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것들이 모여 만든 장관

딸과 함께 꽃을 보네 34

by 최영훈

글이 쌓이면 뭐가 될까?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 씨의 에세이집 제목이다. 아침마다 온라인 서점을 기웃거리다 보면 종종 이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저 제목에 위로를 받는다. 생각해 보면 저런 바람을 마음에 품지 않으면 무엇 하나 해낼 수 없지 않나. 희망이든 소망이든 바람이든 먼 미래 앞으로 마음을 던져 놓기 위해서는 오늘의 하찮은 것들을 우선 긍정해야 한다.


내 브런치스토리엔 777개의 글이 올라가 있다. 현재까지 이코노믹톡 뉴스에 183개의 칼럼을 송고했다. 2020년 7월에 연재를 시작하여 매달 세 개씩 써서 보내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 사이 뭔가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브런치스토리를 보고 원고를 의뢰받은 적이 두 번 있었다. 그게 다다. 그동안 참여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된 적도 없고 출판사로부터 출판 의뢰를 받아본 적도 없다. 딸의 초등학교 1학년을 기록한 원고로 출판 계약까지 하고 심지어 계약금까지 받았지만 결국 출판사 사정으로 무산된 이후, 출판과 관련하여, 책과 관련하여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져서 쓰고 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당신이 꽃이 피기 전의 맥문동을 알아본다면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거나 한약재를 공부한 사람이거나 꽃을 좋아하거나, 맥문동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꽃이 피기 전의 맥문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얼핏 잔디 같아 보인다. 조금 덜 자란 보리 같기도 하다. 나무 밑에 모여 자라는데 줄기도 잎도 평범하기 그지없고 그 둘의 구분도 쉽지 않아서 잡초처럼 보인다. 사실 꽃이 펴도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인다. 라벤더보다 조금 연한 보라색의 꽃이 피는데 솔직히 말해 꽃이 크지도 않고 모양이 유별나지도 않다. 워낙 꽃이 작다 보니 한송이를 구별하여 감상할만한 꽃은 아니다.


맥문동은 모여 피어 있을 때 장관을 이룬다. 맥문동을 볼 수 있는 곳 중 인상 깊은 곳을 하나 꼽으라면 경주의 황성공원이다. 황성공원은 경주시립도서관과 시민운동장 사이에 있다. 공원 전체에 소나무가 심겨 있고 그 사이, 거의 모든 지면에 맥문동이 심겨 있다. 마치 잔디처럼 말이다. 꽃이 피기 전까지 소나무와 맥문동이 같은 색을 한 채 초록의 여유를 선사한다. 그러다 8월이 되어 맥문동이 보라색 꽃을 드러내면 소나무는 보라색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운이 좋아 아침나절에 약간의 안개까지 껴주면 그 신비함이 배가 된다.

부산시립박물관 산책로, 2022년 7월에 찍은 사진이다.

이런 신비함은 울산의 대왕암 공원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소나무는 더 굵고 그 간격이 더 넓어서 사이로 빛이 더 많이 들어온다. 게다가 바로 앞에 바다가 있는 탓에 날씨 변화가 심하여 해가 뜰 때쯤이면 해무가 짙게 끼곤 하여, 해무와 소나무, 그리고 맥문동이 선사하는 신비로운 광경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나랑 일했던 감독도 이 장면을 담기 위해 근처에 숙소를 잡아 놓고 삼일 연속, 새벽마다 촬영을 하러 가야 했으니 말이다.


덧없는 것들이 모인 뒤에

하찮은 것들이 모여 장관을 이룰 때가 있다. 홋카이도의 후라노에서 만날 수 있는 라벤더와 밀밭의 풍경도, 가파도의 청보리밭의 감동도 그렇다. 하나를 뜯어보고 손에 움켜쥐어 보면 그저 하찮은 풀이다. 불면 날아가는 꽃이다. 그 작은 것들이 모여 장관을 이룬다. 경치를 이루고 사람을 불러 모은다. 그 장관, 그 경치, 보는 이의 감동을 생각하며 누군가가 그렇게 열심히 하나씩 심었을 것이다. 마치 수 만개의 도미노를 세우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심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하찮은 것들이 모여 작품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그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른다. 이 덧없는 시도들, 하찮은 노력들, 주목받지 못하고 선택받지 못하는 온갖 결과들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파도가 될 그 순간이 언제일지, 나는 모른다. 도미노 작품은 밑그림도 있고 개수라도 정해져 있지만 인생의 모든 시도엔 그런 게 없다. 김민기 선생님이 <봉우리>라는 노래를 통해 하려 했던 말도 이와 같다.


낯선 산을 처음 오를 때, 그 막연함을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이정표는 정확한 거리를 표시하지만 그 거리의 체감은 평지에서의 그것과 달라서 1km가 10km처럼 느껴진다. 어찌어찌 허우적대며 올라 정상에서 야호하고 함성이라도 지르고 나면 이젠 내려가야 한다. 내려간 뒤에 다시 산을 오르고 싶으면 그 고생을 반복해야 한다. 사는 것도 비슷하다. 작은 성공 뒤에 또 다른 역경이 기다린다.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다 고통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하여, 저 노래의 가사처럼 정상에 올랐다가 고함을 지르고 너무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이어질 산 생각에 미리 낙담하여 벌러덩 누워 있을 필요도 없다. 오르고 내려가고 오르고 내려가고.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반복들이 모여, 뭐가 돼도 된다. 안 되면 또 어떤가? 그 반복 속에 다름을 찾아 행복을 느끼면 된다.


등 뒤에 있는 딸을 느끼며

그렇게 글을 오래 썼는데 맘에 드는 글이 흔치 않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못 쓴 문장과 글을 눈치채는 시간은 짧아져서 고치는 시간이 짧아졌다. 문장을 수술하겠다는 결단도 빨리한다. 읽기 편한 글을 쓰는 데는 좀 근접한 것 같다. 그렇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런 발전이라도 없었으면 벌써 이 “지랄”을 그만뒀을 테니 말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내 등 뒤에서 딸은 국어의 품사를 공부하고 있다. 이미 배운 것을 노트를 정리하면서 한 번 더 복습하고 있다. 아니, 다시 보니 그건 이미 끝냈고 수학으로 넘어갔다. 이차방정식을 풀고 있다. 쌓인 공부의 시간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딸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방학 중에도 짬을 내어 그 시간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난 저 나이 때 그 인생의 비밀을 몰랐다.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마흔이 넘어 더 열심히 책을 읽었고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간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를 하며 이 글도 나름 공들여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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