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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r 29. 2024

나폴레옹 전기 - 펠릭스 마크햄

동해선에서 읽은 책 81

어울리지 않는 책

철학 책, 또는 철학에 관한 책을 내리읽다 보면 일종의 피곤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하루 이틀 만에 읽을 만한 책, 읽고 나서 바로 팔거나 버릴 책을 골라 읽는다. 특히 후자의 경우엔 내 다른 책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누가 봐도 위화감을 느끼는 책이 대체로 선택된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스무 권에 한 권 정도, 이걸 왜 샀을까 싶은 책이 있곤 한 것이다. 


이 책은 왜 샀을까? 어쩌면 TV에서 우연히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인 워털루 전투를 다룬 옛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도. 이 영화에 웰링턴 장군 역으로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나오는데 제복 입은 모습이 우아하다. 반면 로드 스타이거가 연기한 나폴레옹은 초조해 보인다. 의도적인 건가? 이 책을 읽고 보니 아닌 것 같다. 


혁명이 불러낸 남자

이번 책으로 난 어린 시절 읽었던 조잡한 위인전기를 통해 갖고 있었던 기억을 고치게 됐는데, 나폴레옹이 코르시카 섬의 몰락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사관학교 시절 촌놈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기억이다. 코르시카 섬 출신은 맞지만 나름 그 지역에서 주름깨나 잡던 집안이었고 인맥이 중앙의 귀족들과도 연결되어 있던, 소위 말해 토착 귀족 세력이었다. 그 인맥 덕분에 사관학교도 잘 갔고, 그 후 열여섯 살에 소위로 임관한다. 이때가 1785년이다. 그런데 사령관이 언제 되냐... 1796년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이십 대 후반에 별을 단 것이다. 장군이 됐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전쟁은 계속되는데 장교가 없어서였다. 프랑스혁명이 언제냐, 저 딱 중간이다. 우리가 그렇게 달달 외우던 1789년. 전후좌우 생략하고 핵심만 얘기하면 하루아침에 구체제를 몰아내고 혁명 정부가 들어섰다. 이때, 귀족들이 너도나도 이웃 국가, 왕정 체제가 유지되던 도시 국가, 공국으로 망명을 한다. 당연히 그 귀족들 중 상당수는 고급 군인들이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별, 무궁화, 다이아몬드 할 것 없이 다 다른 나라로 훅 나가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 신성동맹, 대 프랑스 연합군이 공격을 한다. 이유? 이유야 간단하지. 왕가를 몰아내고 가톨릭의 권위를 위협하는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앞세운 혁명 정부가 달가웠지 않았던 것. 게다가 옛날 귀족들이면 몇 치 건너면 사돈이고, 친척이고 지인인데 그렇게 알고 지내던 부르봉 왕가 사람들이 그야말로 몰살당하고 나머지는 야반도주하듯 쫓겨나고 도망쳤는데, 그 일이 남에 일 같겠나? 야, 이거 이러다 이 혁명의 물결에 우리도 죽는 거 아냐 싶을 거 아니겠나? 그러니 아직 어수선한 상황이었던 혁명 정부를 일시에 몰아내려고 한 것이지. 결론은? 알다시피 쉽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 나폴레옹이라는 신성이 등장한 것이다. 참고로 나폴레옹은 포병 장교로 출발해서 포의 운영이 기가 막혔다고.


야망의 진실

이후의 스토리는 다들 대강 알 것이다. 오스트리아, 지금의 이탈리아(그때는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없었다.) 땅에 있던 수많은 공국들, 독일이 되기 전의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 오스만 튀르크, 심지어 이집트까지... 이들의 딱 중간에서 정신없이 오가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전투를 치르지 않을 땐 군대의 배치와 협상을 통해, 이 땅을 여기 줬다 저기 줬다, 저 땅을 가졌다가 돌려줬다 반복해 가며 혁명 체제의 프랑스를 어떻게 하든 유럽 한복판에서 유지하려 했다. 


