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일주일 동안 보이지 않았던 2번 아저씨가 드디어 나왔다. 샤워를 하고 수영장으로 향하던 그는, 역시 준비를 끝내고 샤워기를 잠그고 나가던 나와 딱 마주쳤다. “아, 어디 아프셨다면서요. 이제 좀 괜찮으세요?”하고 안부를 물었다. “마, 아직 제 컨디션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살~살 해 보려고 나왔다 아입니까. 오늘은 마, 말번이다. 말번.”하고 답한 뒤, 그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실제로 그는 제법 뒤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그 앞에 선 아주머니에게 농담을 섞어 말했다. “돌다가 한 번이라도 발을 치면 앞으로 확 보내버리세요.”, “당연하지.”,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강습이 끝날 때쯤, 그는 내 뒤에 서 있었다. 보자. 이날 1번이 안 왔고... 그는 7번인가 8번으로 시작해서 4번으로 끝냈다.
강습이 끝난 후, 샤워를 하고 라커룸에서 옷을 입는데, 2번 아저씨와 내 라커가 몇 개의 라커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2번 아저씨 옆, 몇 개 건너 라커는 중급반 청년의 라커였다. 라커는 안내데스크에서 랜덤으로 주기 때문에 대체로 이렇게 나란히 있는 경우는 드물다. 여하간 그렇게 세 남자가 옆으로 나란히 서서 옷을 입는데 청년이 2번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 반은 운동량이 어떻게 돼요?”, 2번 아저씨는 담백하게 말해줬다. “오늘 같은 경우는 보자... 한 천오백 했으려나? 많아도 천육백, 칠백? 예전엔 장거리 50분 돌릴 땐 2천도 넘었는데.... 지금은 과학적으로 운동시킨다고 그런 건 안 하지. 와? 와 보려고?”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젊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올라와야지. 거 중급반에서 아줌마들하고 백날 해봤자 체력도 안 늘고 실력도 안 늘어.”, “그건 맞다.”, 2번 아저씨가 맞장구를 쳐 줬다. 그러자 청년이 속내를 더 풀어놨다. “아니 자꾸 천천히 가라고 하셔서. 이건 뭔가 좀...”, “그러니까. 자유형으로 안 쉬고 백 미터만 할 수 있다. 그러면 일단 올라와야 돼. 올라와서 뒤에 서서, 쉬엄쉬엄 함께 하면, 보자, 젊은 사람들은 한 삼 개월만 버티면 할 만하다니까.”, 내 말에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의 고민
안 봐도 스크린이다. 다른 수영장은 모르겠지만, 우리 수영장에선 거의 모든 시간대, 모든 반에서 1번을 맡는 건 대체로 남자 회원이다. 아줌마와 아가씨들이 대부분인 중급반에서도 1번을 맡는 건 무조건 남자다. 청년이든, 아저씨든, 오래 했든 이제 막 초급반에서 올라왔든 대체로 1번의 중책을 떠맡기는 거다. 1번은, 앞서도 말했지만, 부담스러운 자리다. 자기가 가장 먼저 물살을 헤치고 나가야 하기에 저항도 크다. 컨디션이 좋든 안 좋든 회원들의 운동량을 고려해서 일정한 속도도 내줘야 한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안 된다. 이 청년이 속한 중급반의 경우엔 아줌마 회원들이 속도를 늦춰달라고 압박 아닌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말을 건 청년은 선이 굵은 외모에 몸이 좋다. 누가 봐도 운동 꽤나 한 몸이다. 자기 반의 운동량이 성에 안 차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속도를 더 낼 수는 없다. 그 반의 터주 대감을 자처하는 아줌마 몇몇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물론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의 템포를 맞춰줄 필요는 있다. 그러나 가장 느린 사람이 자신의 템포에 전체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건 횡포다. 의외로 이런 경우, 많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함께 하는 운동인데 서로 보조를 맞추는 것이 좋지 않냐. 우리가 선수될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빡세게 할 필요 있냐. 대충 이런 주장들을 한다. 본인들이 원하는 템포가 있으면 본인이 1번을 하면 될 텐데 그건 또 싫어한다. 이런 사람들이 또 이런저런 조언은 잘한다. 자유형은 이렇게 해라. 턴은 저렇게 해라. 킥을 열심히 차라. 등등. 어쩌면 운동보다는 말을 많이 하고 싶어서 수영장에 오는지도 모른다.
