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뭐가 될지 모른다.

딸과 함께 꽃을 보네 38

by 최영훈

때마다 푸른, 이웃의 식물들

한 동네 오래 살다 보면 집집마다 계절 따라 피는 꽃이 짐작된다. 때문에 어떤 집에서 특정 계절에 피어야 할 꽃이 안 피면 걱정이다.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행여나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돌아가신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마다 내놓는 재활용 폐지가 하루가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을 때 드는 걱정의 그 결과 같다.


식물도 반려동물과 같아서 주인이 제일 잘 안다. 꽃을 만끽하고 반려동물의 재롱을 즐기는 가족이라도 주인만큼 잘 돌볼 수는 없다. 주인이 가장 애정을 쏟아 키운다. 우리 동네처럼 단독 주택이 많은 집에선 각 집마다 마당도 넓고 대문 위에 화단도 얹고 있다 보니 심은 나무와 화초가 많다. 이들의 성격이 각기 다르고 꽃과 열매가 피고 맺히는 시기가 다르다 보니 늘 관심 있게 지켜보는 주인이 아니면 금세 시들거나 죽기 십상이다.

낯선 선인장

늘 지나가며 보던 것이라도 때를 놓치거나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꽃과 열매가 있다. 설령 보더라도 무지로 인해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도 있다. 지난 6월이었다. 일전에 얘기했던, 줄지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빨간 벽돌집들 중 맨 마지막 집은 대문 위, 작은 화단에 선인장들 무리를 이고 있다. 그 집 앞을 지나는데 선인장 끝에 노란 꽃이 폈다. 딸과 함께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야, 색깔이 수선화 뺨치는구나, 하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두 달 뒤, 8월의 어느 날, 그 집 앞을 또 지나다 꽃이 여전한지 고개를 들어 봤다. 꽃은 없고 보라색의 열매가 선인장의 테두리로 올라 와 있다. 마치 만화에서 벌에 물린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그 부어오름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처럼. 노란색 꽃이 떠난 자리에 보라색 열매가 올라오는 선인장이라니, 하고 혼자 감탄하고 지나갔다. 세상엔 참 신기한 식물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곁들이면서.

그렇게 몇 주 지난 후, 불쑥 생각이나 찾아보니 그 유명한 천년초였다. 천년초는 백년초와 닮았으나 다른 종류다. 백년초는 제주도에서만 난다고 한다. 우리가 제주도 여행에서 사 오는 백년초 초콜릿에 들어가는 그 백년초가 바로 선인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반면 천년초는 한반도에 자생하는 것으로 두 선인장의 외모는 비슷하고 꽃도 닮았으나 가시의 모양과 열매가 붙어 있는 모양새가 좀 다르다.


궁금하여 더 찾아봤다. 아니 왜 우리나라에 선인장인가. 이게 말이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천년초는 진짜 토종이었다. 영하 20도에서도 견딘다고 한다. 그럼 인정이다. 반면 백년초는 아열대성으로 따뜻한 곳에서만 자란다. 설에 의하면 배에 그 씨가 묻어와 제주도에 뿌리를 내린 뒤, 제주도의 식물이 됐다고 한다. 고향은 멕시코이나 살다 보니 한국에 정이 들어서 아예 정착한 크리스티안이라는 재한외국인이 생각나는 설이다. 어디 백년초뿐이겠나. 홍합도 그렇게 우리 조개가 됐고 요즘엔 톱날꽃게가 난데없이 등장한 지 십여 년 만에 생태계 교란종에서 맛있는 갑각류로 그 의미가 전환되고 있는 중이지 않나. 참, 식물이나 동물이나 앞날은 모르는 것이다.


국가 공인 실업자

실업급여 신청을, 결국 했다. 해고와 취업이, 이직과 전직이 물 흐르듯 이어지길 바라며 여름을 버텼건만 끝내 소망대로 되지는 않았다. 9월부터 일해 줄 수 있냐며 희망적인 말을 했던 두 번째 면접지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손은 벌리지 말자는 자존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활보호대상자와는 달리 실업급여는 한 개인의 문제이기에 아내가 얼마나 직장이 좋은지는 상관이 없었다. 나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결국엔 나라에게도 좋은 것이니 누구에게 빌붙어 사는 것보다는 적게나마 제 밥벌이를 하는 것을 독려하기 때문이다.


절차는 간단했다. 인터넷으로 처리할 건 처리하고 지역의 고용센터에 가서 서류 하나 작성하여 제출하고, 이 주 정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현재, 난, 기다리는 중이다. 온라인으로 가능한 절차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고용센터 로비에 장사진을 이뤘다. 나보다 나이 먹은 이에겐 온라인 절차는 어려울 것이다. 참 불친절한 사이트 맵이었다. 거기서 헤매느니 차라리 찾아가서 해결하자는 마음이 절로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관련 정보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고, 그 정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상담원과 긴 상담을 끝내고 돌아서는 중년 남녀 실업자의 얼굴은 편해 보였다. 물론 나도 그리 보였을 것이다.


