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꽃을 보네 31
울산의 무거동과 울주군의 경계엔 울산 시내버스들의 차고지 중 한 곳인 율리가 있다. 율리에서 산으로 이어진 길은 문수산 중턱까지 차로 오를 수 있는데, 그 양 길 가에 다양한 맛집들이 있다. 등산 전, 하산 중, 또는 숲의 향기를 맡으며 식사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감독은 이 길로 접어들면서, 콩국수와 소바 중 뭐가 드시고 싶은지 물었고 난 소바를 골랐다. 감독은 저번 주에 감독의 선배인 김감독과 왔었는데 괜찮았다는 말을 했다. 저번 주에 먹었던 메뉴를 나를 위해 또 먹는 배려를 베푼 것이다.
제법 그럴듯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길 양 옆으로 이어졌다. 잠시 후, 작은 산장, 혹은 숲 속에 지어진 펜션 같은 외양을 지닌 곳이 나타났고 감독은 그리로 들어섰다. 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봉선화가 보였다. 감독은 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돌아섰고 난 꽃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붉은색 봉선화는 자주 봤지만 연분홍 봉선화는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식당의 이름은 <미도리>였다. 자연스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렸다. 내부 어디에도 일본풍의 포스터나 소품은 보이지 않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커녕 책 한 권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식당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노르웨이의 숲>은 미성숙한 청춘의 성장기다. 아니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완성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을 처음 느낀 그 시절, 그 순간, 그 깨달음 뒤에 청춘이 감당해야 될 허무와 절망을 담아낸 소설이다.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자신을, 그리고 이 미성숙한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을 나도 사랑하는 그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미도리는 그 허무와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주인공의 첫사랑의 이름이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대사에도 나오듯, 우리의 삶은 평생 미완성이다. 완벽한 하나의 수를 찾아 구획 불가능한 미래의 가능성 속에서 끝도 없이 배회하는 존재다. 그 속에서 배회 속에서 나름 최선의 수를 선택한다. 돌이켜보면 다 악수(惡手)의 연속이었다. 그날 감독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
부산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광고대행사를 다니다, 권위적이며 언어폭력을 일삼던 사장이 싫던 와중, 돈 몇 푼 더 준다는 말에 근본 없는 프로덕션으로 옮긴 것도, 그러다 대행사에서 함께 일하던 박감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또 이직을 한 것도, 그 이후 당신과 박감독이 의기투합하여 회사를 차리면서 나를 스카우트할 때 근거 없는 믿음과 의리에 이끌려 따라나선 것도, 더 나아가 그 이후 박사 과정을 간 뒤 결국엔 박사 과정을 끝내지 못하고 수료에 그친 것도 다 내 잘 못 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안고, 아니 확고한 믿음으로 한 선택이었다. 감독의 선택도 마찬가지이리라. 내가 감독의 해고 통보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일종의 선택이리라. 최선의 선택이 언제나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고, 하여 지금의 이렇게 불안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리라. 그 선택의 오류, 그 선택에 대한 반성을 담담히 할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앞으로도 그런 선택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기에 여전히 불안을 안고 잠 못 들리라. 언젠간 꽤 괜찮은 선택을 하리라 기대하며 그 불안을 몰아내며 불면을 몰아내리라.
딸이 봉숭아물을 언제 처음 들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화단 곳곳에 여러 꽃을 심으시는 3층 아주머니 덕분에 봉숭아꽃이 피었고 그 꽃을 본 아내가 딸에게 물을 들여 줬을 것이다. 아내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딸은 워낙에 신중하고 진지한 성격이라 봉숭아물을 들이기 위해 손가락에 칭칭 동여맨 비닐이 제 맘대로 놀지 않을까 걱정하며 잠을 들었다. 그건 기억난다. 아내는 걱정하지 말라며, 잘 안 들면, 아직 꽃이 남아 있으니 또 들이면 된다고 다독이며 재웠던 기억도 난다. 그러면서 봉숭아물에 얽힌,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오래된 얘기를 해줬던 기억도 난다. 그 말을 듣고 딸이 물었었다. “부산엔 눈이 안 오잖아.”
