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

딸과 함께 꽃을 보네 33

by 최영훈

그 영화의 한 장면

대학에 들어갈 때쯤,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가 정식으로 수입되어 들어왔다. 그래서 영화 좀 본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일본 영화, 그것도 과거의 유명한 명작이나 최근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를 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내가 살던 평택의 안정리라는 작은 동네의 비디오 가게에도 일본 영화 코너가 따로 마련될 정도였다. 그때, 여려 영화를 봤는데, 그중 한 편이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다. 줄거리는 대략, 가난한 산골마을의 생존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데, 유독 한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동네에 여자가 귀한 탓에 나이 든 아들이 아직 여자 경험이 없자, 그 어머니는 이웃의 늙은 여자에게 관계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늙은 여자는 이제는 잘 안 될 거라며 거절하지만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관계를 하게 되는데, 이후 늙은 여자의 대사가 강렬하다. “아직 된다니. 믿기지 않아. 아직 된다니.......” 구체적인 대사는 다를 수 있지만 의미는 딱 저런 의미였다. 늙은 여자는 자신이 아직 여자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감격했다. 기능 상실에 대한 걱정은커녕 한창이었던 나이에 저 영화를 봤지만 이 장면은 그 뒤에도 종종 생각나곤 한다.


죽지 않은 배롱나무

죽은 거냐? 겨울과 봄날의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중얼거린다. 겨울을 나는 나무가 다 앙상하지만 배롱나무는 유독 더 처절해 보인다. 다른 나무는 다 있는 껍질도 없고 순이나 싹의 조짐도 없다. 죽은 거냐는 질문이 절로 나온다. 그대로 베어내 꼬부랑 할머니의 지팡이로 써도 될 것 같다. 그러다 날이 좀 뜨거워진다 싶으면 슬슬 꿈틀댄다. 잎사귀의 조짐을 슬쩍 보인다. 살아 있네, 살아 있어. 괜스레 웃음이 난다.


배롱나무는 보기와 달리 강하다. 매연과 소음에도, 추위와 더위에도 강하다. 땅도 물도 공기도 가리지 않는다. 고속도로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는 건, 이 남다른 강함 때문이다. 배롱나무는, 말랐지만 그저 야윈 것이 아니다. 마치 막 개체를 끝낸, 지방질과 수분 이 다 빠진 경량급 격투기 선수처럼 그 안에 강렬한 에너지와 근성을 품고 있다. 말랐지만 강단 있다. 죽은 듯 하나 죽지 않았다. 오히려 안으로 꿈틀거린다. 생명의 강단이 흔들림 없이 자리하고 있다.


나를 일으키는 힘

나의 평가는 나와 타자로부터 나온다. 앞서 영화 속 늙은 여자처럼 자신의 역량을 지레짐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검증할 기회가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살 수 있다. 내가 내린 나에 평가다. “틀렸어. 먼저 가. 난 여기까지야.”와 같은, 산악영화에나 나올법한 대사를 스스로에 던지는 삶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살았다. 엄청난 도전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적당한 곳에서 하며 사는 데 만족하며 살았다. 때문에 딸의 꿈을 처음 들었을 때 당황했다. 살면서 검사와 변호사, 판사도 만나 본 적 없고 주변은 물론이고 몇 다리 건너서도 그런 사람과 닿을 리가 없는 데, 딸은 그런 직업을 꿈꿨다.


꿈은 마치 낚시와 같다. 평생 낚시를 딱 한 번 해봤는데, 이상하게도 낚시 채널은 가끔 본다. 그러다 십몇 년 전 샤크라는 프로 낚시꾼의 영상을 보게 됐는데, 남태평양에서 거대한 참다랑어나 돛새치를 잡는 영상이었다. 그걸 잡기 위한 그의 채비는 거의 경찰특공대의 중무장을 연상시켰다. 낚싯대는 첨단 소재와 장비가 녹아든 것이었고 그의 조끼를 비롯한 보조 장비 또한 철저히 힘과 크기, 난폭함이 다른 물고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그 “대상어”를 대비하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그가 탄 배의 성능도 그랬다.


딸의 굳은 심지

큰 꿈을 미래에 던져 놓으면 그걸 낚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 꿈을 품은 이후, 딸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깨달았다. 딸은 흔들림 없이, 묵묵히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거대한 고래와 같은 그 꿈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의지였고 실행력이었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사람은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딸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학교와 반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는 세간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가 흔들리지 않으면 세상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안다. 세상이 흔들려도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난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무서운 의지이자 집중력이다. 안전가옥은 지하에 있지 않다. 자신에게 있다. 딸을 보며 알게 된다.


요즘 우리 집의 가장 큰 이슈는 딸의 가발이다. 2학기부터 벗고 가냐 마냐를 놓고 종종 옥신각신한다. 현재 딸의 머리칼 상태는 전성기 시절의 미아 패로우를 연상시킨다. <사랑과 영혼>에 나왔던 데미 무어보다는 훨씬 짧다. 엄마는 좀 더 쓰고 가자는 입장이고 나와 딸은 번거로운데 그냥 가자는 입장이다. 특히 딸은 헤어스타일 따위에는 거의 초월한 듯하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십여 년 전 이야기다. 딸의 미래를 생각해서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싶었다. 구직 사이트에서 경력직을 원하는 홍보 관련 부서를 찾아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제출했었다. 특히 병원들에 많이 보냈다. 단 하나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하소연했다. 아내가 그랬다. 나라도 당신 같이 나이 먹은 사람은 뽑지 않겠다고. 전공을 했어도, 관련 분야에서 꽤 오래 경력을 쌓았어도 나이를 먹은 사람은 구직 시장에서 찬밥이다. 사람의 총명함과 명석함이 나이에 연동된 능력이 아니라는 걸, 문해력과 인성이 바닥인 요즘엔 더 느낄 테지만 다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이 든 사람을 꺼린다.


다들 수명이 다했다고 할 때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실제로 죽지 않았고 한창때이며, 팔팔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처럼 생명력 있는 존재여도 그 상태를 그대로 말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증명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객기를 부릴 필요도 없고 다른 살아 있는 것을 흉내 낼 필요도 없다. 살아 있는 것은 때가 되면 그 살아 있음을 세상에 보여줄 때가 있다. 다른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중에서 유독 그것만 요구하는 때와 장소가, 사람이 있다. 그러니 한 때를 풍미했던 러시아의 영화 제목을 빌어 와 말하자면 얼지 않고 죽지 않고 있으면 부활한다. “아직 된다니.”하고 스스로에게 놀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저씨>의 그 유명한 대사를 조용히 뱉어 본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커버의 배롱나무는 부산시립박물관 뜰에서, 작은 배롱나무는 부산국립국악원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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