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變貌) - 빈티지, 앤티크

딸과 함께 꽃을 보네 40

by 최영훈

그 대학 건물의 아이비

또래보다 늦게 대학을 갔다. 스물넷의 신입생. 광고홍보학과. 하필 1기. 당시 전국에 광고홍보학과는 다섯 개 정도였는데, 부산에서 가장 먼저 광고홍보학과가 생긴 것이 1999년이었으니, 우린 지방 대학치고는 제법 빠른 편이었다. 입학 후, 교수와 강사들은 들떠 있었다. 서울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오는 강사들의 수준은 높았고 당연히 강의의 질 또한 높았다. 교수들은 졸업하자마자 지역 관련 기업과 홍보실에서 너희들을 모셔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우리는 1기라는 자부심을 갖고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그야말로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 같았다. 서울 소재 대학 졸업생들도 갈 곳이 없었으니 지방 대학 졸업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1998년, 4학년, 그다음 해 갈 곳 없던 세기말의 우린, 대학원으로 도망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나도 대학원 시험을 보러 다녔다. 몇 군데를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응시자 수에 놀라곤 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석사 한 기수의 숫자는 열 명 안팎이다. 때문에 박사 과정까지 대학원생 수를 다 합쳐봐야 50명 정도다. 그런데 이 해 가을, 대학원 시험엔 응시자 수 자체가 이 숫자를 넘어섰다. 한 대학에선 80명이 어깨를 맞대고 시험을 봤다. 어느 대학에서든 50명은 기본, 백 명이 넘는 대학도 흔했다.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연세대학교다. 아이비 덩굴이 담을 장식하고 있는 그 유명한 건물의 대형 강의실에서 면접을 대기했었는데, 그 강의실이 꽉 찼었다. 그때, 난 한 응시생을 보고 여긴 내가 올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한 공중파 방송의 저녁 뉴스의 앵커가 거기 앉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난 해를 넘겨 다음 해 가을 학기 신입생으로 대학원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낡은 담엔 아이비가 있다. 아이비리그라는 말은, 다 알다시피 여기서 나왔다. 내가 본 건물 중 아이비가 가장 멋스럽게 외관을 장식했던 곳은 연세대학교의 그 건물이었다. 담쟁이덩굴이 장식하고 있는 건물은 세 동인데, 내가 대기했던 곳은, 검색해 보니 지금은 성암관이라 불리는 곳이 아닐까 싶다. 현재는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으로 쓰인다고 한다.


아이비는 흔한 듯 흔하지 않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다 있는 것이 아니다. 자라기 전에 잡초를 뽑듯이 제거하는 곳도 있지만 의외로 잘 자라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이 있는 대학은 부산에서 제법 오래된 대학이지만 아이비가 있는 건물은 없다. 그러던 어느날, 수영을 하다 창밖을 보니 아이비 덩굴이 보였다. 대나무와 벚나무가 수영장 창밖의 조경수로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나온 아이비가 외벽을 타고 올라갔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에 그 덩굴이 뿌리를 내리고 벽을 타고 오르는 모양이다. 아이비는 담만 타지 않는다. 올라갈 곳이 없으면 옆으로 퍼진다. 늘 가는 박물관 옆 산책로에는 아예 아이비가 뻗어나갈 여지를 만들어줬고 그 앞에 팻말까지 붙여 놨다. 여름에서 가을 사이, 꽃도 핀다는데 난 아직 꽃을 본 기억은 없다.


너무 달랐던 이틀

9월 셋째 주, 월요일, 첫 번째 실업 급여 교육을 받으러 갔다. 화요일엔 세 번째 미팅한 학원의 원장과 수석 강사, 교무 팀장과 함께 두 번째 면접을 봤다. 난 면접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날 미팅은 한 시였는데, 난 라면에 밥을 말아먹고 갔다. 집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금방이었다. 갔더니 어둠 컴컴하다. 아직 강사들도, 학생들도 오지 않을 시간이다. 사무실 하나에 불이 켜져 있기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수석 강사와 교무 팀장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있었다.


