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무르익지 않은 것들

딸과 함께 꽃을 보네 43

by 최영훈

가을, 과일가게의 주인공

동네 상점가에 두 곳의 과일가게가 있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들어서는 골목의 초입에 하나, 중간쯤에 하나다. 아내는 중간쯤에 있는 가게의 단골이다. 오래됐기도 했고 만두 가게 옆의 작은 점포에서 더부살이하던 가게가 매장을 늘려 바로 옆 큰 건물 1층으로 이사하기까지, 그 성실함과 성공의 과정을 지켜봐서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렇다. 동네 장사를 해서 낮게라도 건물을 올리고 평수를 늘려 이사를 가는 모습을 보면 내 일도, 내 장사도 아닌 데 괜스레 흐뭇하다. 저들의 성공에 내 푼돈이 조금이라도 공헌했다고 생각하면 지은 건물을 언젠가 더 높이 증축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평수를 늘려 간 이는 언젠간 새로 건물을 지어 건물주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수십 년 된 동네 맛집들이 어르신들의 건강 문제로 하나 둘 문을 닫는 걸 보다 보니 이런 마음이 더 커진다.


그 중간쯤 하는 과일 가게 - 과일특공대인가, 아마 이름이 그럴 것이다. - 엔 당연하게도 제철 과일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귀가하던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아내도 종종 나와 산책을 하다 그 집 앞에 멈추곤 한다. 봄이면 블루베리와 산딸기를 좋아하는 딸 생각에 그러고, 사시사철 사과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드시는 장모님 생각이 나서 그럴 때도 있으며, 요즘 같은 때면 홍시를 좋아하는 장인어른이 생각나서 그런다.


홍시와 덜 익은 감

홍시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대봉이고 하나는 단감이다. 농부들이 분류하는 종은 더 많겠지만 감을 좋아하시는 장인어른을 비롯한 부산, 경남의 어른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눠 부른다. 단감은 귤과 모양이 비슷하나 조금 큰 감이다. 보통 부산 지역에선 진영의 단감이 유명하다. 대봉은 도토리처럼 밑이 더 긴 감이다. 어떤 감이든 다 맛있지만 장인어른은 홍시로는 대봉을 연시나 그보다 좀 딱딱한 식감으로는 단감을 선호하신다. 물론 홍시로 드실 때는 가리시지 않는다. 은채가 처음 단 맛을 접한 것도 장인어른이 준 홍시였다.


추석을 앞두고 홍시가 풀렸다. 늦여름에서 이른 가을까지, 딱딱한 단감이 주를 이루더니 가을이 깊어지면서 어느새 홍시가 앞자리를 차지했다. 자연스러운 변화다. 감은 처음 열릴 때는 초록 매실처럼 초록의 색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황색이 된다. 아니, 감의 색이니 감색으로 부르는 것이 맞으리라. 그러니 감 농가에선 그 감이 무르익어 떨어질 때까지 수시로 따서 시장에 내보내는 것일 테다. 또 어떤 농가, 특히 상주 같은 곳에선 곶감도 만들 테고 말이다. 대학 강사 시절, 고향이 상주인 학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말하길 상주에 가면 여고생도 두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고 곶감이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참고로, 상주는 엄복동이 출전한 자전거 대회가 개최된 도시로, 이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은 서울이 고향인 엄복동이 아니라 상주 사람 박상헌이라고 한다. 상주가 자전가 도시가 된 내력이다.


다시 감 이야기로 돌아오면, 감은 한날한시, 때를 같이하여 열리지도 않고 익지도 않는다. 과일가게에는 스치기만 해도 속이 터져 나올 것 같은 홍시들이 대세이나 동네 곳곳에 보이는 감나무에는 아직 덜 익은 감들이 대부분이다. 이 현상을 단순히 품종 탓이라고 돌리기만은 어려운 것이 한 나무에 달린 것들 중에도 누렇게 익어가는 것이 있는 반면 잎과 그 색이 구분이 안 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농가에서는 열매가 맺히는 시기와 일시를 조절하여 일제히 맺고 익게 할 테니, 이렇게 그 맺히는 시기와 익는 시기가 중구난방일 경우는 없을 것이다.


무심히 지나쳤던 감꽃

추석 연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없다. 추석 당일, 처가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점심과 저녁을 먹고 오는 게 다다. 그날 전후로 처남을 집에 부르든, 우리가 그 집으로 가든 술이나 한잔 하는 것이 추석의 공식 행사라면 행사다. 이번엔 그 "행사"를 끝내고 광안리 바다까지 걸어가 드론 쇼까지 보고 왔다. 그런 “공식”행사가 아니어도 연휴 기간,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불쑥 생각이 나서 새 직장에서 진행할 독서 및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안과 강의안의 초안을 구성하기도 했다. 딸은 그 와중에 학원 숙제를 하기도 하고 미뤄놨던 미국 드라마를 몰아 봤다. 해가 질 무렵, 그렇게 공부방과 자기 침실을 오가며 공부를 하고 드라마를 보던 딸을 데리고 편의점으로 맥주를 사러 다니곤 했다.


