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행운

딸과 함께 꽃을 보네 36

by 최영훈

우연히 마주친 여름의 보라

8월 둘째 주, 어느 날, 아내가 좀 걸을 겸, 근처 슈퍼에 장을 보러 가자고 했다. 항암 환자들, 항암 치료 이후에도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하는 환자와 그 가족이 애용하는 작은 슈퍼였다. 그 슈퍼는 구청 근처에 있어서, 가는 김에 지역 화폐에서 설정한 미션 수행을 위한 QR 코드 촬영도 하자고 했다. 그렇게 아내를 따라 구청에 가서 아내의 미션을 지켜본 뒤, 돌아서는데, 커다란 항아리에 담긴 수중 식물이 보였다. 부레옥잠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봐 온 그 식물이 날 붙잡았다. 사진을 찍었다.


부레옥잠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 위에 동동 뜬 그 초록의 오동통한 식물을 못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꽃은 어떤가. 부레옥잠의 꽃을 본 적이 있나. 기억을 하나. 난 솔직히 이날 부레옥잠의 꽃을 처음 봤다. 너무나 신비해서 빗속에서 우산을 받친 채 한참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뉴스가, 마치 적군에게 밀리고 있는 전선의 전황을 알리는 전령처럼 폭염의 습격을 연일 보도하는 와중에도 꽃들은 자기 할 일을 한다. 봄이면 끝일 줄 알았던 보라색은 여름의 햇살을 묵묵히 받아내면서 능소화를 도와 여름을 수놓고 있다. 앞집의 <도라지꽃>도 그렇고, 문화회관 뜰에 뜬금없이 나타난 <비비추>와 <꽃 범의 꼬리>도 그렇다. 심지어 두 꽃은 그 휑한 초록 벌판의 테두리를 보라색으로 장식하며 뜨거운 햇살과 가차 없이 쏟아지는 폭우도 견뎌냈다. 그러나 단연, 여름의 보라는 부레옥잠의 꽃이다. 술붓꽃의 뺨을 후려칠만한 화려한 자태다. 물 위에 슬며시 떠 있는데, 무심한 사람이면 잎에 가린 꽃을 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난 운이 좋은 편이다.


초조했던 한 달

7월 중순부터 한 달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나만 마음이 부산했다. 해고를 당한 중년의 사내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단 한 번도 아내보다 많이 번 적 없지만, 수입이 없던 적은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난 실업 급여를 받는 것이 싫었다. 다만 얼마라도 벌고 싶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고 세상의 흐름 중 그 잘하는 것에 맞는 것이 있다면 그 흐름에 재빨리 들어가야 했다. 작년부터 지켜봤던, 문해력 이슈는 사교육의 상품이 되었고 시장을 형성했다. 난 그 시장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전공과 직업과 상관없이 별의별 책을 취미 삼아 읽어온 사내, 꾸준히 칼럼을 쓰고 글을 써온 사내, 한 때 십여 년 간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던 사내라면 해볼 만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계정이 사라진 구직 사이트의 계정을 복원하고 이력서를 만든 뒤 “독서”, “글쓰기”, “문해력”, “논술” 같은 키워드로 검색했다. 처음엔 부산, 그것도 집 주변의 센텀시티와 유명한 학원가인 남천동, 해운대 등으로 지역을 한정했으나 점점 넓혀갔다. 동해선을 타야 하는 일광, 한 번도 안 가본 정관 신도시까지로 그 범위를 넓혔다. 그 사이, 부산의 유명한 학군지인 동래, 연제구 등이 당연히 포함됐다. 이후 최근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학원가인 명지 신도시를 추가했다.


이력서를 낸 곳은 주로 독서 교육을 표방하는 학원이었다. 물론 내 신념 하곤 어긋난다. 난 한 번도 딸에게 “독서교육”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독서라는 것이 교육으로 될 거였으면 우리나라 출판계와 서점들이 이렇게 불황의 늪에 허덕이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국어(딸을 통해 처음 들었다.)”라는 말이 당연하게 통용되는 요즘, 국어 실력 없이는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공포가 학부모들에게 퍼져 있는 요즘, 이 시장은 소위 말해 블루 오션이라고 판단됐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 들어가야 했다.


