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타임
이젠 쉴 줄 안다. 앞서 썼었나?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안다. 일요일 저녁부터, 아니 수영을 못(?)하는 토요일부터, 근력 운동을 못할 정도로 몸이 무겁더니 일요일까지 그 상태가 이어졌다. 자고 나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월요일 아침에도 다를 게 없었다. 아홉 시 반까지 기다려보자 마음먹고 해야 될 걸 하며 있었다.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수영을 안 가기로 했다.
딱히 증상은 없다. 그냥 가면 안 될 몸 상태였다. 무리해서 가면 이 주 내내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건 안 된다. 수요일, 딸의 초등학생 시절 마지막 참관 수업을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었다.
어떤 종목의 스포츠를 하든지 몸이 하는 소리를 듣는 건 필수다. 먼저 한 선배나 강사들도 아마 그런 부탁을 할 것이다. 선수가 아닌 이상 우리에겐 스포츠가 전부는 아니잖아? 우리에겐 일상이 있지 않나? 물론 삼십 대 초반만 해도 무조건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고 싶으면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 부상도 없는 몸이라 어떤 운동이든 길게 쉬어 본 적이 없다. 축구를 할 때도, 농구를 할 때도, 마라톤과 스포츠 클라이밍, 하다못해 심심풀이로 부산의 산들을 순서를 정해놓고 오를 때도 그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예민해졌다. 몸이 신호를 보내면 받아들였다.
축구에 미쳤던 남자도...
대학 다닐 때, 기숙사 학생들은 축구에 거의 미쳐 있었다. 특히 내가 있던 동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동현 씨라고, CC였던 수학교육과예비역이 있었다. 남자로 가득한 공대에서 얼마나 많이 공을 찼을까? 군대 가기 전부터 사귄 사이였으니 여자 친구는 그가 축구를 하는 동안 사이드라인 바깥의 시간을 꽤 오래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런 남자 친구가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한 뒤 느닷없이 기숙사에 들어간 것까진 이해를 했는데, 거기서도 수시로 공을 찼으니 얼마나 기가 찼을까? 그래서 어느 날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오빤, 내가 좋아 축구가 좋아?” 남자 친구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난 네가 축구 선수였으면 좋겠어.”, 이거 실화다. 이 말을 들은 우리 모두, 여자 친구 편을 들어줬다. 이건 정도가 심했다는 걸 CC는커녕 여자 손목 한번 못 잡아 본 신입생들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들도 나이를 먹으면 세월의 무게를 실감한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따라주지 않는 몸을 갖고 굳이 무리해서 운동하고 싶지도 않다. 이쯤 되면 운동을 안 해서 몸이 마음을 안 따라주는 건지, 몸이 마음을 안 따라줘서 운동을 안 하는 건지, 그 전후좌우 정황 파악이 쉽지 않지만, 어찌 됐든 나이를 먹으면, 앞서 말한 예비역 같은, 축구에 죽고 못 살던 남자도 적당한 선에서 휴전을 선포하고 물러난다.
나 또한 어느 정도 나이가 됐을 때, 또 아내가 그만했으면 할 때 다른 운동을 그만뒀다. 축구도, 농구도 딸에게 그걸 가르칠 때까지 하지 않았다. 덕분에 딸에게 가르칠 때는 농구화도, 농구공도 새로 사야 했다. 축구공도 스킬 볼이라 불리는, 작은 사이즈의 공으로 새로 샀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장비랄 것이 따로 없어서 마그네슘 쵸크 백과 암벽화는 기념으로 놔뒀다.
즐거운 걸 오래 하기 위해
수영은 오래 할 운동이다. 어쩌면 노년에, 산책과 게이트볼에 입문하기 전, 마지막 운동 아닐까? 다행히 수영 때문에 부상을 당한 적도 없다. 수영 덕분에 별다른 근육 운동 없이도 근손실 없이 그럭저럭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영법에 따라 쓰는 근육이 다르다 보니 근육을 고르게 키울 수도 있다. 체력 향상과 유지에도 좋고 심폐지구력에도 좋기에 밤(?)에도 큰 도움이 된다. 뭐, 어디까지나, 요즘 애들 표현을 빌리면, 내 뇌피셜이다.
갈 길이 멀면 중간에 쉬어야 한다. 부산에서 김해를 갈 땐 휴게소에 들를 필요가 없지만 경주라면 얘기가 달라지고 울진과 영덕, 그 넘어 강원도로 간다면 더 많이 쉬어줘야 한다. 휴게소의 용도가 그렇듯 쉼은 그저 멈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진된 에너지도 충전하는 시간이다. 일도, 스포츠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랑하는 일일수록, 좋아하는 스포츠일수록, 그래서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싶은 것일수록, 오래 하고 평생 하고 싶을수록 중간중간 쉬어줘야 한다. 열정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더 멀리, 더 오래가고 싶다면 쉬어야 할 때, 몸과 마음이 쉬라고 할 때 쉬어줘야 한다.
이건 뭐, 사족이라면 사족인데, 수영이 좋은 운동인 이유 중 하나는 바깥세상과 격리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헬스장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러닝머신을 뛰면서 TV를 보는 건 당연한 것이고, 달리기를 하는 동안 무선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고 통화까지 하는 사람도 많다. 스마트 폰을 휴대할 수 없는, 가지고 갈 수 없는 운동 경기장이 있기나 할까? 노키즈존처럼 노스마트폰존으로 지정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수영은 불가능하다. 난 이때까지 수영을 하는 도중 카톡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자기가 수영을 하는 모습을 셀카로 남기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아주 가끔, 강습 시간이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가서 스마트 폰을 가져온 뒤 자신의 수영하는 모습을 찍어달라는 사람이, 진짜 아주 가끔 있는데, 그마저도 지난 몇 년 간 딱 두 번 봤다. 이쯤 되면 수영은 디지털 디톡스 시간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스마트 폰에 지친 내 불쌍한 손가락과 눈과 뇌를 쉬게 해주는 시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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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올 겨울 강원도 여행 중 잠시 들렀던 삼국유사군위 휴게소다. 복고풍의 인테리어가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