 서로를 탐하는 것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 있나? 낮에는 평범한 엄마이자 주부인 여자가 밤에도 그럴 필요는 없다. 직장에선 유능하고 누가 봐도 효자인 아들이며 자식에겐 본받고 싶은 아버지가 침대에서도 모범적이고 정숙한 남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세상이 보고 싶은 데로 우리를 만들어 살다가 그 만든 내가 진짜 나라고, 고정되어 버린 나라고 착각하고 산다. 그 착각으로 인해 새로운 나를 향한, 새로운 나에 대한 수용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다.
화요일 점심은 어탕 국수를 먹었다. 감독은 태화강 건너편 동네에 사는, 인테리어와 전기 쪽 일을 하는 감독의 친구-나도 잘 안다-에게 전화를 해서 “야, 니 밥 묵었나? 그래? 어탕 국수 어떻노? 알았다~. 슬슬 걸어 내려오래이.”하고 말을 한 뒤 태화강국가정원의 초입에 있는 강변의 식당가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거의 다 왔을 무렵, 주섬주섬 전화기를 꺼내 다시 친구와 통화를 했다. “어데고? 알았다. 내 태우러 갈게 천천히 내려온나.”, 그렇게 전화를 끊고 왔던 강변길을 거슬러 올라가 친구를 태웠다.
어탕 국수를 앞에 두고 야한 농담과 정치 이야기를 번갈아 하다가 감독이 여기에 온 이유를 얘기했다. “아니, 이한아. 내가 작가님하고, 거 왜 사무실 근처에 추어탕 집 있다 아이가.”, “추어탕? 밀양추어탕?”, “그래. 거기. 점심을 묵을라고 들어갔는데, 그 집 아들내미가 우릴 딱~ 보더니, 몇 명이세요. 두 분이세요? 두 분이면 저쪽으로 앉으세요. 이러는 거라.”, “그게 뭐?”, “아니, 자리도 텅텅 비었는데 굳이 좁은 테이블로 안내한다 아이가. 내가 뭐 밥 얻어먹으러 왔나? 마, 승질이 확~ 나는기라. 그래 작가님 보고 나가자고 해서 여 왔다 아이가.”, 감독의 친구, 최 씨 - 감독은 나와 친구를 퉁 쳐서 투 최 씨라고 종종 부른다 - 가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니 갱년기 아이가? 뭐, 그런 걸로 화를 내 노. 요즘 아~들 싸가지 없다.” 하며, 달램 반 놀림 반의 멘트를 이었다.
내가 그 멘트를 받았다. “아니. 요즘 감독님이 화가 많아.”, 그러자 감독이 툴툴 거리며 말을 받았다. “아니 요즘 편집도 오래 해서 허리도 슬슬 아픈데.”,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속에 화가 많은 것도, 허리가 아픈 것도... 이게 다 할 걸 안 해서 그런 거라니까. 그건 약이 없어. 거 이재명 대표 테러한 양반이나 그 양반 태워다 준 사람들 나이를 봐요. 환갑이 넘었고 일흔이 넘었다니까. 무슨 테러리스트가 그렇게 늙었어. 그 나이 되면 다들 좀 가라앉히고 살아야지. 그게 다 젊었을 때 할 거 안 하고 살아서 화가 남아서 그런 거라니까. 그러니까 감독님도 맨 날 편집하면서 밤새지 말고 할 거 하면서 살아요.”
모범생과 우등생이 Nerd나 Geek의 전형이던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니 사로잡힐 필요 없다. 낮의 나도 나고 밤에 나도 나다. 그 나가 다르면 다를수록 정신 건강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섹시한 철학자, 근육질의 물리학자, 바람둥이 독서광은 어떨까? 오늘 밤, 연인이나 배우자가 평소와 다른 걸 요구한다고 놀라지 마라. 또 내가 그걸 요구하는 걸 망설이지도 말고. 사전에 합의만 된다면, 뭐 라텍스 옷을 입고하든, 가죽 옷을 입고하든 뭔 상관인가. 둘만 좋으면 됐지. 다음 날 아침에 아가일 체크 카디건에 헤링본 트위드 재킷을 입고 얌전히 출근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