한여름에 핀 봉숭아꽃으로 물들인 손톱이 첫눈이 올 때까지 갈 리 없다. 11월 말에 눈을 볼 수 있는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도시에선 불가능한 염원이다. 아마, 몇십 년 전에는 더 이르게 눈이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염원은 허무맹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전해진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금세 그 막연함을 눈치챈다. 부산에 태어나고 자란 소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는 봉숭아물은 유년 시절 깊은 흔적을 남긴다. 주홍빛의 사라짐은 시간의 사라짐이자, 소망의 사라짐이었다. 손톱을 자를 때마다 색이 없는 부분이 아니라 색이 있는 부분이 사라진다. 당연하다. 우리가 가진 소망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망의 완수될 불가능성이 아니라 가능성이 사라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국 가능성의 사라짐이다. 시간의 경과 속에서 내가 품었던 소망은 나 자신도 잊고 타인도 잊으며 세상이 잊는다. 사라지는 가능성을 응시하며 희망을 움켜쥐고 버텨보지만 깎여나가는 손톱처럼 세월과 소망을 붙잡을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다시 못 올 순간이다. 봉숭아물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건 이것이다. 그 해 여름과 시간의 경과와 품었던 꿈들은 지금의 것이다. 그걸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시간도 사라지고 소망도 사라진다. 그 사라짐의 반복 속에서 나이를 먹는다. 움켜쥐려 했으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던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덕분에 후회는 더 짙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숨이 더 깊어지는 이유다.
나이를 먹을수록 봄을 기다리는 건 두렵기 때문이다. 겨울이 끝나면 내 삶도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외투 안으로 파드는 거센 겨울바람이 몰고 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따뜻한 공간에 있어도 밀어낼 수 없는 한기가 생의 끝을 귓전에서 예언처럼 읊조리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다시 못 올 순간들을 무심히 흘려보냈다는 걸 깨닫는다.
2월의 변덕이 새로운 봄의 가능성을 새침하게 알릴 때, 나와 같은 또래가 불현듯 깨닫는 건 무심히 흘려보낸 소중한 순간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봄이 오기 전에 우리가 깊게 취해 한참을 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시 못 올 순간을 그저 흘려보낸 죄를 1월의 설렘이 지난 후 무덤덤한 2월은 따져 묻는다. 새 봄을 맞은 자세를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 따져 묻는다.
7월 첫 주 화요일 저녁, 일찍 온 나를 보고 아내는 직감했다. 내가 해고당했다는 것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내가 그랬다. 딸을 볼 때마다, 뭐든 잘하고 예쁘게 크는 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내가 딸에게 바랐던 건 그저 건강하고 무던하게 크는 거였다. 세상에 막 나왔을 때 마음가짐도 그랬고, 돌잔치에서 찾아와 주신 손님들에게 했던 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흙처럼 물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커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딸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완벽한 아내와 완벽한 딸이다. 나만 거기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 요즘 들어 더 마음이 무겁다고, 아내에게 말을 했다. 딸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아빠가 바라는 가장 완벽한 딸이었고 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당차고 똘똘하고 학습태도가 좋다는 칭찬을 받을 때도 솔직히 그러려니 했다. 고학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아닌가. 솔직히 5학년 학력 평가에서 전교 1등을 한 거를 알았을 때도 엄청나게 좋거나 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초등학교니까.
그러나 이후, 시 영어영재에 붙고 중학교에 가서도 자기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냉철히 파악해 묵묵히 공부하는 것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내 딸은 내 상상 이상일 지도 모르겠구나. 언젠가 썼듯이 이런 딸과 아내로 이뤄진 가정에 뭔가 조합이 안 맞는 구성원이 하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그건 생각이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생전 처음, 고용 센터에 갔다 왔다.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 받은 뒤 그것이 소멸되는 조건들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우선 알게 된 건, 현재 칼럼을 쓰고 받은 원고료도 수입이라 계속 칼럼을 쓰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또, 당연하게도 이후 일회성 강연이나 여러 회에 걸친 강좌, 플랫폼을 통한 글쓰기 코치를 하여 수입이 발생해도 실업 급여는 종료된다.