내가 사는 빌라를 중심으로 양 갈래로 난 골목 중 붉은 벽돌집이 연이어 있는 골목이 아닌 다른 골목에는 서로 다르게 생긴 단독 주택 몇 집이 연이어 있는 데, 세 집 중 두 집 꼴로 감나무가 있다. 사시사철 그 아래로 지나가며 올해는 언제 감이 열릴까 기다리는데, 시월이 되니 어김없이 큼직한 감이 달려 있다. 아직은 진한 초록이다. 굳지 먹지 않아도 떫으리라.


편의점을 가던 중, 그 감나무 아래를 지나가며 딸에게 말했다. “아빠는 가을마다 감은 보는 데 꽃을 본 기억은 없네. 넌 본 적 있어?”, “아니.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하고 딸이 고개를 갸웃하며 답을 했다. “감은 꽃이 없이 열매가 열리나?”하고 천진하게 이어 묻는다. “에헤이. 그런 과일이 있나. 꽃 없이 열리는 과일은 없지. 우리가 보지 못했나 보다. 내년에 기다려보자.”,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열매의 크기와 색에 비해 꽃은 작고 소박하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이유이리라.


자기 계절

꽃처럼 열매처럼, 사람에게도 자기 계절이 있다. 같은 세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도 피고 지는 시기가 저마다 다르다. 일찍 태어난다고 일찍 피는 것도 아니고 늦게 태어난다고 해서 늦게 피는 것도 아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사람의 피고 짐, 그 열매의 맺음과 떨어짐도 그 정해진 순서가 없다. 흔히들 재능이 꽃 핀다는 말을 하는 데, 그것도 다 때와 장소가 있다. 필만 한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그 재능을 피우는 게 더 쉽고,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더 어려울 것이다. 설령 좋은 땅에 뿌리를 내렸다 하더라도 필 때쯤 모진 시련이 닥쳐오면 그 시린 계절을 견뎌낸 뒤에야 자기 계절을 맞아 자기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


9월, 실업급여 문제로 아내와 모처럼 다툰 후, 아내가 넋두리처럼 말을 했다. 당신처럼 지적이고 재주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그게 다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빛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게 당신 탓인지, 여기 탓인지, 시대 탓인지 모르지만 안타깝다. 아내는 그리 말했다. 그 말은 칭찬이면서 원망이었으며 원망이면서 한 자락 남은 마지막 기대였다. 그 싸움에서 아내는 내가 책을 사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방에 틀어 박혀 돈이 안 되는 글을 쓰는 것도 이해 못 하겠다고 했다. 난 그게 내 낙이라 했다.


낙이라는 말엔 사치가 들어 있다. 낙이라는 말은 던진 후, 그 사치스러움에 일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사치를 부릴 사람인가. 낙은 삶에 필수적인 것 아니어서 없어도 살아지는 것이다. 내게 있어 책 또한 그런 것이다. 맥주도 그렇다. 없으면 못 사는 건 아내와 딸뿐 아니겠나. 설령 그 둘이 없어도 살아진들, 어디 그게 사는 것이겠나.


공교롭게도 그 며칠 후 세 번째 면접을 받고 그 후의 이야기는 앞서 다른 글에 풀어놨다. 낙이었던 책과 독서는 이제 일이 되었다. 돈이 안 되던 글쓰기는 돈을 버는 재주가 되어 버렸다. 작심을 하고 그러기로 했다. 작심을 한 김에 잘하기로 했다. 잘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흉내 내기 어려운 나만의 방법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기로 했다. 그 학원에 올만한 아이라면 능히 감당하고 남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영 담감 한 박스

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일은 배다. 그런데 요즘 배를 먹어보니 날씨 탓인지, 기후변화 탓인지 그 맛이 예전 같지 않다. 사과는 재배의 최적지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 배도 그 뒤를 따라 북상하리라. 대신 아열대 과일이 지역의 마트마다 흔하다. 내 입맛에 맞지 않다. 장인어른은 감을 좋아하셔서 손녀에게도 그 맛을 전수해 주셨다. 부산에서 유명한 진영 단감은 김해 인근 진영이라는 지역에서 나오는 감을 말한다.


장인어른의 여동생이 그곳에 터를 잡고 사셔서 때가 되면 감을 박스째로 보내주신다. 장인어른은 7남매 중 맏이다. 온 형제자매가 나름 애를 쓰며 살았지만 어떤 걸로도, 어떤 기준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감을 좋아하는 오빠에게 감 한 박스 정도는 보내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다들 일흔이 넘은 오빠와 환갑이 넘은 동생들이 건강하게 살아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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