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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an 19. 2024

열정은 전완근을 아프게 한다.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48

여기가 왜?

오늘 오전, 왼쪽 하박 안쪽이 약간 뻐근했다. 이 근육을 뭐라고 부르는지 해부도를 찾아봤다. 내가 뻐근함을 느끼는 부위는 총지신근과 소지신근, 주근 등이다. 이렇게 말해 봐야 무슨 소용 있겠나. 자, 따라 해 보자.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책 상 위에 올려놔봐라. 팔꿈치 안쪽, 옴폭 들어간 부분부터 손목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근육, 우리가 보통 퉁 쳐서 전완근이라고 부르는 근육의 안쪽이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오른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참고로 난 오른손잡이다. 왼손도 많이 쓰는데 보통 커피를 마실 때, 그리고 마우스질도 왼손으로 한다. 카피라이터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왼손을 많이 쓰는 게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이후로 계속 그렇게 쓰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러고 산다.     

 

자, 자, 문제로 돌아가자. 그러니까 왼팔의 하박 안쪽이 뻐근한데 이 팔로 도대체 뭘 했기에 아플까? 마스터베이션을 하기엔 너무 늙은 나이인 데다가 그건 대체로 오른손으로 하지 않나? 그러니 이건 탈락. 무거운 걸 든 기억도 없고 최근 왼팔에 무리가 갈 정도로 섹스를 한 적도 없고... 도대체 왜...     


그렇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안고 수영장에 갔다. 루틴대로 연습풀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순간 원인이 뭔지 알아챘다. 바로 이 연습풀에서 하던 오분에서 십 분 정도의 연습.    

 

보충 연습의 이유

앞서도 썼듯이 정규 강습 시간이 끝나고 할머니들의 아쿠아로빅이 시작되기 전까지 난 연습풀에서 개인 연습을 하고 간다. 그래봤자 아주 간단한 걸 반복적으로 할 뿐이다. 한 팔 자유형 열 번, 한 팔 접영 열 번, 각각 왕복 다섯 번. 한 팔은 왼 팔이다. 오직 왼 팔의 근력과 물을 잡는 감각을 키우기 위해 하는 일종의 보충 개인 연습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오른팔, 오른손, 오른발 잡이이기에 오른쪽의 힘이 더 좋다. 자유형 킥도 집중하지 않으면 살짝 왼쪽으로 쏠린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왼 다리에 힘을 더 줘야 한다. 스트로크 할 때 양 팔의 불균형은 말할 것도 없다. 오른쪽은 손으로 많은 물을 잡아 힘껏 뒤로 쭉 밀어낸다. 반면 왼쪽은 그 힘이 떨어진다.      


실제로 양쪽의 불균형은 수영에 자잘한 영향을 준다. 예전에 강사가 눈을 감고 자유형을 해보라고 했을 때, 난 여지없이 왼쪽으로 쏠렸다. 똑바로 가는 사람은 없다. 다들 짝짝이니까. 그래서 근육의 고른 발달을 위해선 보강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하게도 파워가 는다.      


2차 세계대전 영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폭격기를 떠올려 봐라. 양쪽 날개에 한 개씩, 또는 두 개씩 엔진이 달려 있는 커다란 비행기 말이다. 만약 이런 비행기 양 날개에 달린 엔진의 파워가 다르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똑바로 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의 양팔과 양다리의 힘이 같다면 교대로 스트로크를 하는 자유형과 배영에서 최대한 똑바로 갈 수 있다. 이론적으론 말이다.     


내가 했던 보강 운동은 이런 차원에서 해 온 것이다. 시작한 지 한 달쯤 됐을까? 연습풀에서 이왕 마무리 운동을 하고 가는 거, 목적을 갖고 반복적으로 하기로 작정하고 왼 팔만 열심히 훈련해 왔다. 뭐, 매일 십분 쯤, 남보다 더하면 힘이 좀 붙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말이다. 여기에 할 때마다 무호흡, 그러니까 숨을 참고 하면서 심폐지구력도 늘길 바랐다.     

 

오늘 아침, 그 효과가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근육은 먼저 일을 하고 다치고 회복되면서 커지고 힘이 붙는다. 그러니까 내 왼 팔 엔 운동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기하지 않나? 겨우 한 달 정도인데.     


돈 쓰는 곳에 마음도 있다.

물론 선수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돈을 받는 일도 제법 열심히 하고 더 잘하려고 하는데 돈을 내면서 하는 운동을 대충 한다는 건 어쩐지 앞뒤가 안 맞지 않나? 나만 그런가? 그러니까 요즘엔 취미로 뭘 배우든지 간에 제법 많은 돈이 들지 않나? PT, 필라테스, 요가 등 운동으로 한정해도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들지 않나? 그렇게 많은 돈을 내고 하는 데 대충 한다는 건 좀 그렇다.   

