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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r 12. 2024

Keep the pace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51

운동의 양과 페이스

이번 강사는 뺑뺑이만 돌린다. 우리 식의 표현이다. 영법의 기술을 위한 드릴도 아직 한 적이 없다. 3월도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말이다. 대략 강습 시간 동안 천오백에서 천칠 백 미터, 핀을 꼈을 땐 이천 정도 운동을 한다. 웜 업도 심플하게 자유형 250, 영법별로 발차기 한 바퀴씩. 이후 강사가 하라는 데로 돌기만 하면 된다. 하루 이틀은 오래간만에 그렇게 돌기만 하니 좀 힘들다 싶었으나 며칠 지나니 약간 지겹게 느껴졌다. 운동의 양을 소화해 내는 건 어렵지 않다. 운동의 질을 높이는 것이 어렵지. 책상 앞에 오래 앉는 거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만 그 시간 동안 공부의 질을 높이는 건 또 다른 차원인 것처럼.      


3월엔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왔다. 다행히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없어서 내 앞에 세워 놓을 수 있다. 3,40대로 보이는 남자 두 명, 저번에 말한 오키나와 풍의 아가씨, 40대로 보이는 아줌마가 한 명 있다. 여기에 저번 달부터 종종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 귀엽고 통통한 아가씨가 있다. 다른 시간대 고급반에서 왔거나 중급반에서 올라왔다.     


강사가 바뀐 3월 첫주에는 서로의 속도와 체력을 가늠했다. 그 후 뒤로 갈 사람은 가고 앞에 보내도 되는 사람은 앞에 보냈다. 난 나보다 젊은 남자는 되도록 내 앞에 세우고 보자주의고 아가씨나 아줌마라도 앞에 설 자신만 있다면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앞자리를 내어주는 편이다. 오키나와 스타일의 아가씨도 그렇게 내 앞에 섰고, 통통한 아가씨도 이번 달, 어느 날엔 내 앞에 선 적이 있다.


오버 페이스

저번 주였나, 통통한 아가씨는 십오 분 정도 늦게 들어왔다. 웜 업이 끝나고 본 세트가 막 시작하기 전이었다. 강사는 본 세트 전에 개인혼영 하나를 먼저 시켰다. 늦게 온 아가씨는 내 뒤에 섰는데, 웜 업을 안 해 체력이 남아 있었던지 내 발을 몇 번 쳤다. ‘체력이 남아도시는구먼.’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내 앞에 서겠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선선히 내 앞에 섰다.


메인 세트는 자유형 50미터 여덟 개였다. 고정인 1번과 2번, 3번엔 날렵한 아줌마, 4번에 오키나와 스타일의 아가씨, 5번에 통통한 아가씨, 6번에 내가 섰다. 세 번째 랩을 돌았을 때, 통통한 아가씨와 오키나와 스타일의 아가씨가 옆으로 비켜서서 쉬었다. 앞에 사람을 따라잡겠다는 욕심에 오버 페이스를 했기 때문이다.      


방향만큼 중요한 적정 속도

누군가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했지만, 이 말은 최소한 수영에 있어선 반만 맞다. 아니 어쩌면 인생 전체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버텨야 될 시간과 가야 할 거리를 감안하여 적절한 속도를 정하는 것이 끝까지 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속도를 정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앞선 사람들의 속도에 놀라지 않고 편해 보이는 뒷사람의 속도로 늦추고 싶은 유혹도 이겨내야 한다. 내게 운동이 되면서 동시에 앞사람과의 거리는 그렇게 벌어지지 않는, 그러면서 나를 따라오는 뒷사람에게도 충분히 운동이 될 만한 속도를 찾아다.


특히 나처럼, 1번의 표현을 빌리면, 오래 수영을 해서 체력도 실력도 좋은 사람들과 오래 했지만 체력이 약한 사람, 경력도 얼마 안 되고 체력도 약한 사람 사이의 중간에서 전체 반의 속도를 조율하는 허리 역할을 하는 사람에겐 이 속도 설정이 더 중요하다.      


물론 욕심도 난다. 1번이나 2번만큼 속도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한두 바퀴 정도라면, 핀 수영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50분 동안 퍼지지 않고 모든 운동을 소화해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적절한 속도와 적절한 순서를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 앞에 사람은 뒷사람을 너무 기다리지 않고, 내 뒷사람은 따라가는 것이 힘들어서 몇 바퀴를 쉬어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무리 없이 차곡차곡 도착해서 다시 그렇게 출발할 수 있도록, 중간에 서는 사람은 그렇게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물론 이 속도 조절의 열쇠는 1번이 쥐고 있지만.    


인생의 페이스

인생이 수영과 같다면 편할 것이다. 몇 미터를 가야 시합이 끝나고 몇십 분을 해야 운동이 끝나는지 알 수 있는 수영처럼 인생도 그 거리와 시간의 끝이 명확하다면 사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내게 남아 있는 체력과 열정을 알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둘 다 모르기에 어느 순간엔 오버 페이스를 하고 어느 순간엔 번 아웃이 되어 버린다. 둘 다, 원인은 한 가지다. 앞서 말했듯, 버텨야 될 시간과 내게 남은 에너지를 모르면서 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둘 다 안다면 인생이 얼마나 편할 것인가.     


여기에 다른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페이스를 유지하는 능력은 어느 수준 이상, 어느 세월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 시간이 적힌 풍선을 달고 뛰는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맡는다. 그 페이스보다 훨씬 빨리 뛸 수 있는 능력과 함께, 풀코스든 하프 코스든 주어진 시간에 완주하려면 1킬로미터를 몇 분 페이스로 뛰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수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1번은 단순히 수영을 오래 하거나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속도를 늦췄다 높였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다.


인생의 페이스 조절도 어쩌면 어느 정도 살아낸 후에나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의 오버페이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닐까? 반대로 얘기하면 젊은 시절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는다는 건 조로(早老)의 현상일지 모른다. 익기도 전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처럼 설익은 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직 젊으니까 열심히, 열정, 열정, 열정”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유병재가 했던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라고. 청춘도 아프다. 힘들다. 다만 세상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니 그러면 안 되는 가 싶어 참고 사는 것이다.      


결국 인생도 수영도 자신의 페이스를 알 때까진, 그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진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 믿을만한 어른도 선배도 없는 요즘이라지만 그래도 찾아봐야 한다. 힘들 땐 따라갈 수 있고 오버할 땐 진정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혼자서는 늘지 않는 것이 수영이듯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결국엔 혼자 감내하는 무엇이라 하더라도, 그 감내의 역량을 얻기 전까진 먼저 그 굴곡을 건너온 사람이 필요하다. 페이스의 깨달음과 유지를 위해.


어제, 메인 세트는 일명 사다리 세트였다.50, 100, 150, 200까지 한 후 다시 150, 100, 50으로 줄어드는. 100을 한 후 보니 1번이 수경을 올리고 있었다. 세트가 끝날 때까지 벗지 않는 그이기에 무슨 일이 있다는걸 직감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

이 말을 들은, 이 날 2번을 선 3번 아줌마와 나는 얼른 대답했다. "아~  오늘 딱 좋아요. 걱정마세요.", 1번은 씨익 웃고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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