두 남자는 원장에게 전화를 했고 이후 우린 교무 팀장의 차를 타고 용호동, 바닷가의, 광안대교가 보이는 삼계탕 집으로 갔다. 결국 난 점심을 두 번 먹었다. 이후, 면접은 회의로 바뀌었고 옆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두 시간 반의 대화를 했다. 회의 막바지, 자리는 스카우트 교섭 자리로 바뀌었고, 난 내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수락했다. 구체적인 계약은 다음 주 월요일에 하기로 했다.


딸의 도전이 있던 날

이날, 오후 세 시에 딸의 영어 스피치 대회 결선이 있었다. 내가 미팅을 하는 곳과 거리가 좀 있어서 일찍 끝나도 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시쯤,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진행 순서가 담긴 브로슈어 지면이었다. 딸이 속한 중학부는 네 시 반에 시작했다. 세시 반에 미팅이 끝난 후, 택시를 잡아타고 영도구청으로 넘어갔다. 택시비는 제법 나왔지만 부산항 대교 덕분에 이십 분 만에 도착했다.


“가나다” 순이어서 딸은 맨 마지막, 일곱 번째였다. 3학년이 많았고 1학년은 딸과 다른 친구 한 명뿐이었다. 남학생은 없었다. 부산 전역에서 온 아이들 중 1차에서 뽑힌 일곱 명의 소녀들은 긴장의 기색도 없이 술술 발표했다. 2분 30초는 생각보다 길었다. 주의 깊게 들었다. 1번이 재치 있게 발표했다. PPT 사용도 능숙했다. 2번, 3번은 평이했다. WHO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녀의 발표가 귀에 들어왔다. 마지막 딸의 발표를 들었다. 떨다가 잊어버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전달력이 좋았다. 발음도 좋았다. 내용도 좋았다. 딸이 쓴 초안을 보고 몇 가지 조언을 해 줬고 딸은 그 조언대로 원고를 수정한 뒤 번역을 했다. 그 뒤, 난 딸이 연습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원고의 수준도, 상태도 몰랐다. 이 날, 현장에서 처음 듣는 것이었다. 딸은 자연스러운 제스처와 여유 있는 시선 처리가 동반된, 여유가 느껴지는 발표를 수행했다. 꿈을 갖게 된 계기도 좋았고 그 꿈으로 도우고자 하는 대상과 이를 위해 가야 할 곳도 분명했다. 궁극적으로 딸이 꿈꾸는 세상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세 명이 우수상 두 명과 최우수상 한 명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장려상 네 명을 먼저 발표했다. 딸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우수상 두 명 중 한 명도 딸이 아니었다. 다섯 명은 이미 무대에 올라갔다. 남은 두 소녀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사회자는 두 소녀를 보며 수상자를 발표했다. 다른 우수상 수상자도 딸이 아니었다. 딸은 최우수상을 받았다. 롤드컵 트로피를 연상시키는 금색 트로피와 상장을 받았다. 이날 영어 학원은 가지 않았다. 저녁으로는, 딸이 좋아하는 마라샹궈를 시켜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이날 낮에 있었던 만남의 결과를 얘기해 줬다. 면접에서 회의로, 회의에서 스카우트 제안과 수락으로 이어졌던 그 자리의 결과를.


변모(變貌) - 가치가 바뀌는 순간

집 근처에 멋스러운 카페가 있다. 딸이 다니던 어린이집(이곳은 1970년대 지어진 교회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근처에 있다. 지금은 <미도리>라는 이름을 걸고 일본식 디저트를 팔지만 몇 년 전엔 <대연 1973>이라는 이름이었다. 그 카페는 그때 지어진 오래된 집을 개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카페 앞을 지날 때마다 아빠보다 한 살 어리다고 딸에게 말하곤 했었다.


현재의 <미도리>도 그 개조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경성대학교와 부경대학교 인근에는 오래된 단독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들이 즐비하다. 넓게는 서면과 전포동, 광안리에도 이런 카페와 식당들이 많다. 오래된 것을 허무는 대신 그 외형과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여 빈티지와 엔티크라는 이름으로 변형하여 젊은이들에게 새롭게 다가가고 있다.