   

요즘 회사에서 일 안 하고 월급만 타가는 사람을 보고 월급 루팡이나 오피스 빌런이라고 한다면서? 그러니까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기로 했는데, 돈 값을 안 하는 인간들 말이다. 공부와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냐마는 어찌 됐든 일이든 공부든 적당히 하면 해고되고 성적이 떨어지면 그만이다. 일을 대충 하면 나도 손해지만 나에게 월급을 주는 기업과 조직이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다. 성적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공부를 대충 하는 건 영육 간의 평안함을 줄 수 있다. 아, 물론 해고와 성적 저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다만...     


문제는 내가 돈을 내고 뭔가를 하는 데 대충 하는 건, 돈을 받는 쪽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돈을 내고 대학에 갔으면 열심히 다녀야 한다. 돈을 내는 교회에 열심히 다녀야 하고,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는 연인에게 사랑을 줘야 한다. 아, 이건 그 반대인가? 그렇구나. 그러니까 교회를 사랑하고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헌금을 많이 내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으면 비싼 등록금을 내더라도 좋은 대학에 가는 거고, 사랑을 하면 할수록 시간과 자본을 많이 쓰는 거구나.     

 

이 논리를, 다시 말하면 일단 돈을 쓰기로 했으면 열정을 쏟거나, 열정을 쏟는 곳에 돈을 쓴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곳에 열정을 쓰지 않는다. 운동을 결심하고 등록한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이 대표적인 곳이다. 뭐, 대학도 대충 다니는 사람도 있고, 헌금을 많이 내면서도 교회를 대충 다니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하간 그런 사람은 의외로 많다.      


제대로 하는 사람은 대체로 살짝 미쳐 있다.

취미는 일이 아니어서 슬슬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제대로 된 취미를 못 만나서 그렇다. 내가 아는 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취미를 만난 사람은 일보다 더 에너지를 쏟는다. 당연히 더 잘하고 싶어 하고. 내가 아는 PD 한 명은 낚시광인데 25톤 미만의 어선까지 몰 수 있는 선박 조종 면허를 땄다. 그 사람은 심지어 귀어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을 정도다. 아, 물론 일도 아주 잘한다.     


일이든, 취미든, 심지어 연애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둘 중 하나다. 당신에겐 애초에 그런 열정이 없거나 당신의 선택-일, 취미, 연인 -이 잘 못 됐거나. 정초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 ‘아 나하고 수영하곤 안 맞아.’, ‘아, 애는 아닌 것 같아.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하는 생각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을 갖고 이 신성하고 엄숙한 1월을 보내고 있냐는 말이다.      


아직 설 전이다. 그러니까 마음을 고쳐 잡고 생각을 바꾸어 “아닌” 장소, “아닌” 운동, “아닌”사람이 사실은 내게 딱 맞는 것이라고, 내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 마음먹고 남은 한 해를 쭉 밀고 나갈 수 있다. 진짜 딱 맞을, 그때까지 말이다.


반면, 때려치울 수도 있다. 안 맞는 걸 참아가면서 청춘과 시간을 낭비하기엔 인생은 더럽게 짧다. 그러니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기억해라. 장모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인데, “아하. 최서방, 물 좋고 산 좋은 데가 흔치 않아요.”     


그렇다. 객실 창으론 바다가 보이고 뒤에 울창한 숲도 있으면서, 주변에 편의점은 물론이고 쇼핑 시설과 다양한 맛집도 많으며, 공항에서 가까운 데다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도 좋은 호텔이 과연 몇 곳이나 되겠나? 그런 호텔 객실을 운 좋게 예약했다고 치자. 그런 호텔이 있는 관광지가 물가도 싸고 음식 값도 싸며 물(?)도 좋은 경우는 또  얼마나 될까?      


일전에 썼듯이 어떤 운동이든 처음 하면 괴롭다. 오래 하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배우기 쉽고 부상도 없으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은, 글쎄, 걷기 정도 아닐까? 일은 편한데 월급은 많은 회사를 찾나? 낮에는 순종적이며 지적이고 성품 좋은 데, 밤에는 그야말로 요부 그 자체인 글래서 여자를 찾나? 다정다감하며 직장 좋고 자동차는 중형이며 잘생긴 데다가 식스팩이 있는 지적이며 학벌 좋은 남자를 찾나? 그런 운동, 그런 회사, 그런 여자가 과연 있을까? 있다 치더라도 경쟁이 엄청나겠지?  있으면 내가 먼저 갔겠지. 있으면 누가 먼저 꼬셨어도 벌써 꼬셨을 테고.


여하간, 결론적으로, 지금 열정을 쏟지 않는 이유가 나에게 있는지 대상에 있는지 설이 오기 전에 판단해 볼 일이다. 나아지길 바란다면, 지난해보다 올해 더 내 삶이 더 나아지길 바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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