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꽃을 보네 37
요즘, 산을 간다. 높은 산은 아니다. 심지어 집 앞 황령산도 아니다. 그저 부산문화회관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매일 가는 것도 아니다. 일요일 오후, 아내는 TV를 보고 딸은 공부를 할 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못 찾을 때 운동 삼아 그 산을 간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은둔의 위로를 준다. 은둔의 위로가 필요한 곳엔 언제나 사찰이 있다. 이 산에도 문수사라는 절이 있다. 사찰 옆으로 등산로라 부르기엔 민망한 평탄한 길이 나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비가 오면 걷기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갔는지 길 위로 가마니가 덮여 있다. 맨 땅의 탄력이 멀게 느껴져서 난 별로다. 산길은 마르면 마른 데로, 젖으면 젖은 데로 놔두는 것이 낫지 않나. 걷기 편한 길은 산 아래 널려 있다.
이번 일요일엔 두시쯤 갔다. 더울 때다. 아내는 더위의 극성이 한 풀 꺾인 네 시 넘어서 가라고 말을 하지만 덥기는 매한가지다. 그냥 갔다. 힙 색에 어깨 끈이 달려 있어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인 작은 배낭에 스포츠 타월과 달리기 할 때 늘 끼던 장갑, 이온 음료, 휴대폰, 그리고 가벼운 근력 운동을 위해 탄력 밴드 하나를 넣었다. 집을 나섰다. 중턱의 체육공원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부산문화회관 넘어 일제강제동원역사관 동편으로 빠지면 최근 새로 조성된 숲길이 나온다. 그 길을 걸어 오르면 문수사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길 빠져나와 문수사의 서편을 끼고 걸으면 체육공원이 나온다. 그 길에 들어가자마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해를 가린다. 길 한쪽엔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서 있는 데, 위화감이 없다. 소나무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나보다 굵은 몸통으로 하늘을 바치고 선 채, 해 아래 나를 숨겨주고 있다. 아파트의 소음까지 막아준다. 은둔의 시공간이다.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 새소리가 들린다. 흔한 새들이다. 박새와 딱새들이다. 자세히 보니 얼룩말의 무늬를 닮은 작은 새도 보인다. 몇 년 전부터 뜬금없이 찾아오는 후투티인가 하고 봤더니 그보다 작다. 게다가 후투티는 비둘기처럼 잔디밭을 서성이지 나무 위에 있진 않다. 혹시 딱따구리 종류인가, 생각을 하고 집에 와 검색해 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이런 도심 속, 작은 산에도 생명이 깃든다. 나비는 물론이고 잠자리와 메뚜기도, 그걸 잡아먹는 온갖 새들도. 도토리나무는 열매를 땅에 떨어뜨려 자신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유지와 새로운 탄생을 돕고, 족히 수십 년은 됐음직한 소나무들은 이 모든 작은 것들의 은신처가 되어 준다. 나도 그 그늘 아래에서 몸을 꼼지락거렸다.
이온음료 한 모금을 들이켜다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노란 꽃이 보였다. 황매화인가, 지금쯤이면 다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가갔다. 황매화다. 작은 국화 같기도 하고 작은 솜뭉치 같기도 한 겹황매화다. 찾아보니 다른 황매화와 구분하여 부르기 위해 죽단화라 부르기도 한단다. 다시 생각을 했다. 왜 아직 피어 있지.
황매화를 밀어낸 모든 가지 끝엔 꽃이 사라졌다. 이미 질 것들은 다 졌다. 수 없이 뻗어 나온 가지들 중 꽃을 달고 있는 건 두 개 밖에 없었다. 그 아래, 다른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도 두 송이 밖에 없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늦게 나온 녀석들이 이 고통스러운 여름을 견뎌내는 것인지, 여름을 견뎌낼 만한 녀석들이 선별되어 봄을 그냥 보내고 지금 나온 것인지, 늦봄에 다 같이 핀 녀석들 중 강하고 끈질긴 녀석들만이 남아 이 한여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것인지, 난 알 수 없다. 다만, 그 덕에 잠시 봄 기분을 낼 뿐이다.
