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꽃을 보네 41
9월은 새로운 꽃이 없는 계절이다. 중순까지 낮 최고기온 30도를 넘는 동안 너덧 송이 남은 능소화는 굴하지 않고 당차게 햇볕과 마주 섰고 무궁화는 묵묵히 절정이었으며 배롱나무는 꽃을 떨구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푸르렀다. 수영장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나무와 벚나무도, 길에 서 있는 은행나무도, 박물관의 메타세쿼이아도, 멀리 보이는 황령산과 더 멀리 보이는 장산, 그리고 박물관의 뒷산과 그 옆 산도 온통 푸르렀다.
9월도 보름을 넘기면서, 낮 최고기온이 30도 이하라는 뉴스가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을 켜며, 에어컨 없이 못 산다던 딸도 슬슬 에어컨을 본채 말은 채하고 더워서 잠을 깨곤 했던, 갱년기를 코앞에 둔 아내도 깨지 않고 숙면을 한다. 그렇게 더위가 물러간 탓인지 수영장엔 사람이 늘었다. 모처럼 선선한 바람이 수영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으리라. 시월이면 다시 줄어들 테지만, 잠시 북적이며 수영을 하고 있다.
여름 내내 흔들렸다. 이십 년을 지켜온 카피라이터의 명함은 7월의 어느 날 책갈피 용도로 전락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지나가리라 여겨 서서히 준비했던 마음은 여름에 된 서리를 맞았다. 부랴부랴 이것저것 알아보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 실업 급여도 신청하려 했으나 잠시 버텼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다. 그 여름, 서른 곳 넘게 이력서를 넣었고 그중 딱 세 곳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얘기했다. 세 번째는 집 근처, 유명한 학원가다. 앞선 글에서 썼듯이 전국구로 유명한 국어 일타 강사였던,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내가 나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의 이유는 분명했다. 때문에 나조차 납득했다.
그는 새로운 “상품”을 구상하던 차에 내 이력서를 봤다. 그가 찾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광고와 홍보 쪽 일을 오래 했고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 광고와 홍보를 공부한 사람. 게다가 글쓰기가 직업이고 책도 많이 읽은 사람. 그는 첫 번째 면접에서 내 내공을 탐색전 하듯 파악했고 난 담담하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끝나는 자리, 다음을 약속했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두 번째 자리를 가졌다. 이번엔 강사 한 명과 교무 팀장이 동석했다. 남자 네 명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긴 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내가 그가 찾던 퍼즐임을 말했고 난 그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렇게 새로운 “상품”의 퍼즐은 거의 찾아졌고 그는 한 두 개의 퍼즐만 더 찾으면 완벽해질 것이라는 예감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 세 번째 미팅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학원에서 다시 네 남자가 만났다. 그는 공격할 대상을 알았고 그 시점과 장소도 알았다. 그렇다면 공격할 무기만 있으면 됐다. 시점은 촉박했으나 카피라이터였던 사람에게 촉박한 시간은 오히려 자극제가 됐다.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이들 사이에서 해야 될 일을 얘기하고 앞에 앉아 있던 강사에게 A4 용지 몇 장을 갔다 달라고 했다. 6면 브로슈어의 기획. 함께 들어가야 될 내용의 아웃라인을 함께 잡았다. 점심으로 초밥을 먹은 시간까지 하면, 총 다섯 시간의 회의였다. 다음 화요일 원장은 나에게 술자리를 청했고, 그 말을 하며 추석 이후, 정식 출근을 하자고 했다.
늘 지나가는 빨간 벽돌집들 중, 끝집에 이상한 꽃이 폈다. 이상한 열매도 맺혔다. 처음 보는 꽃이고 열매다. 꽃과 열매는 서로 다른 것인데, 꽃은 처음이나 열매는 어쩐지 낯이 익었다. 꽈리인가? 꽈리는 연한 붉은색이다. 그런데 이건 영락없이 멜론의 색을 닮았다. 딸과 함께 꽃도, 열매도 사진을 찍었다. 검색을 해보니 꽃은 듀란타, 열매를 맺은 것은 풍선초다.
듀란타는 꽃에서 초콜릿 향이 난다고 하여 별칭이 밸런타인 재스민이다. 이름 하나 잘 지었다. 본명보다 예명이 더 나은 경우이리라. 풍선초는 또 어떤가. 그야말로 애드벌룬이 푸른 잎에 잠시 머문 모양새다. 풍등이 대나무에 걸린 듯도 하다. 이름이 모양이고 모양이 이름이다. 요즘 대연 성당 앞을 지날 때마다 흔들리며 불러 세우는 꽃은 홍접초인데, 우리말로는 나비바늘꽃으로 부른다. 이 또한 이름이 모양이고 모양이 이름이다.
듀란타를 찍던 날, 그 꽃에 담긴 것을 빨아먹으려 벌도 아닌 것이, 벌새도 아닌 것이 윙윙 거리며 날아다녔다. 저것도 이름이 특이한데, 하고 사진을 찍었다. 꼬리 박각시다. 넓게는 나비목에 속하고 바로 위의 소속으로 누에나방 상과라고 나온다. 직속은 박각시과다. 벌새와 착각될 만큼 하는 짓이 비슷한데, 이는 수렴 진화의 결과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수렴진화는 계통적으로 관련이 없는 두 생물이 자연의 적응 결과, 생김새나 하는 짓이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걸 말한다.
작고 가볍고 흔들리는 것들만 9월의 끄트머리에 남아 있다. 모양이 이름이고 향이 이름이며 하는 짓이 이름인 것들이 흔들리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 있다. 그 유명한 시가 절로 생각이 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시인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의 일부다. 난 “사랑”을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아니 오히려 더 와닿는다. 나이를 먹으니 더 그렇다. 분명 처음 읽었던 젊은 시절엔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슬며시 사랑 대신 사람으로 기억이 대체됐으리라. 사람이 흔들리면서 피고, 또 나아가니 사랑 또한 그렇지 않겠나, 하는 나름의 정연한 논리가 성립됐으리라. 달라진 기억을 그렇게 뒤에 세워진 논리가 기정사실화 했으리라.
인생도 가을이고 계절도 가을이다. 상투적이지만 그렇다. 가을이면 정리할 시간이다. 다시 상투적으로 말하면 수확의 계절이니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에 나섰다.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잘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발걸음 앞에 놓인 두려움을 치워주지 못한다. 밤마다 찾아오는 걱정도 막아주지 못한다. 살아온 세월과 쌓아온 경험 또한 무용지물이다.
새 길, 새 날, 새로운 세계 앞에서 사람은 다시 또 흔들리며 피어나고 흔들리며 나아간다. 잠시 감을 잡았다 싶어 바로 갈 때도 있겠지만 다 간 뒤 돌아보면 흔들림의 궤적이 길고 깊어졌을 뿐이리라. 작은 파동을 겨우 진정시켜 안정된 곡선으로 만들었던 것뿐이리라. 그 곡선을 잠시 직선으로 착각하면 살아온 것처럼 또 살아가겠지. 그러니, 흔들릴 각오를 하고 새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