결국 일정한 수입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직장을 얻기 전 사소한 아르바이트를 해도 실업 급여 자격이 소멸된다. 오십이 넘은 남자에게 정부는 예상보다 아주 긴 시간 동안 기본 소득을 보장하지만, 그 정부의 혜택을 받고 유지하기 위해선 그 사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작은 도전은 삼가야 했고, 혹은 수입보다 행위 그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꾸준히 해왔던 일을 멈춰야만 했다. 그곳에 가기 전 지역마다 있는 평생학습관에 강사 등록을 해놨다. 희망을 담아 던졌기에, 고민이다.
잠자리에 누운 딸을 꼭 안아 준다. 딸이 잠들기 전 하는 필수 의식이다. 잠을 깨어 제 방의 문을 열고 나온 딸을 꼭 안아준다. 딸의 하루를 여는 첫 의식이다. 잘 잤어? 안 더웠어? 물 한 잔 마셔. 아침 뭐 줄까? 이런 대화가 뒤를 잇는다. 딸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등교 준비를 돕는다. 물론 딱히 도울 건 없다. 왔다 갔다 하는 딸을 보며 빼먹는 건 없는지 살핀다.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거나 텀블러에 시원한 물을 담아 준다.
오늘은 딸이 “명찰 잘 달렸어?”하고 묻는다. 그 판단도 아빠의 몫이다. 일기예보를 보고 창밖을 본다. 준비된 엄마가 딸과 함께 나간다. 이따 봐요, 하는 말을 남기고 딸이 나간다. 혼자 남는다. 두 여자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 존재의 쓸모를 잃어버린 남자는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데리러 간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 “응 별로.” 이렇게 대답해 놓고는 금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준다. 선생님에게 학습 자료를 받으러 교무실에 간 일, 짝에게 수학을 가르쳐 준 일,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시켜서 앞에 나와 하나의 문장 안에 담겨 있는 각종 품사를 조목조목 설명한 일까지. 그렇게 비가 들락날락 거리는 박물관 옆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여름날, 봉숭아로 손톱을 물들인 소녀는 뒤이어 오는 가을이 아닌 그다음 계절인 겨울에 소망의 닻을 던져 놓는다. 심지어 언제 올지 가늠도 안 되는 첫사랑을 향해서도. 소망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렇기에 우린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있다. 기다리며 바랄 수 있다. 어디만큼 왔는지, 오기는 하는지, 그런 게 있기나 하는 건지 여전히 모르지만, 모르기에 우리는 오늘 밤 잠들 수 있다.
오늘, 학원 차를 기다리며 딸이 그랬다. 자기는 평균 이상의 삶을 살고 싶다고. 연봉도, 직장도, 집도.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넌 이미 글렀다. 넌 이미 평균 이상의 이상이다. 친구들은 너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그 꿈은 고이 접어둬라. 그렇게 말해줬다. 딸은 싱긋 웃고 말았다. 이후, 세계사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서 집에 관련한 책이 두어 권 있다고 알려줬다. 또, 미국의 법과 한국의 법의 차이에 관해 짧은 대화를 나눴다. 석사 시절, 미국의 언론 법에 관해 배울 때, 케이스를 중심으로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의 발전 과정에 대해 배웠던 기억을 꺼내어 말해줬다.
다시 집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을 쓴다. 난 내가 살았던 집중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살고 있다. 딸은 이 집이 자신이 살았던 집중에서 가장 안 좋은 집이길 바란다. 그러나 돌아보면, 평생 가장 따뜻했던 집이길 바란다. 오늘 저녁은 육전을 고명으로 얹은 비빔밥을 해주기로 했다.
브런치북 연재는 30회까지여서 새로 연재 브런치북을 만들어 연재를 이어간다. 아직 남은 계절이 있고 만나야 될 꽃이 있기에. 그리고 아직 남은, 아니 아직 살아보지 않은 계절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