덕분에 베토벤이 <영웅>을 헌사했고 헤겔이 찬양했다. 계몽주의의 물결로 유럽을 휩쓸 단 하나의 영웅..... 실제로, 읽어보니 나폴레옹은 점령 지역마다 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 및 신분체제, 그러니까 공화정과 분권, 교육 체제 등을 이식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점령지에서조차 종종 혁명의 아이콘이자 계몽주의의 화신으로 대접을 받았으며, 같은 이유로 왕권을 유지하고 귀족 체제를 유지하려는 많은 나라들에겐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데 이후의 행보가 석연치 않다. 알다시피... 황제가 됐으니까. 게다가 얼마 후엔 조세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왕의 딸과 재혼해서, 뭐랄까 약간의 신분 업그레이드와 함께, 그야말로 정략적인 가족 관계를 맺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알다시피 이건 과거 왕족들, 귀족들이 하던 행태 아닌가? 결국 베토벤이 실망했고 많은 지지자들이 그 지지를 철회했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는 정말 혁명 프랑스를 온전히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애국심 때문에 그랬을까?


이 책에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는 “이기심”이다. 그는 그가 점령하고 협상으로 차지한 공국의 왕위를 형제와 자매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의 형제들도 나폴레옹 못지않게 야심가였던 것. 저자가 여러 사료를 통해 말하길, 나폴레옹 또한 자신의 이기심, 자신이 원했던 권력, 업적, 불멸의 영광을 위해 움직였다고 한다. 한 사람의 엄청난 야망과 수행 능력으로 인해 유럽은 그야말로 프랑스 제국이 될 뻔했다는 말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잘 아는 그분, 넬슨 제독 때문에 나폴레옹과 프랑스 해군이 바다에선 거의 명함도 못 내밀었고, 엘바 섬에 돌아온 뒤 맞이한 백일천하를 끝낸 웰링턴 경 덕분에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 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영국의 감시 하에 여생을 보내다 1821년에 죽었다. 불과 51세... 1815년에 유배를 갔으니.. 보자 그 섬에서 6년 정도 보낸 것이다. 


놀랍지 않나? 소위 시절부터 하면 열여섯 살 때부터 유배를 간 마흔여섯까지, 그가 공적인 시간을 보낸 건 불과 삼십 년 밖에 안 된다는 것이. 이 불과 삼십 년 동안 유럽 전체가 이 한 사람을 제압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는 것이.


자신도 속았는지도...

그의 유서엔 영국에 대한 저주와 프랑스 국민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또, 자신이 프랑스를 위해 헌신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진의는 알 수 없다. 난 애초에 같은 실패를 한 두 사람, 러시아(소련) 원정의 실패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차이가 궁금했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차이는 뭘까? 최소한 내가 읽은 평전에 입각해서 생각해 보면, 나폴레옹에겐 열등감과 증오심이 없다. 당연히 복수심 같은 것도 없다. 그야말로 순수한 야망 덩어리 그 자체라고나 할까?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어떤 복잡함이 요구되지 않는다. 최소한 히틀러보단 훨씬 덜하다. 


히틀러는, 최소한 내가 읽고 느낀 바로는 콤플렉스 덩어리다. 증오심에 가득 차 있고 평생 자신의 열등감을 이겨내질 못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영광과 자신의 야망을 동일시했다면 히틀러는 자신의 증오의 대상과 열등감 해소를 위한 분풀이에 독일 국민을 동원했다고나 할까? 난 그렇게 느끼고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가장 경계해야 될 양극이다. 권력자를 바라볼 때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될 부분이고.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어두운 과거로부터 그 동기를 끌어오는 정치인과 자신의 성공이 곧 국가의 성공이며 국가가 받아야 될 영광은 곧 자신의 영광이라는 정치인.... 두 사람 다, 자기로부터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기는 매한가지다. 


생각해 보면, 또 정치인 중에 이 두 부류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싶다. 어느 정도는 이 두 성향 중 한 성향이 약간은 있지 않을까? 그런 성향들이 현실 정치를 하면서, 또는 그 정치로 가는 과정 중에 이렇게 저렇게 교정되어서 소위 국민 눈높이에 맞출 줄 아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고, 그런 정치를 하는 것이겠지... 뭐 여하간 오늘의 결론은 그렇다. 


사족- 이 책? 이 안 어울리는 책은 어떻게 할 거냐고? 그냥 재활용 종이 버릴 때 내놓을까 한다. 


사족 - 번역가가 특이하다. 통상적인 번역가라면 자기소개를 할 땐 주로 학교 전공이 뭐고, 뭘 번역했고... 뭐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지 않나? 그런데 이 양반, 특이하게도 학력 바로 다음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암벽을 올랐던 경력을 올려놨다. 심지어 사진도 그때의 사진으로... 이 책에서만 그런가 싶어서- 또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 다른 책도 찾아봤더니 거기에도 자기 이력을 그렇게 소개해 놨다. 참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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