상투적으로,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목숨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다. 아니, 세상의 모든 일은 오는 데도, 가는 데도 순서가 없다. 그 모든 타이밍은 다 제각각이어서 다른 이의 이른 타이밍과 늦은 타이밍을 부러워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어디 타이밍만 그럴까. 피는 장소 또한 마찬가지다. 축제에 주인공이 되어 인파의 물결을 견뎌내는 꽃이 있는가 하면 대로의 가로화(街路花)가 되어 사람과 함께 자동차의 열기까지 견뎌내는 꽃이 있다. 세간의 주목과 견뎌야 될 고통은 비례하여 꽃의 수명이 길래야 길 수 없기에 그나마 수명이 길고 질긴 꽃이 이런 꽃으로 선택된다.
반면 한갓진 곳에 피어난 꽃은 외롭다. 물론 꽃이 외로움을 알겠냐마는 외로워 보이기는 하다. 사람이 가꾼 화단에 사람이 심은 꽃은 다른 꽃과 촘촘히 이웃하여 피지만 들과 산에 피는 꽃 중에 홀로 덩그러니 피어 있는 꽃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자신의 무리는 저기 있는 데 홀로 뚝 떨어져 있다. 이날 본 황매가 그랬다. 늦게, 홀로 피어 여름을 나고 있었다.
독서/논술/문해력 시장에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 부산에선 최근 1,2년 사이 그 현상이 체감된다. 내가 사는 대연동에서 부산 지하철 2호선의 종점인 해운대의 장산역 사이에 독서“만”하는 한 학원 브랜드 가맹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최소한 대여섯 개는 된다. 사설 학원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가르쳐 왔던 영역에 출판 및 교육 관련 대기업이 뛰어든 뒤 드러난 현상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생,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커버하는 완벽한 교재, 좋은 시설, 합리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한 교육 방법까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뭔가에 홀린 듯 이 시장에 기꺼이 소비자가 되고 있다.
<티쳐스> 같은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영어는 당연하고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도 문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게다가 수험생들 사이에선 소위 비문학-요즘에는 독서라고 불린다. -은 국어 영역의 가장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버렸다. 딸이 미리 봐두겠다고 사온, 이 영역의 <전국연합 학력평가 기출문제집>을 들여다봤다. 처음부터 하이데거와 사르트르가 나온다. 몇 장 넘기니 들뢰즈가 나온다. 어휘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겐 문제 풀이는 고사하고 읽는 거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당연하게도 읽고 이해만 한다면 지문 안에 답이 있다. 그러나 읽는 거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난공불락의 요새인 것이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다.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수능 국어 45문제 중 문학이 17문제, 독서(비문학)가 17문제, 선택 과목인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에서 11문제가 나온다. <화법과 작문>은 너무 쉬어서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참고서도 거의 없다는 말이 돌 정도이고, <언어와 매체>는 국어사와 문법이 주 내용인데, 문법은 중학교 수준이다. 그러니 당연히 수험생 입장에선 앞선 두 분야의 서른 네 문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총 열 종인데, 수능시험의 지문은 당연히 이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교과서 위주의 공부는 불가능한 과목이다. 공포는 비즈니스가 된다. 보험 상품도, 건강식품도, 상조 상품도, 심지어 화장품과 치약 같은 제품조차도 공포를 기반으로 한 위협소구가 먹힌다. 문학은 그나마 장르가 구분되어 있어 소위 읽어내는 방법, 감상하는 방법이 존재하여 낯선 지문을 봐도 그럭저럭 헤쳐나갈 수 있지만, 비문학은 차원이 다르다. 현재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큰 공포 마케팅은, 내가 봤을 때 문해력, 독서, 그리고 비문학이다.