발목을 잡는 사람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이 있다. 회사에 가든, 학교에 가든. 멘트도 비슷하다. “네가 사장이야?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네가 교수냐? 뭘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냐?”, “야. 적당히 해. 월급 받는 것만큼 일하는 거야.”, “누가 열심히 한다고 알아주길 하냐? 상을 주냐?”, “대충 써. 광고주가 오케이만 하면 되는 거야.”
이런 사람들은 자신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앞서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겐 훈장질을 한다. 열심과 최선의 의도를 곡해하고 초보의 부족함과 서투름을 트집 잡는다. 그런 낙으로 출근하고 학교를 가고 친구와 사람을 만난다. 이런 사람에겐, 당연하게도, 조직의 성장이 곧 나에 성장이라는 생각은 없고, 조직이 힘들 땐 가장 먼저 탈출할 생각을 한다. 언뜻 보면 조직의 오늘에, 오늘의 조직에 큰 해를 주진 않지만 그렇다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조직과 조직의 구성원이 오늘의 현상에 만족하고 그 현상을 유지하는 것을 당면한, 그리고 미래의 목표로 삼고 있다면 이런 사람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변화와 성장을 꾀하는 조직과 그 구성원에게, 이런 사람은 걸림돌이다.
비용이냐 투자냐
내가 2번 아저씨에게 농담처럼 한 말이 있다. “아니 우리가 남에 돈을 받기 위해 일할 때도 열심히 하는데, 내 돈 내가면서 하는 수영은 더 열심히 해야죠.”, 난 이 말을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해줬다. 돈을 써가면서 뭘 하려고 작정했으면 돈을 받기 위해 뭔가 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광고/홍보학계와 업계에선 오래전부터 이게 비용이냐 투자를 놓고 갑론을박을 해오고 있다. 광고와 홍보가 매출과 인지도 상승에 영향을 주는지, 영향이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사과를 육 등분 하여 쪼개듯 명확하게 쪼개내어 보여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 상승과 인지도 상승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소 중 광고와 홍보의 효과만 수박에서 씨 발라내듯 쏙 골라내어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돈을 쓰는 어떤 부분에선 그 돈의 효과를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가 분명하다면 그건 자신을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 그러니까 만약 내 돈을 써가면서 운동을 하고 취미로 뭔가를 배우는데 발전이 없고 달라지는 게 없다면 그 돈은 비용이고, 그 반대라면 투자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고 삶이 바뀌었다면, 업무의 능력이 올라가고 사람이 더 깊어졌다면 그 책의 구매비용과 독서에 들인 시간은 투자다. 운동을 해서 몸매가 유지되고, 덕분에 새 옷을 살 필요도 없을뿐더러 동료와 고객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면, 그 또한 투자다. 언젠간 달라질 나, 발전할 나, 나아질 나를 위해 오늘, 이 순간에 들이는 모든 형태의 자원은 투자인 것이다. 나를 성장시키고 미래에서 도래할 새로운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 기꺼이 지불하는, 아니 지불해야만 하는 차비와 같은 것이다.
모든 투자엔 돈이 들고, 또 시간과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다. 그 청년은 어느 정도 돈을 써서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운동, 수영을 배웠다. 지금부터 들어가는 돈은 현 상태의 유지다. 중급반 수준의 유지. 거기서 만족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매일 꾸준히 운동한다는 것, 그런 사람으로 남은 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큰 수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은 더 큰 수확을 꿈꾼다. 같은 돈을 들여서 더 큰 결과를 얻고 싶어 한다. 적절한 타이밍을 탐색하고 있다. 그 정도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이 정도 수준의 수영을 하면 된 거라고, 괜찮은 거라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힘들게 운동해서 좀 더 차원이 높은 수영을 하려 한다. 이미 그런 수준의 수영을 하면서도 성에 안 차서 더 나아지려 애쓰고 있는 사람들과 수영을 하고 싶어 한다. 청년은 언제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