그런 카페, 혹은 식당이 된 기분이다. 여름 내내 폐기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20년 넘게 걸어온 카피라이터라는 여정은 7월 중순, 끝이 났다. 등 뒤에서 그쪽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다리가 불타는 걸 봤다. 뜨거운 여름 동안 다른 길을 찾기 위해 헤맸다. 그러다 세 번째 미팅에서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 전공, 학력, 경력, 능력까지, 모든 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비가 된 기분도 들었다. 성가신 사람에겐 뽑혀 불태워지는 식물이지만 역사의 흔적을 생각하는 사람에겐 훈장 같은 존재인 식물. 사람은 그대로인데 누군가에겐 쓸모와 가치가 있고 누군가에겐 그것이 없다. 그것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은 저마다 소중하다고 말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윤리이자 철학이지 현실에선 아니다. 현실 속 인간은 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길 강요받는다. 불행한 일이다. 사람답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히려 그 증명으로부터 자신을 유리(遊離)시킬 필요가 있다. 세상을 향해 내용 증명 하나 보내놓고 난 나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폐물(廢物)과 빈티지

NFL 시즌이 개막했다. 2주 차에 접어들었다. 하이라이트로 챙겨 보던 중, 캔자스시티와 필라델피아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봤다. 2019년에 우승을 했고, 22년과 23년, 연달아 우승했던 캔자스시티와 지난해 우승팀 간의 대결이었다. 캔자스시티의 쿼터백인 패트릭 마홈즈가 고전하면서 게임이 박빙으로 흘러가던 와중, 어느 쿼터에선가, 패트릭 마홈즈가 비어 있던 트래비스 켈시(테일러 스위프트의 연인이다.)에게 절묘한 패스를 했다. 그때, 해설진의 입에서 “빈티지 리시버”라는 표현이 나왔다. 89년생으로 올해 서른여섯 살의 노장 타이트 엔드(포지션 중 하나다.)의 노련한 위치 선정과 캐치 능력을 칭송하기 위해 꺼낸 표현이리라.


낡은 것과 빈티지, 오래된 것과 앤티크, 폐가 및 빈 집과 새 옷을 입은 폐가와 다른 용도로 탈바꿈한 빈집의 의미는 다르다. 군산과 목포를 비롯한 호남 지역의 적산가옥들이 그렇게 새 이미지를 입었고 부산역 앞의 창비 부산은 백 년 가까이 된 병원 건물을 고풍스러운 문학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부산 전포동의 오래된 공구 상가 건물들도 젊고 감각적인 사장들을 만나 새롭게 태어났고 유명한 독립 서점인 <크레타>도 그 건물 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여름 내내, 용도 폐지 된 기분이 들었다. 갖고 있는 능력은 맘에 드나 나이가 맘에 걸렸던 사람들은 선택을 주저했다. 그렇게 세 번째 면접까지 갖고 이런 결과를 받아 들었다. 새로 만드는 교육 상품의 주요 상품 포인트이자 기획자로서 참여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상품에서도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원장은 내 과거를 통해 쌓아 진 능력과 내 학력과 독서를 통해 얻어진 능력을 동시에 사용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내가 은퇴할 때까지 뽑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뽑아 먹겠다는 생각이고 나 또한 이에 기꺼이 응할 생각이다. 오래된 사람은 리모델링해서 최대한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보겠다는 그의 생각에 내가 호응한 것이다.


딸은 오늘, 1박 2일의 수련회를 갔다. 평생 처음이다. 단체로 자고 먹고 트레킹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긴 애들은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을 걱정하던데, 자기는 머리가 짧아서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좋아했다. 지난주 내내, 토요일에 있는 영어 영재 수업에 제출할 단편 SF 소설을 영어로 썼고, 이번 주엔 영어 스피치 대회를 치렀다. 그렇게 딸은 지난 4월 이후, 자기 앞에 놓인 과제를 두려움 없이 헤쳐 왔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가 반가운 건, 딸에게 방학 보다 더 달콤한 휴식이 될 것 같아서다. 학원도 쉬는 명절이니. 딸과 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가을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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