첫 번째 면접을 보러 간 곳은 이런 소비자의 공포를 정확히 파악해 상품화에 성공한 곳이다. 원장이 교재를 보여줬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ㆍ균ㆍ쇠>를 산산조각 내서 교재로 만들었다. 초등학생이 두꺼운 책을 잡고 읽으면 당연히 내용이 잡힐 리 없다. 그러니 조각낸 것이다. 조각내어 지문으로 만든 뒤, 그에 맞는 문제도 곁들였다. 초등학생이 이런 걸 읽을 필요가 없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들어갔다. 면접을 보러 왔으니까. 선생들도 완독 안 했을, 아니 못했을 책을 이렇게 조각내서 읽히는 건 일종의 아동 학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것도 떨쳐냈다. 면접을 보러 왔으니까.
한 시간 정도 대화를 했다.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나이 얘기는 그나마 나았다. 원장은 내 학력에서 검정고시 부분이 궁금했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수십 년 만에 받아보는 질문이었으나 차분히 대답해 줬다. 다른 선생님, 특히 여자 선생님과의 협업 능력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었다. 광고계의 인적 구성에서 대해서 설명해 줬다. 나왔는데 피곤이 몰려왔다. 집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통근 거리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월급도 그만하면 됐다. 물론 근무시간은 특이했다. 월, 화를 쉬고 수, 목, 금, 토, 일을 일한다. 오후 두 시에 출근해, 밤 열 시에 끝난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원장은 고민해 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두 번째 면접을 봤다. 원장은 수학 강사였는데, 독서/논술 부분을 믿고 맡길 사람을 원했다. 물론 그곳도 영업을 위해 유명한 독서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원장 스스로 그것은 그저 마케팅을 위한 것이지 본질은 아니라고 했다. 후의 프로그램은 “믿고 맡긴”사람이 세팅해 주길 원했다. 이 지역은 부산의 학군 지라 불리는 해운대 등지의 아이들처럼 깊이 있는 논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다고 했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난다고.
그 얘기를 듣고 솔직히 얘기했다. 자신 있다. 그러나 한두 달 공부가 필요하다. 연구도 좀 해야 한다. 물론 독서(비문학)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보고 국어 과목도 개설해 보라고 했다. 다시 솔직히 얘기했다. 문학, 특히 고전문학은 나도 다시 공부가 필요하다고. 여하간 좋게 얘기가 끝났다. 연락을 준다고 했다. 물론 월급은 적지만 근무시간도 인간적이고 재량권도 있다. 앞으로의 경력을 보면 후자가 더 유리하다.
다시 출발선 앞에 선 기분이다. 덕분에 서른 살 때가 생각난다. 부산에 처음 왔을 때, 딱 서른이었다. 2002년, 봄,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한 채 부산에 내려왔다. 어머닌 결혼한 미국 남자를 따라 텍사스로 떠났다. 지금의 아내, 당시 애인이었던 사람이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그래서 내려왔다.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한 채 부산에 내려왔다. 수도 없이 면접을 보고 입사시험을 치렀지만 안 됐다. 결국 학원 강사를 했다. 지금은 재개발 지역으로 동네 전체가 공동화된, 문현동이라는 곳에 있는 아주 작은 학원이었다. 그곳에서 매일 저녁,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를 가르쳤다. 그때는 불과 몇 년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인생이란 참...
인생이란, 참 묘해서, 다시 출발선 앞에서 서 버렸다. 적당히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환갑이 되어서 마누라 눈치 보며 은퇴할 생각이었다. 그도 아니면 유학 가는 딸을 따라가서 운전이나 해주고 <이퀄라이저>의 주인공처럼 단순 노동이나 하며 딸 뒷바라지나 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참 묘해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늦게 피겠다고 작정하지 않았지만 늦게 펴 이 뜨거운 여름을 나버리고 있는 황매화처럼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