아이러니의 연속

생각해 보면 처음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실업급여를 신청한 적이 없다. 초반에 세 번의 이직을 했지만 거의 스카우트에 가까운 이직이었고 이후 아는 감독이 창업한 프로덕션으로 옮길 때도 스카우트 형태였다. 그 사이, 2004년부터 계속 대학에서 강의를 해 왔고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대전의 모교에서도 적게는 두 개, 많게는 세 개까지 강의를 했었다. 또, 그 사이 대필 전문 회사와 연결이 되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의 역사와 정부 보고서와 백서, CEO와 정치인의 자서전 따위를 대필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2019년, 그러니까 딸이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부터는 울산의 감독과 일해 왔다. 돈도 많이 못 벌었지만 그렇다고 실업자로 산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 또한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더 재미있는 아이러니한 일들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다. 애들한테 독서와 논술을 가르친다는 학원들로부터는 연락이 없는데, 날 원하는 학생들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고수를 알선해 준다는 사이트의 내 프로필에 내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서비스의 항목에 변화를 줬다. 글쓰기와 함께 비문학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부터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알림이 울린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심지어 부모들까지 과외의뢰를 하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어떤 노동도 할 수 없는 상황 또한 아이러니를 더 극적으로 만드는 한 축이라 할 수 있다.


백년초와 천년초는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시의 모양과 열매의 맺은 형태가 다르다. 물론 그것도 그 두 개의 식물을 아는 사람한테나 판별 가능한 다름일 뿐, 오다가다 흘깃 본 사람에게는 그게 그것인, 그저 선인장으로 보일 뿐이다. 본만큼 보이는 것이고 아는 만큼 구분된다. 식물만 그렇겠나.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다. 공부를 해서 아는 것이 있고 살아낸 뒤에 알아지는 것이 있다. 전자는 애들이 학원에서 수학 공부를 하듯 선행이 가능하나 후자는 선행이 불가능하다.


천년초를 비롯한 모든 식물의 열매가 맺기 전 그 크기와 효능을 가늠할 수 없듯 우리의 인생 또한 미래의 일을 오늘에 가져와 미리 예단할 수 없다. 종교가, 점집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성업 중인 것도, 전직 대통령이 도사와 법사님을 알현하려 애썼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열린 결말의 인생

열린 결말의 소설이 된 기분이다. <28일 후> 같은 영화처럼, 좀비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피난 왔는데, 그래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데 화면 저 멀리서 좀비의 소리를 들으며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관객의 기분이다. 아니, 그런 관객 기분이라면 오히려 기쁠지도 모르겠다. 속편이 나오겠군. 이런 기대를 하고 나가니 말이다. 물론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말이다. 반면 내 열린 결말은 다음 이야기의 짐작을 불허한다. 반복되는 일상은 귀납이라는 추론을 통해 내일을 예상하게 하는데, 그것이 무너졌다. 당연하다. 내일이 없다는 말은 결국, 반복할 무엇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사람은 안온하다.


낯선 선인장을 선물 받아 키우고 있는데, 난 그 이름을 모른다. 친구도 선물 받은 걸 나한테 떠넘겼다. 그럭저럭 키우다 보니 노란 꽃이 핀다. 그제야 꽃이 핀다는 걸 안다. 좀 있으니 수상쩍은 열매가 혹처럼 붙어 나온다. 이쯤 되면 검색해 봐야 한다. 그제야 백년초, 혹은 천년초라는 걸 안다. 인생도 이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겨우 알게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 가시투성이의 뭔가를 선물 받았다고 불평할 필요 없다. 그러다 들인 노력도 없는데 느닷없이 핀 노란 꽃에 들뜰 필요도 없다. 잊을만하면 물을 줬는데 더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 귀한 열매가 올랐다고 뿌듯해할 필요도 없다. 그 낯선 선인장이 죽을 때까지 꽃의 피고 짐과 열매의 맺힘과 낙과는 반복된다.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지금, 난 꽃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열매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도 아니면 친구한테 느닷없이 가시투성이의 낯선 선인장을 선물 받은 직후일까. 난 아직 이 선인장의 이름을 모른다.


딸이 맞은 가을, 그리고 미국 능소화

요즘 딸은 가발을 벗고 다닌다. 8월 마지막 주부터다. 덕분에 체육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서 줄넘기와 풋살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풋살에서 수비와 간격이 있을 때 골을 넣는 방법을 물었다. 가랑이 사이를 보고 가볍게 차거나 얼굴을 향해 강력하게 때리라고 했다. 전자는 오므릴 새도 없이 공이 통과할 테고 후자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라고 했다.


수학 학원에도 적응해서 두 달 연속으로 학원 베스트 학생이 되어서 문화상품권을 받아 왔다. 그것으로 또 참고서를 살 것이다. 지역의 모 기초단체에서 주관한 영어 스피치 대회에도 출전하여 제법 높은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올랐다. 오늘 아침엔 아내가 일찍 교육을 가게 되어 내가 바래다주었다. 가방이 왜 그리 무거운지.


학교 앞에 짓던 건물은 다 올라갔는데, 일반 주택은 아닌 것 같아 딸과 다가가 건축 안내판을 보니, 체육 시설이다. 딸은 학교 입구에서 가방을 건네받아 올라갔고, 난 돌아 내려오며 학교 앞 허름하고 낮은 집 담벼락을 따라 피어 내린 미국 능소화를 렌즈에 담았다. 여전히 중국 능소화도 곳곳에 펴 있으나 유독 명줄이 긴 아이들 몇몇이 버티는 모양새였다. 반면 미국 능소화는 제법 기세 좋게 피어 있었다. 진하고 붉게, 작고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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