나이가 걸림돌이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남자라는 사실도 문제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관련 학원에선 여자 선생님을 선호했고 중학생 이상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선 젊은 선생님을 선호했다. 그들이 낸 공고문의 행간이 그리 읽혔다. 그 행간은 내게 포기를 종용했다. 그 종용과 함께 실업급여를 신청하라는 아내의 종용도 있었다. 두 종용 사이에 있는 동안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력서를 열람했다는 구직 사이트의 알림 메일은 오는 데, 단 한 통의 전화가 오질 않았다.


걸려 온 전화

실업급여를 신청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날, 전화가 한 통이 왔다. 명지에 있는 학원이었다. 브랜드가 있는 학원이었다. 내 학력과 경력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마침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길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근무조건, 연봉, 내게 기대하는 바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원장은 내 말하는 스타일이 이곳 학생들한테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우리 집에서 그곳까진, 한 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난 괜찮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범 강의를 해주실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난 괜찮다고 했다. 마침 딸이 중학교 1학년이니 내용을 잘 안다고도 했다. 8월 셋째 주, 수요일, 시범 강의를 하기로 했다.


면접을 봤다. 시범 강의도 했다. 그 학원은 브랜드가 있는 학원으로, 나름 교재와 잘 짜인 조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초등부부터 중등까지였고, 고등부는 계획에도 없었다. 건물의 다른 층을 더 임대하여 확장할 계획이 있어 강사를 충원해야만 했다. 원장은 솔직하게 의견을 말해줬다. 매력은 있다. 잘하실 것 같다. 그런데 초/중등보다는 오히려 고등부, 비문학 쪽에 잘 어울리실 것 같다. 고민이 된다. 8월 중으로 연락드리겠다. 이게 원장의 대략적인 코멘트였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나만이 가진 장점을 얘기했다. 문자를 주고받으며 함께 보낸 서평 블로그를 소재로도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하든 날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돌아오는 동안 기진맥진했다. 집에 오자마자 서재에 앉아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비문학 강사를 원하는 곳을 찾아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여름 방학,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

딸의 여름방학은 짧았다. 3주 정도 됐던가. 그중 일주일 정도는 영재 교육의 집중기간으로 보냈고 그 뒤부터는 수학 학원의 특강으로 보냈다. 이 방학 동안 우리 가족은 가발을 벗고 등교하는 시점을 두고 그야말로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딸은 가발 따위, 더워 죽겠는데 이제 벗고 가도 된다는 주의였고, 아내는 그래도 좀 머리카락을 예쁘게 다듬을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는 가발을 쓰고 갔으면 했다. 난 딸의 편이었다. 올 초, 딸의 항암 치료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가발을 쓰고 등교를 시작했을 때, 난 딸에게 말했었다. 네가 가발을 벗고 학교에 갈 때쯤, 아빠 신변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이었다. 딸은 9월부터 가발을 벗고 가기로 했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AI에 떠밀리듯 쫓겨난 카피라이터가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 국어를 가르치는 일로 제2의 인생을 살기로 작정했다는 것이 말이다. 딸에게도 9월부터는 제2의 입학이다. 지난겨울의 투병이 남긴 흔적을 다 털어내고 홀가분하게 학교 가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뜨거웠던 여름이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 주리라. 9월만 되어도 여름의 창끝은 무뎌지리라. 그 시원함을 자신의 머리칼로 느끼며 학교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을 씩씩하게 올라 등교하리라. 딸과 나는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딸에게 물었다.

“너 부레옥잠 꽃 본 적 있어?”

“응? 어~ 부레옥잠은 본 적 있는 데, 그게 꽃이 있어 아빠?”

“응. 있더라고. 심지어 술붓꽃처럼 화려하더라고.”

딸에게 찍은 꽃을 보여줬다.

“오~, 예쁘다.”

“그지. 아빤 운이 좋았던 거더라.”

“왜?”

“검색해 보니까. 부레옥잠 꽃은 피면 하루 만에 진데.”

“진짜?”

“응. 그런데 마침, 엄마랑 딱 그때, 구청에 갔던 거였지.”

“와.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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