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연장의 꿈과 어르신의 자유로운 낮술과의 관계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51

by 최영훈

기복의 당연함

잘 될 때도 있고 영 시원치 않을 때도 있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매일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면 안 될 때도 될 때도 있다는 게 크게 문제가 될까? 물론 문제가 되겠지만 유달리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어찌 기복이 없을 수 있을까? 물론 안 그런 인간, 범주 밖의 천재도 있기 마련이다. 스티븐 킹은 매일 오전 몇 시간씩 잘 써지나 안 써지나 글을 썼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독종 아저씨는 매일 아침 마라톤 연습을 하고 오전에 기계처럼 글을 쓰는 일상을 수십 년째 살고 있다.


평범한 우리야 어디 그럴 수 있나? 손흥민이 골을 못 넣은 게임을 보고 맞은 월요일엔 어쩐지 일하기 싫어지지 않나? 솔직히 매일매일,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어쩌다 하루 안 되는 건 봐줄 수 있고 넘어가 줄 수 있지 않을까? 프로선수들도 잘 되는 날이 있고 안 되는 날, 못하는 날이 있으니 말이다. 특히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마흔이 다 되도록 훨훨 날아다니는 르브론 제임스나 사십 대 중반까지 엘리트 쿼터백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톰 브래디 같은 인간은 그야말로 절대적 예외적 존재, 사람이 아닌 외계인이다. 다들 그 나이가 되기 전에 은퇴한 뒤 해설자를 하거나 지도자를 하면서 슬슬 살이 찌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섹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신혼 때라면 또 몰라도 결혼하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가고 연애시절부터 하면 서로의 살 냄새를 맡은 지 벌써 25년이 넘었다. 그 세월이 20년쯤 넘어간 뒤부터는 생각만큼 잘 안 되더라도 ‘야, 이거 큰일 났다.’는 조바심은 안 든다. 우린 서로가 나이 드는 걸 꼼짝없이 지켜보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이런 서로의 나이 듦의 목격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아량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퍼포먼스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현역 연장이 절실한 이유

이십 대 후반, 아내를 알게 된 이후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내를 안는 것이었다. 아내의 가쁜 숨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보고 느끼는 것이었다. 매번, 아내를 안을 때마다 상처 하나, 점하나 없는 하얀 속살을 눈으로 읽어 들여 마음 깊이 저장한 뒤 틈날 때마다 꺼내보고 싶어 사랑을 나눌 때마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험했다. 그러나 지금도 아내는 여전히 미지의 땅이다. 정복되지 않은 처녀지다. 내겐 아직 아내의 지도가 없다. 지도가 없으니 아내에게 다가갈 때마다 설렌다.


이런 이유로, 솔직히, 그 긴 세월 동안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가져봤어도 단 한 번도 지루하거나 권태스러웠던 적은 없다. 그녀의 허벅지의 살결이 내 다리를 스쳐올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아내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힘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내 것을 만지는 걸 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난 이십몇 년 동안 수 없이 봐온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그렇다. 다른 장면을 설명하면.... 어쩌면 심의에 걸려 업로드가 안 될 수 있으니 이쯤 하자.


사랑(?)의 유통기한

이렇게 좋은 걸 무한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아니 결혼해서 살다 보면 잘해야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두 번이고, 쉰이 넘으면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적으면 그야말로 한 달에 두세 번이다. 서른이 넘어 결혼한 배우자와는 그 시간이 더 짧을 것이다. 통계를 보면 초혼의 평균 연령이 남자는 33.7세, 여성은 31.3세다. 나와 아내도 저 나이쯤 결혼했다. 그나마 지금보다 젊었던 저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랑할 날이 길지 않다. 얼마 안 남았다. '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사랑의 시간은 유한하다. 육체적으로 한정하면 말할 것도 없다. 성인이 되어서, 그러니까 스무 살에 만난 첫사랑과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산다고 해도 잘해야 40년 정도 섹스를 할 수 있고 정말 건강하면 50년 정도다. 그 이상이면 뭐, 엄청 좋은 걸 먹거나 집안 대대로 변강쇠 거나 둘 중 하나다.


이마저도 서로가 아프지 않고 건강할 때의 이야기다. 술 많이 마시고 담배 많이 피우며 사는 마흔이 넘은 우리나라 남자에겐 언제 죽음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다. 오십이 넘으면 친구의 부모님 장례식을 자주 가게 되지만 종종 친구 장례식에도 가게 된다. 여자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 소위 선진국 국민 중에서 우리처럼 운동을 안 하는 나라는 거의 없지 않을까? 특히 여자들의 운동량 부족에 대해선 말해 무엇하랴. 결국 겉만 멀쩡하지 서른이 넘으면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고 출산까지 하면 그 고장 상태는 더 심각해진다.


육아의 수고에 대해선 길게 말하지 않겠다. 아내가 출근한 뒤 육아를 전담했던, 그나마 비교적 얌전한 딸을 키웠던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 이 순간 아들을, 또는 둘, 셋을 키우는 모든 엄마들은 체력을 바닥에서부터 끌어와 쓰고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게다가 둘 다 제법 그럴듯한 회사에 다닌다면... 긴 말 않겠다. 결국 두 사람 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전력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그 짧은 시간조차 모두 다르다. 내게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르신의 자유로운 낮술

다시 말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내를 안는 일이다. 몇 번 썼듯이 난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라 쾌락의 순위가 비교적 명확하고 심플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그러니까 내게 순수한 쾌감을 선사하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아내랑 노는 거고, 그다음이 맥주=수영=독서다. 그런데 맥주, 수영, 독서 중 섹스에 도움이 안 되는 건 당연히 맥주다. 결국 이번엔 진짜 맥주를 대폭 줄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랑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후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낮, 밤 할 것 없이 약주를 하시는 건, 어쩌면 그 육체로 뜨겁게 안아줄 사람이 더 이상 없기 때문 아닐까? 아니, 아니, 그럴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해방됐기 때문은 아닐까?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신다 해도 그런 쪽으로는 수명이 끝났고 본인도 수명이 다했으니 이제는 그저 서로의 존재를 고마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사랑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기에, 뒷일을 걱정 안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약주를 드실 수 있는 거 아닐까? 감당할 것이라야 마누라 잔소리 정도일 테니 말이다. 술값이야 정부와 자녀들이 지원해 줄 테고, 내일 어디 출근해야 되는 강박도 없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난 아직 아내가 멀쩡히 살아 있고 아직 작동(?)이 잘 되고 있다. 작동이 시원찮은 남편에게 이러쿵저러쿵 뭐라 하지 않을 정도로 그쪽으론 담담한 편이지만 술을 좀 줄이라는 잔소리는 한다. 그런 잔소리도 안 한다면 그야말로 남편에게 남자 구실을 포기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물론 정말 작동이 원활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약을 먹어보라고 하거나 한약 한 첩을 지어줄지도.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 경고일지도. 그런 경고가 나오기 전에 술과는 잠시 장거리 연애를 하는 커플처럼 아주 가끔, 그러나 뜨겁게 만나기로. 대신 아내와는 자주, 따뜻하게 만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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